부활신앙의 회복 – 장재형목사

장재형목사

1.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 부활신앙의 현장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은 기독교 교회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공간이며, 동시에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 깊은 영적 통찰을 주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다락방은 사도행전 1장부터 2장으로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장면의 무대가 되는데, 바로 여기서 초대교회의 태동과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 시작점인 사도행전 1장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마무리하시는 시점, 즉 승천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와 약속을 주신 사건이 기록된 장면이다. 그리고 이 다락방은 단지 물리적 공간의 개념을 넘어, ‘초대교회가 두려움 속에서도 예루살렘 한복판에 모여 역사적 변화를 일으킨 상징적 장소’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면을 가리켜 “비록 제자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약 40일 동안 그들을 직접 찾아오셔서 다시 세우시고, 믿음을 불어넣어 주신 뒤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하셨다”라고 설명한다. 제자들은 갈릴리까지 흩어졌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부활신앙”으로 무장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부활이 어떠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며, 그 출발점에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예루살렘이어야 했을까?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거기서 처형되셨던 도시가 예루살렘이다. 제자들에게는 몹시도 두렵고 참혹한 기억이 남은 곳이었을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그분을 따르던 많은 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려라”(행1:4-5)는 말씀을 직접 주심으로써, 제자들이 오히려 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지역에 다시 모이게 하셨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하나님의 역사는 늘 우리의 기대와 상식을 뛰어넘는다. 부활신앙이란,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 가장 소망을 전하는 힘을 발휘할 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부활신앙의 특징은, ‘죽음이 끝이 아니다’라는 확신에 있다. 제자들이 한때는 ‘주님이 처형당했고, 이제 우리도 붙잡혀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주저앉았으나, 예수님께서 실제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모습을 보고 “죽음 그 너머의 새로운 시대”를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3절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증언한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일”이란 단지 막연한 종말론이나 철학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교회가 어떤 능력으로 세워져야 하고, 어떻게 전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방향을 포함한다. 그 핵심 중 하나가 “너희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출발하라”는 말씀이다.

장재형 목사는 “사람이 가장 약해지고 넘어졌던 곳에서 다시 회복하는 역사를 ‘부활신앙의 실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이 주는 교훈이라 강조한다. 처음에 제자들이 이 다락방에 모였을 때, 그 분위기는 지극히 숨죽인 상태였을 것이다. 십자가 사건 직후,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안치되었고, 지도층은 예수님의 잔당까지 모조리 소탕하려는 기세가 등등했다. 그렇기에 그 다락방은, ‘잠깐 모여서 기도하는 안전한 은신처’ 정도로 활용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그곳에서 멈추지 말고 기다리라. 멈추어 서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을 받을 때까지 머물라는 것”이었다. 마가의 다락방이 이처럼 ‘무력한 도피처’에서 ‘능력의 발원지’로 바뀌게 된 것은 바로 성령 강림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곧 성령이 임하심으로(행2장),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숨은 제자들이 아니었다. 공포의 공간이던 다락방이 부활의 확신과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현장이 되자, 제자들은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 거리로 나아가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장재형 목사는 “부활이 교리로만 남아 있다면 의미가 없지만, 부활신앙이 실제 삶을 뒤엎는 능력이 될 때, 사람들이 마침내 예루살렘성 안에서조차도 두려움을 뛰어넘어 행동하는 변화를 보게 된다”라고 역설한다.

이런 ‘행동하는 신앙’은 곧 사도행전 전반에 드러난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사마리아와 온 유대, 그리고 땅끝에 이르는 역사적 복음 전파의 여정이 펼쳐지는 것이다. 신앙이 행동으로 이어진 가장 첫 번째 장면은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사건에서 드러나듯, 골방에 숨어 있던 이들이 거리로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고, 하루에 수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받는 장관이 펼쳐진 것이다. 그 발화점이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었다.

한편, 이 다락방은 “교회의 모태” 또는 “교회의 자궁”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새 시대가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확신과 성령 강림으로 인해 실제로 ‘새로운 공동체’가 그 안에서 잉태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아직 지상에 계실 때는, 제자들은 말씀을 배우며 동행하는 수학(修學)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이 임하신 이후, 제자들은 ‘교회 공동체의 기둥’으로서 스스로 복음을 확장해나가는 주체가 되었다. 다락방은 그 전환점의 심장부였고, 그 동력이 곧 부활신앙이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의 회복 장면을 떠올려보면, 제자들이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또 어떻게 다시금 사명을 확인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순종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이후, 주님께서 그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묻고, 베드로가 그 사랑을 고백함으로써 비로소 무너진 자기 자신을 끌어안고 ‘반석’(베드로)으로 거듭 태어난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면에 대해 “교회가 특정 프로그램이나 조직력으로 움직이지 않고, 결국 그 근본 동력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그 사랑은 곧 주님의 부활하심에서 기인하고, 우리를 품어주신 그 은혜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에야 견고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가의 다락방 역시 이와 같은 ‘고백’과 ‘회개’와 ‘믿음’의 집합체였다. 부인했던 제자들,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돌아와 하나의 공동체가 되고, 절망을 넘어서는 용기를 내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부활과 성령의 약속 때문이었다. “마태복음 26장 이하에 기록된 예수님의 고난 현장과, 요한복음 21장 갈릴리로 돌아간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사도행전 1장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이 한 줄로 연결될 때, 비로소 부활신앙이 오늘날 교회에 실질적 메시지를 준다”고 장재형 목사는 거듭 강조한다.

이렇듯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은 결과적으로 ‘두려움에서 대담함으로, 흩어짐에서 모임으로, 수치와 부인에서 회개와 고백으로’ 전환하는 현장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가 이 점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는데, “교회가 어느 시점부터 사회적 지탄이나 박해의 두려움 속에 숨어만 있는다면, 다시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불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활신앙의 현재적 적용이기도 하다.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치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듯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가 세상 한복판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도록 지지해주신다는 사실을 붙들 때,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끝까지” 이르는 길을 기쁨으로 갈 수 있다.

이 모든 맥락에서 장재형 목사는 “마가의 다락방을 단지 역사적 장소로만 여기지 말고, 현재의 교회마다 자기만의 다락방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곧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고 기도하는 자리’일 수도 있고, ‘부활신앙을 함께 붙들고 고백하는 자리’일 수도 있다.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숨는 행위가 아니라 “거기서 능력을 받아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종 준비”라는 점이 핵심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고 하셨듯, 그런 약속이 ‘다락방’에서 성취되었기에, 초대교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2. 맛디아의 선택, 유다의 빈자리를 메우는 교회의 회복

사도행전 1장 후반부에서 제자들은 열두 번째 사도의 자리를 새롭게 채우는 사건을 맞이한다. 부활절을 지나 오순절로 향하는 그 사이,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예수님이 열둘 중에 한 사람으로 부르셨던 가룟 유다의 배신과 그 후속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긴 뒤,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불의한 삯으로 밭을 산 뒤 거기서 몸이 떨어져 장기가 터져 죽었다는 기록(행1:18)으로 인해 “핏값의 비극”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장재형 목사는 유다의 비극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사람이 오히려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라고 표현한다. 유다는 제자 공동체 안에서 돈궤를 맡던 자였으니, 사실상 재정을 관리하고 봉사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재정을 맡고 봉사하는 자리가 때로는 은혜가 충만해야 할 중요한 자리가 되지만, 동시에 사탄의 유혹과 시험이 들어오기 쉬운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이 돈이 때로는 세속적인 이익이나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은 교회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6:10)고 거듭 경계하고, 초대교회가 “모든 재산을 서로 통용하며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행2:45, 4:34)고 기록함으로써, 물질에 얽매여 부패하지 않도록 초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유다는 물질적 욕심과 정치적 계산이라는 틈을 통해 사탄에 의해 쓰임받아, 결국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배신자가 되었다. 그는 배신 직후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제대로 된 회개에 이르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제자 중 하나를 잃었다’는 뼈아픈 상처를 교회에 남겼다. 열두 제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영적 기둥이었고, 주님이 친히 세우신 “새로운 언약 공동체의 문”과 같았다. 그 한쪽 문이 무너졌으니, 이 문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시급했을 것이다.

이에 사도행전 1장에서는 그 공석을 채우기 위한 회의가 열린다. 여기서 초대교회는 새롭게 사도의 자리를 메울 인물을 뽑는데, 그것이 바로 맛디아다. 그 과정을 눈여겨보면, 교회의 위기 대처 방식이 어떠했는지 배울 수 있다. 사도행전 1장 21~22절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제안한다. “이 일, 곧 우리와 함께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증인이 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주님이 승천하시는 그 날까지 우리와 늘 함께하던 사람 중 하나를 세우자.” 그 결과, 두 사람이 후보에 올랐고, 초대교회는 그 자리에서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선택했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주목할 몇 가지 포인트를 제시한다. 첫째, 초대교회가 “부활의 증인”을 최우선 자격 요건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기 위함이므로, 사도의 핵심 사명 역시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다. 맛디아를 비롯해 후보가 되었던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의 공생애와 고난, 죽음, 부활까지 전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로, 사실상 열두 사도와 함께 늘 다니며 배웠던 이들이었다. 둘째, 선택 과정에서 보이는 공동체적 합의와 기도, 그리고 제비뽑기가 인상적이다. “모든 사람의 의견과 교회의 합의가 중요했고, 마지막 단계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에 운명을 맡기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교회가 단지 인간적 계산이나 정치적 타협으로 리더를 뽑지 않음을 시사한다. 셋째, 이렇게 뽑힌 맛디아가 이후 교회에서 어떠한 능력을 나타냈는지에 대한 기록 자체는 성경에 길게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열두 제자가 온전히 회복되어 다시 오순절 성령 강림을 맞이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선택의 과정이 중요할까? 교회가 성령이 임하기 직전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지도자 팀(사도단)을 회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유다가 만들어낸 공백과 배신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교회가 온전히 하나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우리 중 하나가 주님을 배반했다”는 배신감이 남아 있었고, 그 가운데 제자들은 서로를 향한 신뢰 회복이 시급했다. 또한 각자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모여 함께 기도하면서, “이제는 다시는 그런 배신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단단한 결속을 다져야 했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 안에 생겨난 상처, 지도자의 배신이란 것이 얼마나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 유다의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라고 지적한다. 그렇기에 초대교회는 가룟 유다의 사건을 단순히 잊어버리거나 덮어두지 않고, 아예 교회 첫 발을 내딛는 시점에 투명하게 정리하고 넘어갔다. 유다가 남긴 핏값의 돈은 성전에 던져졌고, 그것으로 ‘피밭’을 샀다는 사실(마27:5-8)이 공공연히 드러났다. 교회는 이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지 않고, 되레 예언(예레미야나 시편)에 입각하여 “이 일이 예언이 성취되는 과정의 일부”라고까지 받아들이며, 공동체 전체가 한 목소리로 기도하고 새 인물을 임명했다.

그리하여 맛디아가 사도의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 교회는 다시 열두 사도의 틀을 회복하고, 그 안에서 더욱 공고해진 영적 유대감 속에 오순절 성령 강림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성령의 힘을 입은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기점으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까지 복음을 확장해 나가게 된다. 만일 유다의 배신과 죽음으로 인해 생긴 내분과 상처를 방치했다면, 교회가 출범하기 전부터 붕괴될 위험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상처를 드러내어 해결하고, 회복의 과정을 공적으로 선포함으로써, 교회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또 다른 관점에서 유다의 실수와 죽음은, 초대교회에 ‘결코 그 누구도 이 길에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라는 경각심을 심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을 직접 3년간 따라다니고, 기적과 말씀을 접하며, 심지어 돈궤를 맡겨질 정도로 신뢰받던 인물조차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은, 교회 구성원 누구든지 시험에 드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 대해 “현대 교회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 보여도, 끊임없이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살피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사단은 언제든지 우리를 미끼로 삼을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교회사는 배신과 타락의 역사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인물(맛디아 같은)을 세워 교회의 빈 자리를 메우고, 역사를 이어 가셨음을 우리는 본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가 맛디아의 선택 사건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첫째, 교회가 공동체적 합의와 기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도자 자리를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능력·명성·정치력을 보고 지도자를 세워서는 안 되며, “부활신앙을 확실히 붙들고 있는가?” “주님과 함께해 온 시간이 있는가?” “주님의 고난·죽음·부활을 옆에서 목격하고, 자기 삶으로 간증할 수 있는가?”라는 핵심 신앙 고백이 훨씬 중요하다. 둘째, 지도자의 배신 또는 교회 안의 큰 상처가 생길 때마다, 그것을 단지 ‘개인의 비극’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아파하며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기도와 말씀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다가 무너진 뒤, 초대교회가 그를 강렬히 비난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고, 주님의 말씀과 예언을 찾아 연구하며, 거기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간 자세는 배울 점이 많다. 셋째, 이 모든 회복 과정은 궁극적으로 ‘성령 강림’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교회가 왜 굳이 이 사건을 성령 임재 이전에 다뤘겠는가? 바로 오순절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온전한 상태로 자신들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불의와 혼란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의 큰 역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성령의 역사, 부흥, 성장 등을 말하기 전에, 먼저 내부의 죄와 불의를 다루는 과정을 진지하게 거쳐야 하며, 지도자들의 무너짐이 있다면 그것을 은폐하지 말고 진정으로 치유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다에게서 벗어나 맛디아를 세운 것이 “하나의 상징”이라면, 곧 ‘교회는 그 어떤 큰 상처를 당해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반드시 회복의 길을 찾는다’는 메시지를 준다. 물론, 유다는 원천적으로 ‘버려진 자’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선택해 그 길로 나아갔다가 영원한 비극을 맞이한 것이다. 교회가 누구를 불문하고 회복과 구원의 길로 초청하지만, 개인이 끝까지 거부하면 비극은 일어난다. 교회는 그런 비극을 무조건 덮는 대신, 회개와 갱신의 동력을 찾아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활신앙”이 핵심 저력으로 작용한다.

부활신앙은 “죽음을 끝장내고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유다는 예수님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었고, 그 뒤에 찾아온 죄책감에 무너져 갔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셨다. 가룟 유다의 배신이 교회에 남긴 충격과 공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소망에 의해 극복될 수 있었다. 맛디아가 그 빈자리를 메꾸었을 때, 열두 제자는 다시 하나가 되어 성령을 기다렸고, 곧 교회에 불처럼 임한 성령으로 인해 예루살렘에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1장에서 4장까지 읽어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수비대를 비롯한 종교 권력 앞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예수 이름 외에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이 없다”(행4:12)고 선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의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던 베드로”가 더 이상 아니다. 그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회복된 자, 성령 받은 자, 그리고 맛디아와 함께한 “온전한 사도단”의 대표가 되어 버젓이 복음을 외친다. 여기에는 “무너져버린 지도자 한 사람의 자리마저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셨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장재형 목사는 “유다를 잃고 맛디아를 얻은 교회가 ‘피투성이가 된 상처’를 치유받은 것처럼, 교회도 끊임없이 옛 상처와 고통을 치유받으며 새 술 부대를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초대교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교회도 각종 분쟁·부패·배신 같은 사건을 겪을 때가 많으며, 그때마다 어떻게 ‘새로운 맛디아’를 세워서 공동체를 정돈하고 성령의 역사를 받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성령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공동체”이며, 동시에 “배신과 회개, 죽음과 부활, 좌절과 회복”이라는 수많은 교차점을 통과해가며 성장한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죽음을 재촉했고, 맛디아는 그 빈자리를 메우며 복음의 문을 확장했다. 베드로는 부인하고 도망갔으나, 다시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요한복음 21장에서 그의 사랑을 회복시키셨고, 사도행전에서 가장 먼저 설교를 펼치는 지도자로 세우셨다. 이렇게 사도들의 재정비가 끝나고, 초대교회는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공간에서 성령이 임하는 장관을 경험한다. 그 성령이 임한 순간부터 교회는 더 이상 숨어 있지 않고 거리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고, 이내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혔다.

오늘날도 교회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장재형 목사는 “당연히 가능하다. 다만, 그 조건은 오늘날 교회가 부활신앙의 실제적 파워를 믿고, 내부의 문제(배신·부패·불신)를 회개와 기도로 해결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구하는 데 달렸다”고 주장한다. 마가의 다락방과 맛디아의 선택은, 교회가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실제 삶에서 체험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공동체 안의 갈등과 상처를 극복하여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부활신앙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의 핵심은 “이 땅의 죽음, 절망, 실패가 결코 마지막이 아니다”라는 믿음이다. 가룟 유다라는 절망적 사례가 있어도, 교회는 맛디아를 통해 복음 전파의 긴 역사를 이어 간다. 우리가 때로는 베드로처럼 주님을 부인하고 죄책감 속에 살지라도, 요한복음 21장처럼 주님이 친히 우리를 다시 찾아오시고 회복시킨다. 그 은혜가 우리를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으로 이끌어, 무기력한 상태가 아니라 담대한 성령의 능력을 입어 세상 한복판으로 나가도록 만든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초대교회는 결국 사도행전 28장 마지막 절에서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라는 당당한 선포로 마무리한다. 복음 전파를 막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베드로는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거꾸로 십자가에 달리는 순교로 사명을 마무리했으나, 그의 뒤를 잇는 수많은 제자들이 또다시 교회의 빈 자리를 채워나갔다. 이처럼 교회는 주기적으로 흔들리고 넘어질지라도, 부활신앙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새롭게 일어선다.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 무너져도, 하나님께서는 사도직을 회복하고, 땅끝까지 이어지게 하는 방법을 갖고 계신다.

맛디아의 선택은 바로 이 ‘회복’과 ‘전진’의 두 가지 정신을 모두 아우른다. 교회가 내부의 상처를 치유하고, 부활신앙에 기초하여 더 큰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고, 교회 지도자들마다 사역 현장에서 다양한 갈등과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초대교회는 어떻게 이 난관을 돌파했나?”를 돌아보면, 결국 그 답은 “부활신앙의 견고한 고백과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는 기도, 그리고 투명한 공동체적 절차”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정리하며 말한다. “부활은 능력이다. 그 능력은 우리 마음 안에 역사할 때,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 아무리 큰 배신자가 있어도, 그 배신을 넘어 교회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회복과 새 출발의 길을 찾게 된다. 유다의 실패가 교회 역사의 종말을 뜻하지 않았듯이,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는 어떠한 큰 상처도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소멸시키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과 맛디아의 선택”이 하나로 연결되는 결정적 이유다. 마가의 다락방은 숨죽이고 숨어 있던 제자들이 성령 강림을 경험한 뒤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 발화점이라면, 맛디아의 선택은 사도 중 한 사람의 배신과 죽음을 넘어서 교회가 다시 ‘온전한 공동체’로 거듭나는 장면이다. 두 이야기는 “교회 안의 배신·부인·두려움이, 주님의 부활과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어떻게 회복과 능력의 역사로 바뀌는가”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슬픔과 회환이 섞여 있지만, 더욱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가 깃들어 있다. 그 결과,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을 넘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길로 분연히 일어설 수 있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지역 교회나 공동체가 마치 마가의 다락방처럼 ‘현대적 의미의 다락방’을 회복해 부활신앙으로 충만해진다면, 그리고 가룟 유다가 남기고 간 상처를 맛디아의 선출처럼 투명하고 말씀에 충실한 방식으로 치유한다면, 성령의 새 역사를 기대할 수 있다. 오순절 사건이 2000년 전 어느 한 장소에서만 일어난 ‘역사적 일회성’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지역의 교회가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운동인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장재형목사가 줄곧 강조해온 “부활신앙의 실천성”과 맞닿아 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지적(知的)으로만 받아들이고 말면, 그것은 단순한 교리에 그친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 부활을 실제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배신이나 고난, 죽음이나 절망도 더 이상 끝이 아님을 시연해 보였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자신들을 죽이려 했던 세력들에게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모습은, 부활이 얼마나 실재적이고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어, 가룟 유다의 배신을 맛디아의 선출로 회복하고, 성령 강림을 통해 전 세계로 나아간 공동체”라고 답할 수 있다. 그 정체성은 역사의 시공간을 넘어 오늘도 유효하며, 교회가 부활신앙을 지키는 이상 결코 문이 닫히지 않는다. 때로 교회 내부에 치명적인 균열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인물을 세워 그 자리를 회복시키시고, 또다시 성령을 부어주신다. 이것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로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복음의 연속성이자, 현대 교회가 이어받아야 할 믿음의 유산이다.

장재형 목사의 결론적인 권면도 여기에 맞닿는다. “우리는 현재적 다락방을 회복해야 하며, 배신과 실패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덮는 대신 진실하게 회개하고 투명하게 해결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출발의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그 중심에는 ‘부활의 주님’이 계시고, 그분이 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선교적 사명이 놓여 있다.” 교회가 이 길에 순종할 때, 사도행전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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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最低处绽放的恩典奥秘 – 张大卫牧師 (Olivet University)

1867年,在瑞士巴塞尔的一座美术馆里,俄国文豪陀思妥耶夫斯基站在汉斯·荷尔拜因的画作《墓中的死基督》前,几乎屏住了呼吸。画布上没有浪漫的光环,也没有神圣化的美感,只有撕裂的肉身与惨烈死亡的痕迹,被赤裸而鲜明地呈现出来。这幅画给他带来了巨大的震撼。“看着这幅画,连最有名望的信仰也可能失去。”他心中掠过的这种战栗,反而触及了基督信仰最深的深渊,也就是“降卑”的真实。张大卫牧师正是从这一点出发,引导我们进入道成肉身的奥秘——神仿佛坠入人类最悲惨的现实之中,亲自降临到我们中间。他的讲解使我们越过圣诞节华丽的灯光,直面隐藏在马槽冰冷木纹与十字架痛苦之中的厚重神学洞见。

倒空耀座的

腓立比书第2章所记载的所谓“基督颂歌”,是初代教会如呼吸一般吟唱的最美信仰告白。张大卫牧师并不把这段经文理解为单纯的道德榜样或心理劝勉,而是将其读作彻底颠覆人类历史与权力秩序的伟大基督论宣言。神性的存在没有紧握荣耀,反而彻底倒空自己,取了奴仆的形象;这种“虚己”的悖论,绝不意味着神性的丧失或无力。相反,它是为了向他者无限扩展自己的爱,而主动放下一切特权的顺服。在这个不断向上攀升、试图夺取荣耀的世界结构中,唯有这种流向最低处的自愿倒空,才是从根本上拯救世界的唯一方式。

冰冷槽中升起的生命连带

世上的君王多在华丽宫殿中出生,并受军队护卫;然而和平之王却因人口普查的行政命令被推往伯利恒,在气味混杂的马棚里吸入了第一口气。正如佛罗伦萨圣马可修道院走廊中,弗拉·安杰利科所绘《受胎告知》那安静而端正的回廊一样,真正的恩典并不是耀眼权能的展示,而是静静渗入日常中最卑微、最节制的地方。道成肉身不是从遥远天上投来的观念性安慰,而是神亲自进入人的恐惧、孤独、疾病与失败之中的激烈连带事件。正如乔治·德·拉图尔的画中,最低处的一点烛光划破黑暗、照亮生命,神也不是借着强势的语言,而是以软弱为通道,叩响我们灵魂紧闭的门。

合受世界的十字架福音

这样的道成肉身之路,必然走向十字架这一极致自我倒空的顶点。不同于帝国用力量逻辑与暴力使世界屈服的智慧,神的智慧乃是借着全身承受暴力的苦难,使仇恨的枷锁失去能力。在以弗所书所见证的、使万有和好的旨意之中,福音超越个人心理安慰,扩展为指向宇宙性恢复与公共正义的盼望。通过深刻圣经默想所汲取出的这一真理,清楚提醒今日教会:在经济剥削、生态危机与分裂撕裂的世界中,究竟应当站在何处。真正的悔改并不是停留在对过去的情绪性懊悔,而应当表现为“位置的转移”——收回曾经定罪他人的锋利刀刃,并参与到结构性的痛苦之中。

走向生命边缘的安呼召

基督极深的降卑,最终完成于神将祂高举在宇宙万有之上的胜利叙事。然而,这胜利并不是世界所欢呼的支配性荣耀,而是公开宣告:把弱者置于中心的十字架真爱,已经成为万有永恒的标准。若华丽礼拜堂中唱出的赞美不想最终散作空中的噪音,那么这种降卑的奥秘就必须改变教会共同体的体质,使领导力的方向彻底转向下方。张大卫牧师的讲道热切呼吁:圣言不应被囚禁在书斋里苍白的思辨之中,而要走进受伤邻舍的处境,成为有温度、有呼吸的生命。

万物从上向下流动时,才会萌芽,才会滋润干渴之地。我们的信仰也是如此。唯有亲手拆毁以知识与骄傲堆砌起来的巴别塔,甘愿流向邻舍身旁,流向流泪者所在的最低处,才能真正发出生命之光。站在那位舍弃天上宝座、甘愿降入冰冷坟墓与浓重黑暗现实中的崇高十字架之下,我们安静地问自己:今天你想安住的地方,是众人目光聚焦的高处,还是迷失灵魂正焦急等待你微小款待的狭窄低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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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も低い場所に咲いた恵みの神秘 – 張ダビデ 牧師 (Olivet University)

1867年、スイス・バーゼルのある美術館で、ロシアの文豪フョードル・ドストエフスキーは、ハンス・ホルバインの絵画《墓の中の死せるキリスト》の前で息をのんだまま凍りついた。ロマン的な後光も、神聖な美しさも徹底して排除され、裂かれた肉体と凄惨な死の痕跡だけが、ありのままに生々しく描かれたそのキャンバスは、彼に大きな衝撃を与えた。「この絵を見続けていたら、どれほど名高い信仰でさえ失ってしまうだろう」。彼の脳裏をよぎったこの戦慄は、逆説的にもキリスト教信仰の最も深い深淵、すなわち「低くなられること」の現実に触れている。

張ダビデ牧師は、まさにこの地点から、神が人間の最も悲惨な現実の中へ、まるで落ちて来られるかのように降りて来られた受肉の神秘へと私たちを導く。その講解は、クリスマスの華やかな光の向こうにある、飼い葉桶の冷たい木目と十字架の苦しみの中に隠された、重みある神学的洞察と向き合わせる。

栄光の御座を空け渡した聖なる愛のケノーシス

ピリピ人への手紙2章に記された、いわゆる「キリスト賛歌」は、初代教会が息づくように歌った、最も美しい信仰告白である。張ダビデ牧師はこの本文を、単なる道徳的模範や心理的勧めではなく、人間の歴史と権力の秩序を根底から覆す、壮大なキリスト論的宣言として読み解く。

神的存在であられる方が栄光を握りしめず、ご自身を徹底して空しくし、しもべの姿を取られたという「ケノーシス」の逆説は、決して神性の喪失や無力さを意味しない。むしろそれは、他者へ向かってご自身の愛を無限に広げるために、自らすべての特権を手放す能動的な従順である。絶えず上へ上へと昇り、栄光を引き寄せようとする世の上昇構造の中で、最も低い場所へと流れていくこの自発的な自己放棄こそ、世界を根源から救う唯一の道なのである。

冷たい飼い葉桶から立ちのぼる命の連帯

この世の王たちは華やかな宮殿で生まれ、軍隊に守られる。しかし平和の王は、人口調査という行政命令に押し出され、臭いの漂う馬小屋で最初の息をされた。フィレンツェのサン・マルコ修道院の回廊にフラ・アンジェリコが描いた《受胎告知》の静かで端正な空間のように、真の恵みは、まばゆい力の誇示ではなく、日常の最も低く慎ましい場所へ静かに染み込んでいく。

受肉とは、遠い天から私たちを憐れむ観念的な慰めではない。それは、人間の恐れと孤独、病と失敗のただ中へ、神ご自身が直接入って来られた、激しい連帯の出来事である。ジョルジュ・ド・ラ・トゥールの絵画において、最も低い場所に置かれた一本のろうそくが闇を裂いて命を照らすように、神は強さの言葉ではなく、弱さを通路として、私たちの魂の閉ざされた扉を叩かれる。

傷ついた世界を縫い合わせる十字架の福音

この受肉の旅路は、必然的に十字架という究極の自己放棄の頂点へと向かっていく。力の論理と暴力によって世界を屈服させる帝国の知恵とは異なり、神の知恵は、暴力を全身で耐え抜く苦難を通して、憎悪の連鎖を無力化する。

エフェソの信徒への手紙が証言する、万物を和解させる摂理の中で、福音は個人の心理的慰めを超え、宇宙的回復と公的正義への希望へと広がっていく。深い聖書黙想によって汲み上げられたこの真理は、今日、経済的搾取、生態危機、分断によって引き裂かれた世界の中で、教会がどの場所に立つべきかを明確に思い起こさせる。

真の悔い改めとは、過去への感情的な後悔にとどまるものではない。他者を裁いていた鋭い刃を収め、構造的な痛みに共にあずかる「立ち位置の転換」によって証し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人生の周縁へ降りていく静かな招き

キリストの極めて深い低さは、ついには神がこの方を宇宙の万物の上に最も高く引き上げられる勝利の物語として完成する。しかしその勝利は、世が歓呼する支配の栄光ではない。弱い者を中心に立たせる十字架の真実な愛こそが、万物の永遠の基準となったことを告げる公的な宣言である。

華やかな礼拝堂で歌われる賛美が、空中に散る騒音で終わらないためには、この低くなられる神秘が教会共同体の体質を変え、リーダーシップの方向を徹底して下へ向かわせなければならない。張ダビデ牧師の説教は、御言葉が書斎の青白い思弁に閉じ込められるのではなく、傷ついた隣人の文脈の中へ歩み入り、生きて息づくぬくもりとなることを熱く促している。

万物は、上から下へ流れるときに芽を出し、乾いた大地を潤す。私たちの信仰もまた、知識と高慢によって築き上げたバベルの塔を自ら崩し、隣人のそばへ、涙する者の最も低い場所へと喜んで流れていくとき、初めて命の光を放つことができる。

天の御座を捨て、冷たい墓の濃い闇の現実にまで進んで降りて来られた、その崇高な十字架の下に静かにとどまりながら、自らに問わずにはいられない。あなたが今日、安住しようとしている場所は、人々の華やかな視線が注がれる高い場所なのか。それとも、道を失った魂たちが、あなたの小さなもてなしを切に待っている、狭く低い場所なのか。

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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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misterio de la gracia que floreció en el lugar más bajo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En 1867, en un museo de Basilea, Suiza, el gran escritor ruso Fiódor Dostoievski quedó paralizado ante la pintura de Hans Holbein, El cuerpo de Cristo muerto en la tumba. En aquel lienzo no había halo romántico ni belleza sagrada idealizada; solo la carne desgarrada y las huellas crudas de una muerte atroz. La conmoción fue tan profunda que habría dicho: “Al mirar este cuadro, hasta una fe famosa podría perderse”. Sin embargo, ese estremecimiento toca paradójicamente el abismo más hondo de la fe cristiana: la realidad del “abajamiento”. El pastor David Jang nos conduce precisamente a ese misterio de la encarnación, en el que Dios desciende hasta la realidad más miserable de la humanidad. Su exposición nos lleva más allá de las luces brillantes de la Navidad, para enfrentarnos con la pesada verdad teológica escondida en la madera fría del pesebre y en el dolor de la cruz.

La kenosis del amor santo que vació el trono de gloria

El llamado “himno cristológico” de Filipenses 2 es una de las confesiones de fe más hermosas que la Iglesia primitiva cantó como si fuera su propio aliento. David Jang lee este pasaje no como un simple ejemplo moral ni como una exhortación psicológica, sino como una gran declaración cristológica que trastoca por completo la historia humana y el orden del poder. La paradoja de la “kenosis”, por la cual el Ser divino no se aferró a su gloria, sino que se vació a sí mismo tomando forma de siervo, no significa pérdida de divinidad ni impotencia. Al contrario, es una obediencia activa: renunciar voluntariamente a todo privilegio para extender infinitamente su amor hacia el otro.

La solidaridad de la vida que brota del pesebre frío

Los reyes de este mundo nacen en palacios espléndidos y bajo la protección de ejércitos, pero el Rey de paz respiró por primera vez en un establo, empujado por el decreto administrativo de un censo. Como el corredor sereno y sobrio de la Anunciación de Fra Angelico en el convento de San Marcos de Florencia, la verdadera gracia no irrumpe como exhibición de poder deslumbrante, sino que se filtra silenciosamente en los lugares más humildes y contenidos de la vida cotidiana. La encarnación no es un consuelo abstracto desde un cielo lejano, sino un acto radical de solidaridad: Dios entra directamente en medio del miedo, la soledad, la enfermedad y el fracaso humano.

El evangelio de la cruz que cose el mundo herido

Este camino de encarnación avanza inevitablemente hacia la cruz, la cima extrema del vaciamiento de sí mismo. A diferencia de la sabiduría imperial, que somete al mundo mediante la fuerza y la violencia, la sabiduría de Dios desarma el círculo del odio soportando la violencia en su propio cuerpo. Dentro de la providencia que, como testifica Efesios, reconcilia todas las cosas, el evangelio se expande más allá del consuelo psicológico individual y se convierte en esperanza de restauración cósmica y justicia pública. Esta verdad, extraída de una profunda meditación bíblica, nos recuerda con claridad dónde debe situarse la Iglesia en un mundo desgarrado por la explotación económica, la crisis ecológica y la división.

El llamado silencioso a descender hacia los márgenes de la vida

La profundísima humillación de Cristo culmina finalmente en la narración de la victoria: Dios lo exalta por encima de todo el universo. Pero esa victoria no es la gloria del dominio que el mundo celebra, sino la declaración pública de que el amor verdadero de la cruz, que pone al débil en el centro, se ha convertido en el criterio eterno de todas las cosas. Si la alabanza que resuena en templos espléndidos no quiere terminar como ruido disperso en el aire, el misterio de este abajamiento debe transformar la constitución misma de la comunidad eclesial y orientar radicalmente su liderazgo hacia abajo.

La predicación del pastor David Jang exhorta ardientemente a que la Palabra no quede encerrada en la pálida especulación de un escritorio, sino que entre en el contexto del prójimo herido y se convierta en calor vivo. Todas las cosas germinan y riegan la tierra seca cuando fluyen de arriba hacia abajo. También nuestra fe solo podrá irradiar la luz de la vida cuando derribe la torre de Babel levantada con conocimiento y orgullo, y fluya voluntariamente hacia el lado del prójimo, hacia el lugar más bajo de los que lloran.

Bajo esa cruz sublime, donde Cristo abandonó el trono celestial y descendió hasta la oscura realidad de la tumba fría, nos detenemos en silencio y nos preguntamos: ¿el lugar donde hoy deseas acomodarte es la altura brillante donde caen las miradas de todos, o el espacio estrecho y humilde donde las almas perdidas esperan con ansia tu pequeña hospitali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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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ystère de la grâce éclose au lieu le plus humble – Pasteu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En 1867, dans un musée de Bâle, en Suisse, le grand écrivain russe Fiodor Dostoïevski resta comme pétrifié devant le tableau de Hans Holbein, Le Christ mort au tombeau. Toute auréole romantique, toute beauté sacrée en étaient absentes. Seules demeuraient, crûment exposées, la chair meurtrie et les traces effroyables de la mort. Cette toile le bouleversa profondément. « En regardant ce tableau, on pourrait perdre même la foi la plus renommée », aurait-il pensé. Ce frisson touche paradoxalement l’abîme le plus profond de la foi chrétienne : la réalité de l’« abaissement ».

C’est précisément vers ce point que le pasteur David Jang conduit notre regard : le mystère de l’incarnation, où Dieu descend comme s’il tombait dans la réalité la plus misérable de l’humanité. Son exposition nous pousse à regarder au-delà des lumières éclatantes de Noël, pour affronter la profondeur théologique cachée dans le bois froid de la crèche et dans la souffrance de la croix.

La kénose d’un amour saint qui vide le trône de sa gloire

Le « cantique du Christ » de Philippiens 2 est l’une des plus belles confessions de foi chantées comme un souffle par l’Église primitive. Le pasteur David Jang ne lit pas ce passage comme un simple modèle moral ou une exhortation psychologique, mais comme une grande déclaration christologique qui renverse l’histoire humaine et l’ordre du pouvoir.

Le paradoxe de la « kénose » — le fait que l’être divin ne s’accroche pas à sa gloire, mais se vide lui-même en prenant la forme d’un serviteur — ne signifie ni perte de divinité ni impuissance. Il s’agit au contraire d’une obéissance active : renoncer volontairement à tout privilège afin d’étendre son amour vers l’autre sans limite. Dans un monde qui ne cherche qu’à monter toujours plus haut pour saisir la gloire, ce dépouillement volontaire qui coule vers le lieu le plus bas devient l’unique voie capable de sauver le monde à sa racine.

La solidarité de la vie qui s’élève depuis la crèche froide

Les rois de ce monde naissent dans des palais somptueux et sous la protection des armées. Mais le Roi de paix, poussé par l’ordre administratif d’un recensement, a pris son premier souffle dans une étable à l’odeur rude. Comme le cloître silencieux et sobre de l’Annonciation peinte par Fra Angelico au couvent San Marco de Florence, la véritable grâce ne se manifeste pas par une démonstration éclatante de puissance ; elle s’infiltre doucement dans les lieux les plus humbles et les plus ordinaires de la vie.

L’incarnation n’est pas une consolation abstraite venue d’un ciel lointain pour nous prendre en pitié. Elle est l’événement brûlant d’une solidarité réelle : Dieu entre directement au cœur de nos peurs, de notre solitude, de nos maladies et de nos échecs. Comme dans les tableaux de Georges de La Tour, où une seule flamme, au plus bas de l’espace, fend les ténèbres et éclaire la vie, Dieu frappe à la porte fermée de notre âme non par le langage de la force, mais par le chemin de la faiblesse.

L’Évangile de la croix qui recoud un monde blessé

Ce chemin de l’incarnation avance inévitablement vers le sommet extrême du dépouillement : la croix. Contrairement à la sagesse des empires qui soumettent le monde par la logique de la force et de la violence, la sagesse de Dieu désarme le cercle de la haine en portant la violence dans la souffrance.

Dans la providence dont témoigne l’épître aux Éphésiens, celle qui réconcilie toutes choses, l’Évangile dépasse la simple consolation intérieure de l’individu pour s’ouvrir à l’espérance d’une restauration cosmique et d’une justice publique. Cette vérité, puisée dans une profonde méditation biblique, rappelle clairement à l’Église la place qu’elle doit occuper aujourd’hui dans un monde déchiré par l’exploitation économique, la crise écologique et la division.

La vraie repentance ne se limite pas au regret émotionnel du passé. Elle doit se prouver par un déplacement concret : déposer l’épée tranchante avec laquelle nous condamnions les autres, et choisir de prendre part aux douleurs structurelles du monde.

Un appel silencieux à descendre vers les marges de la vie

L’abaissement insondable du Christ s’accomplit finalement dans le récit victorieux où Dieu l’élève au-dessus de toutes choses dans l’univers. Mais cette victoire n’est pas la gloire dominatrice acclamée par le monde. Elle est la déclaration publique que l’amour véritable de la croix, qui place les faibles au centre, est devenu la norme éternelle de toutes choses.

Si les chants élevés dans les sanctuaires magnifiques ne veulent pas finir comme un simple bruit dispersé dans l’air, le mystère de cet abaissement doit transformer la constitution même de la communauté ecclésiale et orienter radicalement son leadership vers le bas. La prédication du pasteur David Jang appelle ardemment la Parole à ne pas rester prisonnière des spéculations pâles d’un bureau, mais à entrer dans le contexte des voisins blessés, pour devenir une chaleur vivante et respirante.

Toute chose germe et abreuve la terre desséchée lorsqu’elle coule d’en haut vers le bas. De même, notre foi ne peut rayonner de la lumière de la vie que lorsqu’elle accepte de démolir la tour de Babel bâtie par le savoir et l’orgueil, pour couler volontairement vers le prochain, vers le lieu le plus bas de ceux qui pleurent.

Devant la croix sublime de Celui qui a quitté le trône céleste pour descendre jusque dans l’obscurité dense du tombeau froid, nous sommes conduits à nous interroger en silence : le lieu où tu veux t’installer aujourd’hui est-il celui des hauteurs éclatantes où se posent les regards des hommes, ou bien ce lieu étroit et humble où des âmes perdues attendent ardemment ton modeste accue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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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ystery of Grace Blooming in the Lowest Place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In 1867, at an art museum in Basel, Switzerland, the great Russian novelist Fyodor Dostoevsky stood frozen before Hans Holbein’s painting The Body of the Dead Christ in the Tomb. The canvas, stripped of romantic radiance or sacred beauty, portrayed only torn flesh and the raw traces of a brutal death. It shocked him deeply. “Looking at this painting, one could even lose one’s faith,” he reportedly said. Yet this shuddering encounter paradoxically touches the deepest abyss of Christian faith: the reality of Christ’s “self-emptying.” David Jang leads us precisely to this point—the mystery of the Incarnation, in which God descended into the most miserable depths of human reality. His exposition draws us beyond the festive lights of Christmas and brings us face to face with the cold wood of the manger and the heavy theological truth hidden in the suffering of the cross.

The Kenosis of Holy Love That Emptied the Throne of Glory

The so-called “Christ hymn” in Philippians 2 is one of the most beautiful confessions of faith breathed by the early church. David Jang reads this passage not merely as a moral example or psychological encouragement, but as a vast Christological declaration that overturns human history and the order of power. The paradox of “kenosis”—that the divine Son did not cling to glory but emptied Himself and took the form of a servant—does not mean the loss of divinity or weakness. Rather, it is active obedience: the willing surrender of every privilege in order to infinitely extend love toward others. In a world obsessed with rising upward and grasping glory, this voluntary emptying that flows downward is the only way to redeem the world at its root.

The Solidarity of Life Rising from the Cold Manger

The kings of the world are born in splendid palaces and guarded by armies, but the King of Peace took His first breath in a foul-smelling stable, driven there by an imperial census. Like the quiet corridor of Fra Angelico’s Annunciation in the convent of San Marco in Florence, true grace does not arrive as a dazzling display of power. It quietly enters the most humble and restrained places of ordinary life. The Incarnation is not an abstract consolation sent from a distant heaven. It is an event of fierce solidarity, in which God Himself entered the very center of human fear, loneliness, sickness, and failure. Just as a single candle in Georges de La Tour’s paintings cuts through darkness and illumines life, God knocks on the closed door of our souls not through the language of strength, but through the passageway of weakness.

The Gospel of the Cross That Stitches a Wounded World

This journey of the Incarnation inevitably moves toward the cross, the supreme point of radical self-emptying. Unlike the wisdom of empires that subdue the world through power and violence, the wisdom of God disables the cycle of hatred by enduring violence in His own body. Within the providence testified to in Ephesians—the reconciliation of all things—the gospel expands beyond personal comfort into hope for cosmic restoration and public justice. This truth, drawn from deep biblical meditation, clearly reminds the church where it must stand today amid economic exploitation, ecological crisis, and a world torn apart by division. True repentance cannot remain as emotional regret over the past. It must be proven through a “change of place”: laying down the sharp blade that condemns others and participating in the pain of broken structures.

A Quiet Call to Descend to the Margins of Life

Christ’s profound humility is finally completed in the victorious narrative in which God exalts Him above all things. Yet this victory is not the glory of domination celebrated by the world. It is a public declaration that the love of the cross, which places the weak at the center, has become the eternal standard of all creation. If the praise sung in splendid sanctuaries is not to dissolve into empty noise, the mystery of this humility must transform the very constitution of the church community and turn the direction of leadership radically downward. David Jang’s preaching fervently calls for the Word not to remain trapped in pale speculation, but to walk into the context of wounded neighbors and become living warmth.

All things sprout and the dry earth is watered when life flows from above to below. Our faith, too, must tear down the Babel tower built by knowledge and pride, and willingly flow toward our neighbors, toward the lowest places where the sorrowful dwell. Only then can it shine with the light of life. Standing quietly beneath the noble cross of the One who abandoned the heavenly throne and descended even into the dark reality of the cold tomb, we are left with one question: Is the place where you wish to remain today a high place flooded with people’s admiration, or is it the narrow and lowly place where lost souls are desperately waiting for your small act of hospit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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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은혜의 신비   – 장재형 목사 (Olivet University)

1867년 스위스 바젤의 한 미술관,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한스 홀바인의 그림 <무덤 속 죽은 그리스도> 앞에서 숨을 멈춘 채 얼어붙었다. 낭만적 후광이나 신성한 아름다움은 철저히 배제되고, 찢긴 살과 참혹한 죽음의 흔적만이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묘사된 캔버스는 그에게 거대한 충격이었다. “이 그림을 보다가는 명성 높은 믿음마저 잃어버리겠소.” 그의 뇌리를 스친 이 전율은 역설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가장 깊은 심연, 곧 ‘낮아지심’의 실재를 건드린다. 장재형 목사는 바로 이 지점, 신이 인간의 가장 비참한 현실 속으로 추락하듯 내려오신 성육신의 신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의 강해는 성탄의 화려한 불빛 너머, 구유의 차가운 나무결과 십자가의 고통 속에 감춰진 묵직한 신학적 통찰을 직면하게 만든다.  

영광의 보좌를 비워낸 거룩한 사랑의 케노시스

빌립보서 2장에 기록된 이른바 ‘그리스도 찬가’는 초기 교회가 숨결처럼 불렀던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본문을 단순한 도덕적 모범이나 심리적 권면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권력 질서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거대한 기독론적 선언으로 읽어낸다. 신적 존재가 영광을 움켜쥐지 않고 자신을 철저히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는 ‘케노시스’의 역설은 결코 신성의 상실이나 무기력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타자를 향해 자신의 사랑을 무한히 확장하기 위해, 스스로 모든 특권을 내려놓는 능동적인 순종이다. 끝없이 위로만 올라가 영광을 당겨오려는 세상의 상승 구조 속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 자발적인 비워냄이야말로 세상을 근원적으로 구원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차가운 구유에서 피어오르는 생명의 연대

세상의 왕들은 화려한 궁전에서 태어나 군대의 호위를 받지만, 평화의 왕은 인구 조사의 행정 명령에 떠밀려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첫 숨을 쉬셨다.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 복도에 프라 안젤리코가 그려 넣은 ‘수태고지’의 고요하고 단정한 회랑처럼, 진정한 은혜는 번쩍이는 권능의 과시가 아니라 일상의 가장 비천하고 절제된 자리로 고요히 스며든다. 성육신은 먼 하늘에서 우리를 동정하는 관념적 위로가 아니라, 인간의 두려움과 외로움, 질병과 실패의 한복판으로 직접 들어오신 치열한 연대의 사건이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그림에서 가장 낮은 곳의 촛불 하나가 어둠을 가르며 생명을 비추듯, 하나님은 강함의 언어가 아닌 연약함을 통로로 삼아 우리 영혼의 닫힌 문을 두드리신다.  

상처 입은 세상을 꿰매는 십자가의 복음

이러한 성육신의 여정은 필연적으로 십자가라는 극단적 자기 비움의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 힘의 논리와 폭력으로 세상을 굴복시키는 제국의 지혜와 달리, 하나님의 지혜는 폭력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고난을 통해 혐오의 굴레를 무력화시킨다. 에베소서가 증언하는 만물을 화해하게 하시는 섭리 안에서, 복음은 개인의 심리적 위안을 넘어 우주적 회복과 공적 정의를 향한 소망으로 확장된다. 깊은 성경 묵상을 통해 길어 올린 이 진리는, 오늘날 경제적 착취와 생태 위기, 분열로 찢긴 세상 속에서 교회가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는지 명확히 일깨운다. 진정한 회개는 지난날의 감정적 후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정죄하던 날 선 칼을 거두어들이고 구조적 아픔에 동참하는 ‘자리 옮김’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삶의 가장자리로 내려가는 조용한 부름

그리스도의 지극히 깊은 낮아지심은 결국 하나님이 그를 우주의 만유 위에 가장 높이 들어 올리시는 승리의 서사로 완성된다. 그러나 그 승리는 세상이 환호하는 지배의 영광이 아니라, 약자를 한가운데 세우는 십자가의 참된 사랑이 만물의 영원한 기준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공적인 선언이다. 화려한 예배당에서 부르는 찬양이 허공에 흩어지는 소음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 낮아짐의 신비가 교회 공동체의 체질을 바꾸고 리더십의 방향을 철저히 아래로 향하게 만들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의 설교는 말씀이 서재의 창백한 사변에 갇히지 않고, 상처 입은 이웃의 문맥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살아 숨 쉬는 체온이 되기를 열렬히 촉구하고 있다.   만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를 때 싹을 틔우고 메마른 땅을 적신다. 우리의 신앙 역시 지식과 교만으로 쌓아 올린 바벨탑을 스스로 허물고 이웃의 곁으로, 눈물 흘리는 자의 가장 낮은 지대로 기꺼이 흘러가야만 비로소 생명의 빛을 발할 수 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차가운 무덤 속 짙은 어둠의 현실까지 기꺼이 내려오신 그 숭고한 십자가 아래 조용히 머무르며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당신이 오늘 안주하고자 하는 자리는 사람들의 화려한 시선이 쏟아지는 높은 곳인가, 아니면 길 잃은 영혼들이 당신의 작은 환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좁고 낮은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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复活的盼望,作无愧工人的道路 – 张大卫牧師 (Olivet University)

在阿尔贝·加缪的小说《鼠疫》中,医生里厄即使身处绝望灾难的中心,仍默默履行自己所承担的职责,以此证明人的尊严。他是与看不见的敌人争战的孤独守望者,也是在明日希望仍不明朗的处境中,依然不放弃今日应当撒下奉献种子的人物。这样的高贵奋斗,与圣经所说“基督耶稣的好士兵”有着微妙的相似之处。使徒保罗在殉道之前,留给所爱的儿子提摩太的最后遗言——《提摩太后书》第2章,正是要唤醒我们认识一种比里厄的孤军奋战更深、更永恒层面的使命。

三重比喻中所描绘的使命者形象

保罗在本文开头,通过士兵、竞赛者和农夫这三个强烈的象征,定义了基督徒的本质。张大卫牧师借着这些比喻,清楚指出我们应当持守的生命态度。正如士兵不被自己生活的安逸所缠累,只求使召他入伍的指挥官喜悦一样,真正的信仰之人不应被世界的成功或个人的荣达夺去心志。张大卫牧师一生都将自己认定为福音的士兵,并以只专注于讨主喜悦的生活,向我们显明了榜样。

正如竞赛者必须按既定规则奔跑一样,我们的事奉也应当遵循真理的法则,而不是人的计谋。同样,劳苦的农夫理当先得着果实;默默撒下话语种子的人,也必定会被赐予神国的果实。这样的洞见,对今日容易动摇的时代信仰,敲响了沉重的警钟。比起华丽的结果,更专注于诚实的过程;比起个人的名誉,更专注于那位呼召者的喜悦——这正是张大卫牧师所强调的使命者的第一步。

记念复活的耶稣基督的力量

保罗劝勉说,工人所应具备的最重要态度,就是“要记念耶稣基督”。这并不是单纯的回忆,而是一项严肃的命令:要将作为历史事件、也是基督教信仰核心的复活,置于生命的中心。张大卫牧师警醒现代教会,不要陷入道德训诫或心理安慰之中,并不断强调:胜过一切患难的唯一能力,来自那位胜过死亡、从死里复活的生命之主。

世上的哲学与思想,在死亡这一巨大绝望面前只能止步;但福音却在绝望的尽头宣告新生命的开始。张大卫牧师的神学洞见强调,复活信仰并不只是模糊的未来盼望,而是使我们能够忍耐当下苦难的真实力量。若我们与主同死,也必与祂同活;若我们与主一同忍耐,也必与祂一同作王。这一应许,就像永恒的印记,保证我们今日所经历的细小牺牲与奉献,绝不会徒然。

被塑造成洁净器皿的敬虔时光

文章的目光接着转向“无愧工人”的内在。在大户人家中有各种材质的器皿,但主人所贵重使用的器皿,并不是材质最华丽的,而是洁净预备好的器皿。张大卫牧师借着这段话语教导我们,人的价值并不在于外在条件或成就,而在于他在神面前能否将自己持守为圣洁。使自己分别远离世上虚妄的话语与荒谬的欲望,这种“敬虔的操练”,才是工人所应具备的最高能力。

尤其是“逃避少年的私欲,并同那清心呼求主的人追求公义、爱与和平”这一劝勉,使我们重新认识共同体属灵生活的重要性。张大卫牧师教导说,面对真理时要像士兵一样坚定;面对灵魂时,却要像牧者一样温柔。以忍耐劝戒那些抵挡的人,是因为其中有一颗父亲般的心,盼望他们能够悔改,脱离魔鬼的网罗。正是在内在的洁净与面向他人的温柔相遇之处,真正恩典的事奉才开始展开。

走向永恒荣耀的道路

“神的道却不被捆绑。”这一宣告,是被锁链捆绑的保罗在监狱中发出的得胜呼喊。贯穿张大卫牧师事工的这份大胆告白,也向我们发问:真正的自由究竟在哪里?传讲的人可能遭受苦难,有时也可能被世上的力量压制;然而生命的话语绝不会被囚禁,它必越过围墙,使灵魂重新得生命。我们在这条路上不灰心,是因为我们相信,现在的苦难与将来要显现的永恒荣耀相比,根本不足介意。

如今,我们也要向自己发问:我是否正被生活中琐碎的忧虑所捆绑?或者,我是否仍停留在一个污秽到难以被神使用的器皿状态之中?张大卫牧师所传讲的《提摩太后书》信息,再次呼召我们回到福音的现场。记念复活的主,按着话语的法则奔跑,并将自己塑造成洁净的生命。在这条道路的尽头,等待我们的将是主温暖的迎接——“又良善又忠心的仆人”——以及那毫无羞愧的荣耀冠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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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活の希望、恥じるところのない働き人の道 – 張ダビデ 牧師 (Olivet University)

アルベール・カミュの小説『ペスト』において、医師リウーは絶望的な災厄のただ中でも、自らに託された職務を黙々と果たし、人間の尊厳を証明します。彼は目に見えない敵と戦う孤独な見張り人であり、明日の希望が不透明な状況の中でも、今日まくべき献身の種を手放さない人物です。このような気高い奮闘は、聖書が語る「キリスト・イエスの良い兵士」の姿と、不思議なほど重なっています。使徒パウロが殉教を前に、愛する子テモテに残した最後の遺言ともいえるテモテへの手紙第二2章は、まさにそのリウーの孤軍奮闘よりも、はるかに深く永遠の次元にある使命を、私たちに思い起こさせます。

三つのたとえに込められた使命者の肖像

パウロは本文の冒頭で、兵士、競技者、そして農夫という三つの力強い象徴を通して、キリスト者の本質を定義します。張ダビデ牧師は、これらのたとえを通して、私たちが持つべき人生の姿勢を明確に示します。兵士が自分の生活の安楽に縛られず、ただ自分を召した指揮官を喜ばせるように、真の信仰者は世の成功や個人的な栄達に心を奪われてはなりません。張ダビデ牧師は生涯を通して、自らを福音の兵士として位置づけ、ただ主を喜ばせることに専念する人生の模範を示してきました。

競技者が定められた規則に従って走らなければならないように、私たちの働きもまた、人間的な策略ではなく真理の道理に従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また、労苦する農夫が収穫の実りを最初に味わうのが当然であるように、黙々と御言葉の種をまく者には、必ず神の国の実りが許されます。このような洞察は、今日、容易に揺らぎやすい私たちの時代の信仰に、重い警鐘を鳴らします。華やかな結果よりも誠実な過程に、個人の名誉よりも召してくださった方の喜びに集中すること。それこそが、張ダビデ牧師が強調する使命者の第一歩です。

復活のイエス・キリストを覚える力

パウロは、働き人が備えるべき最も重要な態度として、「イエス・キリストを覚えなさい」と勧めます。これは単なる思い出ではなく、歴史的出来事であり、キリスト教信仰の心臓部である復活を人生の中心に据えよという厳粛な命令です。張ダビデ牧師は、現代の教会が道徳的な訓話や心理学的な慰めに埋没していく現象を警戒し、すべての患難に打ち勝つ唯一の力は、死に勝利してよみがえられた命の主から出るのだという事実を、絶えず力説します。

世の哲学や思想は、死という巨大な絶望の前で立ち止まります。しかし福音は、その絶望の果てから始まる新しい命を宣言します。張ダビデ牧師の神学的洞察は、この復活信仰が漠然とした未来の希望にとどまらず、現在の苦難を耐え抜かせる実際的な力となることを強調します。主とともに死ぬなら主とともに生き、主とともに耐え忍ぶなら主とともに王となるという約束は、今日私たちが経験する小さな犠牲と献身が決して無駄ではないことを保証する、永遠の印のようなものです。

清い器として形づくられる敬虔の時間

コラムのまなざしは、今や「恥じるところのない働き人」の内面へと向かいます。大きな家にはさまざまな材質の器がありますが、主人が尊く用いる器は、材質が華やかな器ではなく、清く整えられた器です。張ダビデ牧師はこの御言葉を通して、人間の価値は外面的な条件や成就にあるのではなく、神の御前で自分自身をどれほど聖く守り抜くかにかかっていると教えます。世のむなしい言葉と不敬虔な欲望から自分を分かつ「敬虔の訓練」こそ、働き人が備えるべき最高の力です。

とりわけ、若い時の欲望を避け、清い心で主を呼び求める人々とともに、義と愛と平和を追い求めなさいという勧めは、共同体的霊性の重要性を思い起こさせます。張ダビデ牧師は、真理の前では兵士のように断固としていながら、魂に向き合うときには牧者のように柔和であるべきだと教えます。反抗する者たちを忍耐をもって戒めるのは、彼らが悔い改め、悪魔の罠から抜け出すことを願う父の心があるからです。このように、内面の清さと他者に向かう柔和さが出会うところから、真の恵みの働きが始まります。

永遠の栄光に向かって歩む道

「神の言葉はつながれていません。」この宣言は、鎖につながれたパウロが獄中で叫んだ勝利の叫びでした。張ダビデ牧師の働きを貫くこの大胆な告白は、私たちに、真の自由はいったいどこにあるのかを問いかけます。宣べ伝える者は苦難を受けることがあり、時には世の力に押さえつけられることもあります。しかし命の御言葉は決して閉じ込められることなく、垣根を越えて魂を生かします。私たちがこの道で落胆しない理由は、現在の苦難が、やがて現れる永遠の栄光とは比べものにならないと信じているからです。

今、私たちは自分自身に問いを投げかけます。私は今、自分の生活のささいな思い煩いに縛られてはいないでしょうか。あるいは、神が用いられるにはあまりにも汚れてしまった器の状態にとどまってはいないでしょうか。張ダビデ牧師が伝えるテモテへの手紙第二のメッセージは、私たちを再び福音の現場へと呼び戻します。復活の主を覚え、御言葉の規則に従って走り、自分自身を清く形づくっていく人生。その道の終わりには、「よくやった、良い忠実なしもべよ」と呼んでくださる主の温かな迎え入れと、恥じるところのない栄光の冠が待っていることでしょう。

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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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pérance de la résurrection, le chemin de l’ouvrier qui n’a pas à rougir – Pasteu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Dans le roman La Peste d’Albert Camus, le docteur Rieux prouve la dignité humaine en accomplissant silencieusement la tâche qui lui est confiée, même au cœur d’un désastre désespéré. Il est un veilleur solitaire qui combat un ennemi invisible, un homme qui ne renonce pas à semer aujourd’hui les graines du dévouement, alors même que l’espérance de demain demeure incertaine. Cette noble lutte ressemble étrangement à la figure du « bon soldat de Jésus-Christ » dont parle la Bible. Le chapitre 2 de la Deuxième Épître à Timothée, ultime testament que l’apôtre Paul laisse à son fils bien-aimé Timothée à l’approche du martyre, nous rappelle une mission d’une profondeur et d’une portée éternelle bien plus grandes encore que le combat solitaire de Rieux.

Le portrait du serviteur appelé à travers trois métaphores

Au début du passage, Paul définit l’essence du chrétien à travers trois images fortes : le soldat, l’athlète et le cultivateur. Le pasteur David Jang, à travers ces métaphores, présente clairement l’attitude de vie que nous devons adopter. De même qu’un soldat ne s’embarrasse pas des affaires de la vie courante, mais cherche uniquement à plaire à celui qui l’a enrôlé, le véritable croyant ne doit pas laisser son cœur être capturé par le succès du monde ni par la recherche de sa propre promotion. Tout au long de sa vie, le pasteur David Jang s’est identifié comme un soldat de l’Évangile et a montré l’exemple d’une existence consacrée à une seule chose : plaire au Seigneur.

De même que l’athlète doit courir selon les règles établies, notre ministère doit lui aussi suivre non pas des stratégies humaines, mais la loi de la vérité. Et de même qu’il est juste que le cultivateur qui travaille dur soit le premier à goûter aux fruits de la récolte, celui qui sème silencieusement la semence de la Parole recevra certainement les fruits du Royaume de Dieu. Une telle perspective adresse un avertissement profond à la foi de notre époque, si facilement ébranlée. Se concentrer sur un processus honnête plutôt que sur des résultats éclatants, sur la joie de Celui qui nous a appelés plutôt que sur l’honneur personnel : tel est le premier pas du serviteur appelé, tel que le souligne le pasteur David Jang.

La force de se souvenir de Jésus-Christ ressuscité

Paul exhorte l’ouvrier à adopter l’attitude la plus essentielle : « Souviens-toi de Jésus-Christ. » Il ne s’agit pas d’un simple souvenir, mais d’un commandement solennel : placer au centre de sa vie la résurrection, événement historique et cœur même de la foi chrétienne. Le pasteur David Jang met en garde contre la tendance de l’Église contemporaine à se perdre dans de simples exhortations morales ou dans des consolations psychologiques. Il affirme sans cesse que la seule puissance capable de vaincre toutes les tribulations vient du Seigneur de la vie, qui a vaincu la mort et qui est ressuscité.

Les philosophies et les pensées du monde s’arrêtent devant le grand désespoir qu’est la mort, mais l’Évangile proclame une vie nouvelle qui commence précisément là où ce désespoir semble atteindre sa fin. Le discernement théologique du pasteur David Jang souligne que cette foi en la résurrection ne demeure pas une vague espérance tournée vers l’avenir, mais devient une force concrète qui nous rend capables d’endurer les souffrances du présent. La promesse selon laquelle, si nous mourons avec le Seigneur, nous vivrons aussi avec lui, et si nous persévérons avec lui, nous régnerons aussi avec lui, est comme un sceau éternel garantissant que les petits sacrifices et les actes de dévouement que nous vivons aujourd’hui ne sont jamais vains.

Le temps de la piété qui façonne un vase pur

Le regard de cette méditation se tourne maintenant vers l’intériorité de « l’ouvrier qui n’a pas à rougir ». Dans une grande maison, il existe des vases de diverses matières, mais le vase que le maître emploie avec honneur n’est pas celui qui brille par son apparence ; c’est celui qui a été préparé dans la pureté. À travers cette parole, le pasteur David Jang enseigne que la valeur d’un être humain ne réside pas dans ses conditions extérieures ni dans ses accomplissements, mais dans sa capacité à se garder saint devant Dieu. L’« exercice de la piété », qui consiste à se distinguer des paroles vaines du monde et des désirs corrompus, est la compétence la plus précieuse que doit posséder un ouvrier.

L’exhortation à fuir les passions de la jeunesse et à poursuivre la justice, l’amour et la paix avec ceux qui invoquent le Seigneur d’un cœur pur rappelle tout particulièrement l’importance d’une spiritualité communautaire. Le pasteur David Jang enseigne qu’il faut être ferme comme un soldat devant la vérité, mais doux comme un berger lorsqu’on se tient devant les âmes. Reprendre avec patience ceux qui s’opposent vient du cœur d’un père qui espère qu’ils se repentiront et se libéreront du piège du diable. C’est précisément au point de rencontre entre la pureté intérieure et la douceur envers autrui que commence le véritable ministère de la grâce.

Le chemin qui marche vers la gloire éternelle

« La parole de Dieu n’est pas liée. » Cette déclaration fut le cri de victoire que Paul, enchaîné, fit retentir depuis sa prison. Cette confession audacieuse, qui traverse le ministère du pasteur David Jang, nous interroge sur le lieu où se trouve la véritable liberté. Celui qui annonce la Parole peut souffrir et parfois être opprimé par les puissances du monde ; pourtant, la Parole de vie ne peut jamais être enfermée. Elle franchit les murs et redonne la vie aux âmes. Si nous ne nous décourageons pas sur ce chemin, c’est parce que nous croyons que les souffrances présentes ne sauraient être comparées à la gloire éternelle qui doit être révélée.

Nous nous posons maintenant la question à nous-mêmes. Suis-je aujourd’hui prisonnier des petites inquiétudes de ma vie quotidienne ? Ou bien suis-je resté dans l’état d’un vase trop souillé pour être utile à Dieu ? Le message de la Deuxième Épître à Timothée transmis par le pasteur David Jang nous appelle de nouveau sur le terrain de l’Évangile. Se souvenir du Seigneur ressuscité, courir selon la loi de la Parole, laisser Dieu façonner en nous une vie pure : au terme de ce chemin nous attendent l’accueil chaleureux du Seigneur, qui dira : « Bon et fidèle serviteur », ainsi que la couronne de gloire réservée à l’ouvrier qui n’a pas à roug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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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esperanza de la resurrección, el camino del obrero que no tiene de qué avergonzarse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En la novela La peste, de Albert Camus, el doctor Rieux demuestra la dignidad humana al cumplir silenciosamente con su deber en medio de una catástrofe desesperante. Es un centinela solitario que lucha contra un enemigo invisible, y un personaje que, aun cuando la esperanza del mañana resulta incierta, no renuncia a sembrar hoy las semillas de la entrega. Esta noble lucha se asemeja de manera sorprendente a la imagen del “buen soldado de Cristo Jesús” de la que habla la Biblia. El capítulo 2 de la Segunda Epístola a Timoteo, último testamento que el apóstol Pablo dejó a su amado hijo Timoteo antes de su martirio, nos recuerda una misión mucho más profunda y eterna que la ardua lucha de Rieux.

Tres metáforas que revelan el retrato del hombre llamado a una misión

Al inicio del pasaje, Pablo define la esencia del cristiano mediante tres símbolos poderosos: el soldado, el atleta y el agricultor. El pastor David Jang, a través de estas metáforas, presenta con claridad la actitud de vida que debemos asumir. Así como el soldado no se enreda en los asuntos de la vida cotidiana, sino que busca agradar únicamente al comandante que lo llamó, el verdadero creyente no debe dejarse cautivar por el éxito del mundo ni por la promoción personal. El pastor David Jang, a lo largo de su vida, se ha identificado como soldado del evangelio y ha mostrado un ejemplo de vida dedicada exclusivamente a agradar al Señor.

Así como el atleta debe correr conforme a las reglas establecidas, nuestro ministerio también debe seguir no las estrategias humanas, sino la norma de la verdad. Y así como es justo que el agricultor que trabaja arduamente sea el primero en participar de los frutos, a quien siembra en silencio la semilla de la Palabra le serán concedidos, sin duda, los frutos del Reino de Dios. Esta reflexión hace sonar una seria advertencia para la fe de nuestra época, que se tambalea con facilidad. Concentrarse más en el proceso honesto que en los resultados brillantes, más en el gozo de Aquel que nos llamó que en el honor personal: ese es el primer paso del hombre de misión que el pastor David Jang enfatiza.

El poder de recordar a Jesucristo resucitado

Pablo exhorta al obrero a asumir como actitud más importante esta palabra: “Acuérdate de Jesucristo”. No se trata de un simple recuerdo, sino de un mandato solemne a colocar en el centro de la vida la resurrección, acontecimiento histórico y corazón de la fe cristiana. El pastor David Jang advierte sobre el peligro de que la Iglesia contemporánea quede atrapada en exhortaciones morales o consuelos psicológicos, e insiste constantemente en que el único poder capaz de vencer toda tribulación procede del Señor de la vida, quien venció la muerte y resucitó.

Las filosofías y pensamientos del mundo se detienen ante la inmensa desesperación de la muerte, pero el evangelio proclama una vida nueva que comienza precisamente al final de esa desesperación. La reflexión teológica del pastor David Jang subraya que esta fe en la resurrección no se queda en una esperanza vaga para el futuro, sino que se convierte en una fuerza real que nos permite soportar los sufrimientos del presente. La promesa de que si morimos con el Señor, también viviremos con Él, y de que si perseveramos con Él, también reinaremos con Él, es como un sello eterno que garantiza que los pequeños sacrificios y entregas que hoy vivimos jamás son en vano.

El tiempo de la piedad en el que somos formados como vasos limpios

La mirada de esta columna se dirige ahora al interior del “obrero que no tiene de qué avergonzarse”. En una casa grande hay vasos de distintos materiales, pero el vaso que el dueño usa con honra no es necesariamente el más espléndido por su apariencia, sino el que está limpio y preparado. A través de esta enseñanza, el pastor David Jang muestra que el valor del ser humano no reside en sus condiciones externas ni en sus logros, sino en cuánto logra conservarse santo delante de Dios. La “disciplina de la piedad”, que permite discernir y apartarse de las palabras vanas y de los deseos impuros del mundo, es la capacidad más elevada que debe poseer un obrero.

En particular, la exhortación a huir de las pasiones juveniles y a seguir la justicia, la fe, el amor y la paz junto con quienes invocan al Señor con un corazón limpio nos recuerda la importancia de una espiritualidad comunitaria. El pastor David Jang enseña que, ante la verdad, debemos ser firmes como soldados, pero al tratar con las almas, debemos ser mansos como pastores. Corregir con paciencia a quienes se oponen nace del corazón de un padre que desea que ellos se arrepientan y escapen del lazo del diablo. De este modo, el verdadero ministerio de la gracia comienza en el punto donde se encuentran la pureza interior y la mansedumbre hacia los demás.

El camino que avanza hacia la gloria eterna

“La palabra de Dios no está encadenada.” Esta declaración fue el grito de victoria que Pablo, encadenado, proclamó desde la cárcel. Esta valiente confesión, que atraviesa el ministerio del pastor David Jang, nos pregunta dónde se encuentra la verdadera libertad. El mensajero puede sufrir y, en ocasiones, ser oprimido por las fuerzas del mundo; sin embargo, la Palabra de vida jamás queda encerrada, sino que supera los muros y da vida a las almas. La razón por la que no desfallecemos en este camino es que creemos que los sufrimientos presentes no pueden compararse con la gloria eterna que ha de manifestarse.

Ahora nos corresponde hacernos una pregunta a nosotros mismos. ¿Estoy hoy atado a las pequeñas preocupaciones de mi vida cotidiana? ¿O permanezco como un vaso demasiado manchado para ser usado por Dios? El mensaje de la Segunda Epístola a Timoteo que transmite el pastor David Jang nos llama nuevamente al campo del evangelio. Recordar al Señor resucitado, correr conforme a la ley de la Palabra y vivir siendo formados como vasos limpios. Al final de ese camino nos esperan la cálida bienvenida del Señor, que dirá: “Siervo bueno y fiel”, y la corona de gloria de quienes no tienen de qué avergonza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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