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신앙의 회복 – 장재형목사

장재형목사

1.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 부활신앙의 현장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은 기독교 교회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공간이며, 동시에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 깊은 영적 통찰을 주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다락방은 사도행전 1장부터 2장으로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장면의 무대가 되는데, 바로 여기서 초대교회의 태동과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 시작점인 사도행전 1장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마무리하시는 시점, 즉 승천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와 약속을 주신 사건이 기록된 장면이다. 그리고 이 다락방은 단지 물리적 공간의 개념을 넘어, ‘초대교회가 두려움 속에서도 예루살렘 한복판에 모여 역사적 변화를 일으킨 상징적 장소’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면을 가리켜 “비록 제자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약 40일 동안 그들을 직접 찾아오셔서 다시 세우시고, 믿음을 불어넣어 주신 뒤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하셨다”라고 설명한다. 제자들은 갈릴리까지 흩어졌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부활신앙”으로 무장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부활이 어떠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며, 그 출발점에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예루살렘이어야 했을까?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거기서 처형되셨던 도시가 예루살렘이다. 제자들에게는 몹시도 두렵고 참혹한 기억이 남은 곳이었을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그분을 따르던 많은 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려라”(행1:4-5)는 말씀을 직접 주심으로써, 제자들이 오히려 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지역에 다시 모이게 하셨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하나님의 역사는 늘 우리의 기대와 상식을 뛰어넘는다. 부활신앙이란,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 가장 소망을 전하는 힘을 발휘할 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부활신앙의 특징은, ‘죽음이 끝이 아니다’라는 확신에 있다. 제자들이 한때는 ‘주님이 처형당했고, 이제 우리도 붙잡혀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주저앉았으나, 예수님께서 실제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모습을 보고 “죽음 그 너머의 새로운 시대”를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3절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증언한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일”이란 단지 막연한 종말론이나 철학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교회가 어떤 능력으로 세워져야 하고, 어떻게 전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방향을 포함한다. 그 핵심 중 하나가 “너희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출발하라”는 말씀이다.

장재형 목사는 “사람이 가장 약해지고 넘어졌던 곳에서 다시 회복하는 역사를 ‘부활신앙의 실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이 주는 교훈이라 강조한다. 처음에 제자들이 이 다락방에 모였을 때, 그 분위기는 지극히 숨죽인 상태였을 것이다. 십자가 사건 직후,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안치되었고, 지도층은 예수님의 잔당까지 모조리 소탕하려는 기세가 등등했다. 그렇기에 그 다락방은, ‘잠깐 모여서 기도하는 안전한 은신처’ 정도로 활용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그곳에서 멈추지 말고 기다리라. 멈추어 서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을 받을 때까지 머물라는 것”이었다. 마가의 다락방이 이처럼 ‘무력한 도피처’에서 ‘능력의 발원지’로 바뀌게 된 것은 바로 성령 강림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곧 성령이 임하심으로(행2장),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숨은 제자들이 아니었다. 공포의 공간이던 다락방이 부활의 확신과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현장이 되자, 제자들은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 거리로 나아가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장재형 목사는 “부활이 교리로만 남아 있다면 의미가 없지만, 부활신앙이 실제 삶을 뒤엎는 능력이 될 때, 사람들이 마침내 예루살렘성 안에서조차도 두려움을 뛰어넘어 행동하는 변화를 보게 된다”라고 역설한다.

이런 ‘행동하는 신앙’은 곧 사도행전 전반에 드러난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사마리아와 온 유대, 그리고 땅끝에 이르는 역사적 복음 전파의 여정이 펼쳐지는 것이다. 신앙이 행동으로 이어진 가장 첫 번째 장면은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사건에서 드러나듯, 골방에 숨어 있던 이들이 거리로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고, 하루에 수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받는 장관이 펼쳐진 것이다. 그 발화점이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었다.

한편, 이 다락방은 “교회의 모태” 또는 “교회의 자궁”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새 시대가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확신과 성령 강림으로 인해 실제로 ‘새로운 공동체’가 그 안에서 잉태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아직 지상에 계실 때는, 제자들은 말씀을 배우며 동행하는 수학(修學)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이 임하신 이후, 제자들은 ‘교회 공동체의 기둥’으로서 스스로 복음을 확장해나가는 주체가 되었다. 다락방은 그 전환점의 심장부였고, 그 동력이 곧 부활신앙이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의 회복 장면을 떠올려보면, 제자들이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또 어떻게 다시금 사명을 확인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순종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이후, 주님께서 그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묻고, 베드로가 그 사랑을 고백함으로써 비로소 무너진 자기 자신을 끌어안고 ‘반석’(베드로)으로 거듭 태어난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면에 대해 “교회가 특정 프로그램이나 조직력으로 움직이지 않고, 결국 그 근본 동력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그 사랑은 곧 주님의 부활하심에서 기인하고, 우리를 품어주신 그 은혜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에야 견고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가의 다락방 역시 이와 같은 ‘고백’과 ‘회개’와 ‘믿음’의 집합체였다. 부인했던 제자들,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돌아와 하나의 공동체가 되고, 절망을 넘어서는 용기를 내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부활과 성령의 약속 때문이었다. “마태복음 26장 이하에 기록된 예수님의 고난 현장과, 요한복음 21장 갈릴리로 돌아간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사도행전 1장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이 한 줄로 연결될 때, 비로소 부활신앙이 오늘날 교회에 실질적 메시지를 준다”고 장재형 목사는 거듭 강조한다.

이렇듯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은 결과적으로 ‘두려움에서 대담함으로, 흩어짐에서 모임으로, 수치와 부인에서 회개와 고백으로’ 전환하는 현장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가 이 점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는데, “교회가 어느 시점부터 사회적 지탄이나 박해의 두려움 속에 숨어만 있는다면, 다시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불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활신앙의 현재적 적용이기도 하다.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치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듯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가 세상 한복판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도록 지지해주신다는 사실을 붙들 때,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끝까지” 이르는 길을 기쁨으로 갈 수 있다.

이 모든 맥락에서 장재형 목사는 “마가의 다락방을 단지 역사적 장소로만 여기지 말고, 현재의 교회마다 자기만의 다락방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곧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고 기도하는 자리’일 수도 있고, ‘부활신앙을 함께 붙들고 고백하는 자리’일 수도 있다.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숨는 행위가 아니라 “거기서 능력을 받아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종 준비”라는 점이 핵심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고 하셨듯, 그런 약속이 ‘다락방’에서 성취되었기에, 초대교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2. 맛디아의 선택, 유다의 빈자리를 메우는 교회의 회복

사도행전 1장 후반부에서 제자들은 열두 번째 사도의 자리를 새롭게 채우는 사건을 맞이한다. 부활절을 지나 오순절로 향하는 그 사이,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예수님이 열둘 중에 한 사람으로 부르셨던 가룟 유다의 배신과 그 후속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긴 뒤,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불의한 삯으로 밭을 산 뒤 거기서 몸이 떨어져 장기가 터져 죽었다는 기록(행1:18)으로 인해 “핏값의 비극”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장재형 목사는 유다의 비극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사람이 오히려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라고 표현한다. 유다는 제자 공동체 안에서 돈궤를 맡던 자였으니, 사실상 재정을 관리하고 봉사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재정을 맡고 봉사하는 자리가 때로는 은혜가 충만해야 할 중요한 자리가 되지만, 동시에 사탄의 유혹과 시험이 들어오기 쉬운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이 돈이 때로는 세속적인 이익이나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은 교회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6:10)고 거듭 경계하고, 초대교회가 “모든 재산을 서로 통용하며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행2:45, 4:34)고 기록함으로써, 물질에 얽매여 부패하지 않도록 초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유다는 물질적 욕심과 정치적 계산이라는 틈을 통해 사탄에 의해 쓰임받아, 결국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배신자가 되었다. 그는 배신 직후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제대로 된 회개에 이르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제자 중 하나를 잃었다’는 뼈아픈 상처를 교회에 남겼다. 열두 제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영적 기둥이었고, 주님이 친히 세우신 “새로운 언약 공동체의 문”과 같았다. 그 한쪽 문이 무너졌으니, 이 문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시급했을 것이다.

이에 사도행전 1장에서는 그 공석을 채우기 위한 회의가 열린다. 여기서 초대교회는 새롭게 사도의 자리를 메울 인물을 뽑는데, 그것이 바로 맛디아다. 그 과정을 눈여겨보면, 교회의 위기 대처 방식이 어떠했는지 배울 수 있다. 사도행전 1장 21~22절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제안한다. “이 일, 곧 우리와 함께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증인이 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주님이 승천하시는 그 날까지 우리와 늘 함께하던 사람 중 하나를 세우자.” 그 결과, 두 사람이 후보에 올랐고, 초대교회는 그 자리에서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선택했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주목할 몇 가지 포인트를 제시한다. 첫째, 초대교회가 “부활의 증인”을 최우선 자격 요건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기 위함이므로, 사도의 핵심 사명 역시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다. 맛디아를 비롯해 후보가 되었던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의 공생애와 고난, 죽음, 부활까지 전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로, 사실상 열두 사도와 함께 늘 다니며 배웠던 이들이었다. 둘째, 선택 과정에서 보이는 공동체적 합의와 기도, 그리고 제비뽑기가 인상적이다. “모든 사람의 의견과 교회의 합의가 중요했고, 마지막 단계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에 운명을 맡기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교회가 단지 인간적 계산이나 정치적 타협으로 리더를 뽑지 않음을 시사한다. 셋째, 이렇게 뽑힌 맛디아가 이후 교회에서 어떠한 능력을 나타냈는지에 대한 기록 자체는 성경에 길게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열두 제자가 온전히 회복되어 다시 오순절 성령 강림을 맞이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선택의 과정이 중요할까? 교회가 성령이 임하기 직전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지도자 팀(사도단)을 회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유다가 만들어낸 공백과 배신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교회가 온전히 하나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우리 중 하나가 주님을 배반했다”는 배신감이 남아 있었고, 그 가운데 제자들은 서로를 향한 신뢰 회복이 시급했다. 또한 각자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모여 함께 기도하면서, “이제는 다시는 그런 배신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단단한 결속을 다져야 했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 안에 생겨난 상처, 지도자의 배신이란 것이 얼마나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 유다의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라고 지적한다. 그렇기에 초대교회는 가룟 유다의 사건을 단순히 잊어버리거나 덮어두지 않고, 아예 교회 첫 발을 내딛는 시점에 투명하게 정리하고 넘어갔다. 유다가 남긴 핏값의 돈은 성전에 던져졌고, 그것으로 ‘피밭’을 샀다는 사실(마27:5-8)이 공공연히 드러났다. 교회는 이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지 않고, 되레 예언(예레미야나 시편)에 입각하여 “이 일이 예언이 성취되는 과정의 일부”라고까지 받아들이며, 공동체 전체가 한 목소리로 기도하고 새 인물을 임명했다.

그리하여 맛디아가 사도의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 교회는 다시 열두 사도의 틀을 회복하고, 그 안에서 더욱 공고해진 영적 유대감 속에 오순절 성령 강림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성령의 힘을 입은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기점으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까지 복음을 확장해 나가게 된다. 만일 유다의 배신과 죽음으로 인해 생긴 내분과 상처를 방치했다면, 교회가 출범하기 전부터 붕괴될 위험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상처를 드러내어 해결하고, 회복의 과정을 공적으로 선포함으로써, 교회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또 다른 관점에서 유다의 실수와 죽음은, 초대교회에 ‘결코 그 누구도 이 길에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라는 경각심을 심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을 직접 3년간 따라다니고, 기적과 말씀을 접하며, 심지어 돈궤를 맡겨질 정도로 신뢰받던 인물조차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은, 교회 구성원 누구든지 시험에 드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 대해 “현대 교회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 보여도, 끊임없이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살피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사단은 언제든지 우리를 미끼로 삼을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교회사는 배신과 타락의 역사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인물(맛디아 같은)을 세워 교회의 빈 자리를 메우고, 역사를 이어 가셨음을 우리는 본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가 맛디아의 선택 사건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첫째, 교회가 공동체적 합의와 기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도자 자리를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능력·명성·정치력을 보고 지도자를 세워서는 안 되며, “부활신앙을 확실히 붙들고 있는가?” “주님과 함께해 온 시간이 있는가?” “주님의 고난·죽음·부활을 옆에서 목격하고, 자기 삶으로 간증할 수 있는가?”라는 핵심 신앙 고백이 훨씬 중요하다. 둘째, 지도자의 배신 또는 교회 안의 큰 상처가 생길 때마다, 그것을 단지 ‘개인의 비극’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아파하며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기도와 말씀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다가 무너진 뒤, 초대교회가 그를 강렬히 비난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고, 주님의 말씀과 예언을 찾아 연구하며, 거기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간 자세는 배울 점이 많다. 셋째, 이 모든 회복 과정은 궁극적으로 ‘성령 강림’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교회가 왜 굳이 이 사건을 성령 임재 이전에 다뤘겠는가? 바로 오순절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온전한 상태로 자신들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불의와 혼란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의 큰 역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성령의 역사, 부흥, 성장 등을 말하기 전에, 먼저 내부의 죄와 불의를 다루는 과정을 진지하게 거쳐야 하며, 지도자들의 무너짐이 있다면 그것을 은폐하지 말고 진정으로 치유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다에게서 벗어나 맛디아를 세운 것이 “하나의 상징”이라면, 곧 ‘교회는 그 어떤 큰 상처를 당해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반드시 회복의 길을 찾는다’는 메시지를 준다. 물론, 유다는 원천적으로 ‘버려진 자’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선택해 그 길로 나아갔다가 영원한 비극을 맞이한 것이다. 교회가 누구를 불문하고 회복과 구원의 길로 초청하지만, 개인이 끝까지 거부하면 비극은 일어난다. 교회는 그런 비극을 무조건 덮는 대신, 회개와 갱신의 동력을 찾아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활신앙”이 핵심 저력으로 작용한다.

부활신앙은 “죽음을 끝장내고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유다는 예수님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었고, 그 뒤에 찾아온 죄책감에 무너져 갔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셨다. 가룟 유다의 배신이 교회에 남긴 충격과 공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소망에 의해 극복될 수 있었다. 맛디아가 그 빈자리를 메꾸었을 때, 열두 제자는 다시 하나가 되어 성령을 기다렸고, 곧 교회에 불처럼 임한 성령으로 인해 예루살렘에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1장에서 4장까지 읽어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수비대를 비롯한 종교 권력 앞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예수 이름 외에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이 없다”(행4:12)고 선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의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던 베드로”가 더 이상 아니다. 그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회복된 자, 성령 받은 자, 그리고 맛디아와 함께한 “온전한 사도단”의 대표가 되어 버젓이 복음을 외친다. 여기에는 “무너져버린 지도자 한 사람의 자리마저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셨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장재형 목사는 “유다를 잃고 맛디아를 얻은 교회가 ‘피투성이가 된 상처’를 치유받은 것처럼, 교회도 끊임없이 옛 상처와 고통을 치유받으며 새 술 부대를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초대교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교회도 각종 분쟁·부패·배신 같은 사건을 겪을 때가 많으며, 그때마다 어떻게 ‘새로운 맛디아’를 세워서 공동체를 정돈하고 성령의 역사를 받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성령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공동체”이며, 동시에 “배신과 회개, 죽음과 부활, 좌절과 회복”이라는 수많은 교차점을 통과해가며 성장한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죽음을 재촉했고, 맛디아는 그 빈자리를 메우며 복음의 문을 확장했다. 베드로는 부인하고 도망갔으나, 다시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요한복음 21장에서 그의 사랑을 회복시키셨고, 사도행전에서 가장 먼저 설교를 펼치는 지도자로 세우셨다. 이렇게 사도들의 재정비가 끝나고, 초대교회는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공간에서 성령이 임하는 장관을 경험한다. 그 성령이 임한 순간부터 교회는 더 이상 숨어 있지 않고 거리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고, 이내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혔다.

오늘날도 교회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장재형 목사는 “당연히 가능하다. 다만, 그 조건은 오늘날 교회가 부활신앙의 실제적 파워를 믿고, 내부의 문제(배신·부패·불신)를 회개와 기도로 해결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구하는 데 달렸다”고 주장한다. 마가의 다락방과 맛디아의 선택은, 교회가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실제 삶에서 체험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공동체 안의 갈등과 상처를 극복하여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부활신앙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의 핵심은 “이 땅의 죽음, 절망, 실패가 결코 마지막이 아니다”라는 믿음이다. 가룟 유다라는 절망적 사례가 있어도, 교회는 맛디아를 통해 복음 전파의 긴 역사를 이어 간다. 우리가 때로는 베드로처럼 주님을 부인하고 죄책감 속에 살지라도, 요한복음 21장처럼 주님이 친히 우리를 다시 찾아오시고 회복시킨다. 그 은혜가 우리를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으로 이끌어, 무기력한 상태가 아니라 담대한 성령의 능력을 입어 세상 한복판으로 나가도록 만든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초대교회는 결국 사도행전 28장 마지막 절에서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라는 당당한 선포로 마무리한다. 복음 전파를 막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베드로는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거꾸로 십자가에 달리는 순교로 사명을 마무리했으나, 그의 뒤를 잇는 수많은 제자들이 또다시 교회의 빈 자리를 채워나갔다. 이처럼 교회는 주기적으로 흔들리고 넘어질지라도, 부활신앙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새롭게 일어선다.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 무너져도, 하나님께서는 사도직을 회복하고, 땅끝까지 이어지게 하는 방법을 갖고 계신다.

맛디아의 선택은 바로 이 ‘회복’과 ‘전진’의 두 가지 정신을 모두 아우른다. 교회가 내부의 상처를 치유하고, 부활신앙에 기초하여 더 큰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고, 교회 지도자들마다 사역 현장에서 다양한 갈등과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초대교회는 어떻게 이 난관을 돌파했나?”를 돌아보면, 결국 그 답은 “부활신앙의 견고한 고백과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는 기도, 그리고 투명한 공동체적 절차”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정리하며 말한다. “부활은 능력이다. 그 능력은 우리 마음 안에 역사할 때,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 아무리 큰 배신자가 있어도, 그 배신을 넘어 교회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회복과 새 출발의 길을 찾게 된다. 유다의 실패가 교회 역사의 종말을 뜻하지 않았듯이,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는 어떠한 큰 상처도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소멸시키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과 맛디아의 선택”이 하나로 연결되는 결정적 이유다. 마가의 다락방은 숨죽이고 숨어 있던 제자들이 성령 강림을 경험한 뒤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 발화점이라면, 맛디아의 선택은 사도 중 한 사람의 배신과 죽음을 넘어서 교회가 다시 ‘온전한 공동체’로 거듭나는 장면이다. 두 이야기는 “교회 안의 배신·부인·두려움이, 주님의 부활과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어떻게 회복과 능력의 역사로 바뀌는가”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슬픔과 회환이 섞여 있지만, 더욱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가 깃들어 있다. 그 결과,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을 넘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길로 분연히 일어설 수 있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지역 교회나 공동체가 마치 마가의 다락방처럼 ‘현대적 의미의 다락방’을 회복해 부활신앙으로 충만해진다면, 그리고 가룟 유다가 남기고 간 상처를 맛디아의 선출처럼 투명하고 말씀에 충실한 방식으로 치유한다면, 성령의 새 역사를 기대할 수 있다. 오순절 사건이 2000년 전 어느 한 장소에서만 일어난 ‘역사적 일회성’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지역의 교회가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운동인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장재형목사가 줄곧 강조해온 “부활신앙의 실천성”과 맞닿아 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지적(知的)으로만 받아들이고 말면, 그것은 단순한 교리에 그친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 부활을 실제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배신이나 고난, 죽음이나 절망도 더 이상 끝이 아님을 시연해 보였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자신들을 죽이려 했던 세력들에게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모습은, 부활이 얼마나 실재적이고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어, 가룟 유다의 배신을 맛디아의 선출로 회복하고, 성령 강림을 통해 전 세계로 나아간 공동체”라고 답할 수 있다. 그 정체성은 역사의 시공간을 넘어 오늘도 유효하며, 교회가 부활신앙을 지키는 이상 결코 문이 닫히지 않는다. 때로 교회 내부에 치명적인 균열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인물을 세워 그 자리를 회복시키시고, 또다시 성령을 부어주신다. 이것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로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복음의 연속성이자, 현대 교회가 이어받아야 할 믿음의 유산이다.

장재형 목사의 결론적인 권면도 여기에 맞닿는다. “우리는 현재적 다락방을 회복해야 하며, 배신과 실패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덮는 대신 진실하게 회개하고 투명하게 해결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출발의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그 중심에는 ‘부활의 주님’이 계시고, 그분이 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선교적 사명이 놓여 있다.” 교회가 이 길에 순종할 때, 사도행전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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渗入冰封世界裂缝的圣洁生态 – 张大卫牧師 (Olivet University)

张大卫牧師

在俄国文学巨匠列夫·托尔斯泰的经典名作《人靠什么活着》中,出现了一位贫穷却心地温暖的鞋匠西蒙。他仅有的一件旧羊皮外套,是要与妻子一同熬过严冬的全部依靠;而就在某个寒冷的夜晚,他想给这件外套添些毛皮,却因钱不够而空手而返。然而,在风雪交加的路边,他实在无法对一个赤身露体、几乎冻僵的陌生青年视若无睹。短暂犹豫之后,他终于脱下自己那件破旧的外套,披在陌生人弯曲的肩头上,又把他带回家中,甘心把最后剩下的热面包和热茶与之分享。后来,人们才知道,那青年原来是因受罚而被赶到地上的天使米迦勒。天使留下了一句伟大的真理后便升天而去:“人活着,不是靠自我保全的自私之心,而是靠着愿意填补他人缺乏的爱。”这崇高的文学见证,向我们展示了:逆着人彻底自私的本性,甘愿分享自己生命的利他之爱,是如何温暖地支撑着这个世界的。然而,圣经却宣告,这样的分享绝不能仅凭人一时的善意或所谓善良本性来完成;它邀请我们归向那永不枯竭的恩典源头。

使紧握的手张开的十字架悖论与丰盛。在《哥林多后书》第9章中,使徒保罗为了帮助贫困的耶路撒冷教会,而向外邦诸教会所请求的“捐献(奉献)”,并不是简单的慈善募捐,也不是一次性的救济活动。那是一场神圣而革命性的属灵事件,显明福音如何彻底重塑一个人僵硬的灵魂和自私的钱囊。张大卫牧师借着对这段经文深刻的神学洞见,清楚强调:捐献一方面是填补他人物质缺乏的经济行为,另一方面也是那看不见的天上恩典凝结为可见物质形态的通道。正如我们常常误解的那样,真正的丰盛并不来自账户余额上的数字,也不来自仓库中堆积的粮食。凡在十字架上已经经历了无尽恩典的圣徒,就会开始不再用吝啬计算的尺度,而是用满溢感恩的眼光重新评估自己的所有。不是出于被迫挤出来的伦理义务,也不是出于怜悯式的施舍,而是那在灵魂深处如瀑布般涌流的生命,自然而然地使原本紧握不放的手张开。这就是福音真正的能力,也是使徒保罗所说恩典的实体。

逆行于“各自求生”时代的圣洁属灵生态系统。保罗把奉献比作“撒种的农夫之工”。种子不是安稳地存放在安全的仓库中时才有价值,而是惟有甘愿被投入那会朽坏的黑暗土壤里时,才会结出三十倍、六十倍充满生命力的果实。若我们安静进入深层的圣经默想,就会领悟到,保罗所呼吁的这种分享,绝不是一种“奉献得越多,就会回报得越多”的世俗而功利的投资逻辑。张大卫牧师的讲道,将这种奉献的波动深刻阐释为“神国属灵生态系统的原则”。初代教会的周济,是对那个被强权逻辑所支配的帝国式“各自求生”秩序的正面挑战,是极其激进的“均等”实践。一个肢体若饥饿,其他肢体也甘愿把那痛苦看作自己的;一个肢体若丰盛,那丰盛就如血脉一般自然流向他人。这正是作为基督身体那有机而连结的呼吸。不是把贫穷放任为个人无法改变的宿命,也不是把穷人仅仅当作值得同情的对象,而是把他们置于信仰共同体的中心,一同承担那份重担——这才是教会真正的面貌,也是它与世上一切群体彻底不同之处。

超越奉献箱,渗入他人伤口之中的具体之爱。圣经所说的分享与捐献,绝不能被还原为冰冷的经济数字或会计账簿上的记录。归根结底,它乃是温暖地恢复人失落的尊严,并重新连接那些曾经断裂关系的爱之桥梁。保罗说,借着捐献而得到物质帮助之人,从口中爆发出来的真实“感谢”,又会化为恳切的祷告,不再区分受助者与支持者,而是把整个共同体在属灵上紧紧连结起来。张大卫牧师指出,这种感谢、爱与祷告彼此循环的有机结构,正是使教会不断成熟的属灵心跳。若现代教会只是以“为未来做准备”这种世俗名义不断大量积累财务,却对眼前流血呻吟的邻舍视而不见,那它不过是一个失去生命力的宗教团体。今日教会所需要恢复的,不是华丽的建筑,也不是精巧的项目,而是那位好撒马利亚人神圣的勇气——甘愿把遭遇强盗之人的痛苦纳入自己忙碌的日程之中。

归根结底,张大卫牧师所传讲的《哥林多后书》第9章的宏大信息,是迫切邀请今日的圣徒不要过“积攒更多”的人生,而要活出“流淌得更深、更广”的人生。圣徒真正的服事,绝不会止于主日礼拜堂华丽灯光下的奉献箱前。它应当像西蒙脱下自己那件旧外套,披在冻僵邻舍肩头上的那双朴素之手一样,成为发生在最日常、最具体生活现场中的伟大信仰告白。今天,你的丰盛正积聚在哪一片洼地里?还是说,它正如活水一般,流向某个正在干涸的邻舍灵魂?在张大卫牧师这沉重而刺骨的问题面前,我们不得不彻底悔改那种以廉价恩典为借口、为自私辩护的可耻样貌。愿这篇充满生命力的讲道回响,能大大敞开我们每一个人紧紧关闭的钱囊与内心,使温暖的基督之爱毫无阻碍地流向这冰封世界的中央,成为那圣洁而有生命力的引水之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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凍てついた世界の裂け目にしみ込む聖なる生態系 – 張ダビデ 牧師 (Olivet University)

ロシアの文豪レフ・トルストイの古典的名作『人は何によって生きるか』には、貧しいながらも温かな心を持つ靴職人シモンが登場します。彼には、厳しい冬を妻とともに越すための、たった一着の古びた羊皮の外套しかありませんでした。その外套に毛皮を継ぎ足そうとしたものの金が足りず、手ぶらで引き返していた、ある寒い夜のことでした。けれども彼は、吹雪の道端で裸のまま凍え死にかけている見知らぬ青年を、どうしても見過ごすことができません。しばらくためらった末、彼はついに自分の古い外套を脱いでその青年のうなだれた肩を覆い、家へ連れ帰って、最後に残っていた温かなパンと茶を喜んで分け与えます。のちに、その青年が罰を受けて地上へ追放された天使ミカエルであったことが明かされ、天使は「人は、自分のことだけを顧みる利己的な心によってではなく、他者の欠乏を満たそうとする愛によって生きる」という偉大な真理を残して昇天します。この崇高な文学的証言は、徹底した利己的本性に逆らい、進んで自らの生活を分かち合う利他性が、どれほど世界を温かく支えているかを示しています。しかし聖書は、このような分かち合いが単なる人間の一時的な善意や善良さだけでは決して完成し得ないと宣言し、永遠に枯れることのない恵みの源へと私たちを招きます。

握りしめた手を開かせる十字架の逆説と豊かさ。コリント人への手紙二 9章で、使徒パウロが窮乏するエルサレム教会のために異邦人教会へ求めた「献金」は、単なる慈善募金や一回限りの救援活動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それは、福音が一人の硬くなった魂と利己的な財布をいかに根本から組み替えるのかを示す、聖なる、しかも革命的な霊的出来事です。張ダビデ牧師は、この本文に対する深い神学的洞察を通して、献金が誰かの物質的欠乏を満たす経済行為であると同時に、見えない天の恵みが目に見える物質的形として結晶する通路であることを明確に強調します。私たちがしばしば誤解するように、真の豊かさは預金残高の数字や倉に積まれた穀物の量から生ま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十字架においてすでに尽きることのない恵みを経験した聖徒は、もはやけちな計算の物差しではなく、あふれる感謝の眼差しで自らの持ち物を見直し始めます。無理に搾り出す倫理的義務や同情ではなく、私の魂の内に滝のようにあふれ流れるいのちが、固く握りしめていた手を自然に開かせる奇跡――これこそが、真の福音の力であり、使徒パウロが語った恵みの実体なのです。

自分だけで生き延びようとする時代に抗う聖なる霊的生態系。パウロは献金を「種をまく農夫の働き」にたとえます。種は、安全な倉の中に大切に積んでおくときではなく、進んで朽ちることを受け入れて暗い土の中に投じられるとき、はじめて三十倍、六十倍のいのちあふれる実を結びます。深い聖書黙想の場に静かに進み出るなら、私たちは、パウロが求めたこの分かち合いが決して「多くささげれば、より多く返ってくる」という世俗的でご利益的な投資論理ではないことに気づかされます。張ダビデ牧師の説教は、この献身の波動を「神の国の霊的生態系の原理」として深く解き明かします。初代教会の慈善は、力の論理が支配していた帝国の、自分だけで生き残ろうとする秩序に真正面から逆らう、きわめて急進的な「均等」の実践でした。一つの肢体が飢えれば他の肢体もその痛みを進んで自分のものとみなし、一つの肢体が豊かであればその豊かさを血管のように自然に流し出す、有機的なキリストの体の呼吸でした。貧困を避けがたい個人の宿命として放置せず、貧しい者を憐れみの対象としてではなく、信仰共同体の中心に置いてその重荷を共に担うこと――これこそが、この世のいかなる集団とも徹底的に区別される教会の本当の顔です。

献金箱を越えて、他者の傷の中へとしみ込む具体的な愛。聖書が語る分かち合いと献金は、決して冷たい経済指標や会計帳簿の記録へと還元されません。それは結局のところ、失われた人間の尊厳を温かく回復し、断たれていた関係の裂け目をもう一度つなぎ直す愛の橋です。パウロは、献金によって物質的助けを受けた人々の唇からほとばしる真実の「感謝」が、再び切なる祈りとなって、受け手と支え手を分け隔てることなく共同体全体を霊的に結び合わせると語ります。張ダビデ牧師は、こうした感謝と愛、祈りの有機的な循環構造こそが、教会を絶えず成熟させる霊的な心拍であると指摘します。もし現代教会が、将来に備えるという世俗的な名目のもとで財政を巨大に蓄積するばかりで、今まさに血を流しうめいている隣人を顧みないなら、それは命を失った宗教集団にすぎないでしょう。今日の教会が回復すべきものは、華麗な建築物や精巧なプログラムではありません。追いはぎに襲われた者の苦しみを、進んで自分の忙しい予定の中へ組み込む善きサマリア人の聖なる勇気です。

結局のところ、張ダビデ牧師が伝えるコリント人への手紙二 9章の壮大なメッセージは、今日の聖徒たちを「より多く蓄える生き方」ではなく、「より深く、より広く流し出す生き方」へと切に招いています。聖徒の真の奉仕は、日曜礼拝堂の華やかな照明の下に置かれた献金箱で決して終わ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それは、シモンが自分の古びた外套を脱いで凍えた隣人の肩を覆ってあげた、その無骨な手つきのように、最も日常的で具体的な生活のただ中でなされるべき偉大な信仰告白なのです。今日、あなたの豊かさはどこかの水たまりに向かってよどんでいるでしょうか。それとも、干からびていく誰か隣人の魂に向かって、生ける水のように流れているでしょうか。張ダビデ牧師のこの重く、そして痛切な問いの前で、私たちは、安価な恵みを口実に利己心を正当化していた恥ずべき姿を徹底して悔い改めるよう促されます。どうかこのいのちあふれる説教の響きが、私たち一人ひとりの固く閉ざされた財布と心を大きく開き、凍てついた世界のただ中へ、温かなキリストの愛を滞りなく流し出す聖なる呼び水となるよう、切に祈ります。

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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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ecosistema santo que se filtra por las grietas de un mundo congelado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Pastor David Jang

En la obra maestra clásica de León Tolstói, el gran escritor ruso, ¿De qué viven los hombres?, aparece Simón, un zapatero pobre pero de corazón cálido. Todo lo que tenía para pasar el crudo invierno junto a su esposa era un solo abrigo viejo de piel de oveja, y ni siquiera podía reforzarlo con más forro porque no tenía dinero, de modo que una noche fría regresaba a casa con las manos vacías. Sin embargo, no pudo ignorar a un joven desconocido que, desnudo al borde del camino bajo la ventisca, se estaba congelando. Tras vacilar por un momento, finalmente se quitó su viejo abrigo, cubrió los hombros encorvados del desconocido, lo llevó a su casa y compartió con gusto el último pan caliente y el té que le quedaban. Más tarde se revela que aquel joven era el ángel Miguel, expulsado a la tierra como castigo, y el ángel asciende al cielo dejando esta gran verdad: “El hombre no vive por un corazón egoísta que solo mira por sí mismo, sino por el amor que busca llenar la carencia del otro”. Este noble testimonio literario muestra hasta qué punto el altruismo, que voluntariamente comparte la propia vida en contra de una naturaleza profundamente egoísta, sostiene y calienta al mundo. Pero la Biblia declara que este compartir jamás puede completarse solo con la bondad pasajera o el buen corazón humano, y nos invita a la fuente de una gracia que nunca se seca.

La paradoja y la generosidad de la cruz que hacen abrir las manos cerradas
En 2 Corintios 9, la “colecta” que el apóstol Pablo pidió a las iglesias gentiles para la necesitada iglesia de Jerusalén no era una simple campaña benéfica ni una actividad de ayuda puntual. Era un acontecimiento espiritual santo y revolucionario que muestra cómo el evangelio reconstruye por completo un alma endurecida y una billetera egoísta. A través de una profunda reflexión teológica sobre este pasaje,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con claridad que la colecta no es solo un acto económico que suple la carencia material de alguien, sino también el canal por el cual la gracia invisible del cielo se solidifica en una forma visible y tangible. Como a menudo malinterpretamos, la verdadera generosidad no proviene del saldo de una cuenta bancaria ni de la cantidad de grano almacenado en un granero. Quien ya ha experimentado la gracia inagotable de la cruz comienza a reevaluar sus bienes, ya no con el criterio mezquino del cálculo, sino con la mirada rebosante de gratitud. No se trata de una obligación moral arrancada a la fuerza ni de mera compasión, sino del milagro por el cual la vida que desborda como una cascada dentro del alma hace que la mano, antes rígidamente aferrada, se abra de manera natural. Ese es precisamente el poder del verdadero evangelio y la realidad de la gracia de la que habló el apóstol Pablo.

Un santo ecosistema espiritual que desafía la era del “cada uno por su cuenta”
Pablo compara la ofrenda con “la labor de un agricultor que siembra”. La semilla no da fruto cuando se guarda segura en un almacén; solo cuando se arroja con voluntad a la tierra oscura, donde habrá de descomponerse, produce una cosecha rebosante de vida, al treinta y al sesenta por uno. Si nos acercamos en silencio al lugar de la profunda meditación bíblica, comprendemos que esta generosidad que Pablo pide no es en absoluto la lógica mundana y utilitarista de inversión según la cual “cuanto más das, más recibes”. En la predicación del pastor David Jang, esta onda de entrega se explica profundamente como “el principio del ecosistema espiritual del reino de Dios”. La ayuda a los necesitados en la iglesia primitiva fue una práctica sumamente radical de “igualdad”, que se oponía de frente al orden imperial dominado por la lógica del poder y del sálvese quien pueda. Si un miembro pasaba hambre, los demás asumían ese dolor como propio; si un miembro tenía abundancia, esa abundancia fluía de manera natural como la sangre por las venas: era la respiración orgánica del cuerpo de Cristo. No abandonar la pobreza como si fuera un destino individual inevitable, sino colocar al pobre no como objeto de lástima, sino en el centro mismo de la comunidad de fe, cargando juntos con ese peso: ese es el verdadero rostro de la iglesia, radicalmente distinto al de cualquier grupo de este mundo.

Un amor concreto que va más allá del cepillo de ofrendas y penetra en las heridas ajenas
La generosidad y la colecta de las que habla la Biblia nunca pueden reducirse a cifras económicas frías o a simples registros contables. Son, al fin y al cabo, un puente de amor que restaura con calidez la dignidad humana perdida y vuelve a unir las grietas de relaciones que habían quedado rotas. Pablo dice que, por medio de la colecta, la sincera “gratitud” que estalla en los labios de quienes recibieron ayuda material se transforma nuevamente en oración ferviente, uniendo espiritualmente a toda la comunidad sin dividir entre beneficiarios y benefactores. El pastor David Jang señala que esta estructura orgánica de gratitud, amor y oración es precisamente el latido espiritual que hace madurar sin cesar a la iglesia. Si la iglesia moderna, bajo el pretexto mundano de prepararse para el futuro, solo acumula enormes recursos financieros y al mismo tiempo da la espalda al prójimo que hoy sangra y gime, no será más que un grupo religioso sin vida. Lo que la iglesia necesita recuperar hoy no es un edificio espléndido ni programas sofisticados. Es el santo valor del buen samaritano, que incorpora voluntariamente el dolor del asaltado en medio de su propia agenda ocupada.

En definitiva, el majestuoso mensaje de 2 Corintios 9 que transmite el pastor David Jang invita con urgencia a los creyentes de hoy no a una vida de “acumular más”, sino a una vida de “dejar fluir más hondo y más ampliamente”. El verdadero servicio del creyente nunca termina en el cepillo de ofrendas colocado bajo las luces brillantes del santuario dominical. Debe ser, más bien, una gran confesión de fe realizada en medio de la vida más cotidiana y concreta, como aquella mano tosca con la que Simón se quitó su viejo abrigo para cubrir los hombros congelados de su prójimo. Hoy, ¿hacia qué estanque se está acumulando tu generosidad? ¿O está fluyendo como agua viva hacia el alma reseca de algún vecino? Ante esta pregunta profunda y dolorosa del pastor David Jang, nos vemos llevados a arrepentirnos a fondo de la vergonzosa actitud con la que justificábamos nuestro egoísmo escudándonos en una gracia barata. Oro fervientemente para que el eco de este sermón lleno de vida abra de par en par nuestras billeteras y nuestros corazones firmemente cerrados, y se convierta en un santo cauce inicial por el que el cálido amor de Cristo fluya sin estorbo hacia el centro mismo de este mundo congel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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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écosystème sacré qui s’infiltre dans les fissures d’un monde gelé – Pasteu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Dans le chef-d’œuvre classique de Léon Tolstoï, De quoi vivent les hommes, apparaît Simon, un cordonnier pauvre mais au cœur chaleureux. Pour traverser l’hiver rigoureux, il ne possédait qu’un seul vieux manteau de peau de mouton à partager avec sa femme. Un soir glacial, alors qu’il avait voulu y faire ajouter de la fourrure mais avait dû rebrousser chemin les mains vides faute d’argent, il croisa sur le bord d’une route battue par la neige un jeune inconnu, nu et en train de mourir de froid. Il hésita un instant, puis finit par retirer son vieux manteau pour le poser sur les épaules voûtées de l’étranger, le ramena chez lui et partagea volontiers avec lui le dernier pain chaud et le thé qui lui restaient. Plus tard, on découvre que ce jeune homme était l’ange Michel, chassé sur la terre en punition. Avant de remonter au ciel, l’ange laisse cette grande vérité : « L’homme ne vit pas d’un cœur égoïste replié sur lui-même, mais de l’amour qui cherche à combler le manque d’autrui. » Ce noble témoignage littéraire montre combien l’altruisme, qui consent à partager sa propre vie en allant à rebours de l’égoïsme humain, soutient chaleureusement le monde. Mais la Bible déclare qu’un tel partage ne peut jamais être accompli uniquement par la bonté passagère ou la bonne volonté naturelle de l’être humain ; elle nous invite à la source de grâce qui ne se tarit jamais.

Le paradoxe de la croix et l’abondance qui desserrent la main crispée. Dans 2 Corinthiens 9, la « collecte » que l’apôtre Paul demande aux Églises d’origine païenne pour l’Église démunie de Jérusalem n’était ni une simple campagne de charité, ni une action de secours ponctuelle. C’était un événement spirituel, saint et révolutionnaire, qui montre comment l’Évangile reconfigure entièrement une âme endurcie et un portefeuille égoïste. À travers une profonde lecture théologique de ce passage,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clairement que l’offrande est à la fois un acte économique qui comble la pénurie matérielle d’autrui et un canal par lequel la grâce invisible du ciel se solidifie sous une forme visible et concrète. Contrairement à ce que nous croyons souvent, la véritable abondance ne vient ni du chiffre inscrit sur un compte bancaire, ni de la quantité de grain entassée dans un grenier. Celui qui a déjà fait l’expérience de la grâce inépuisable de la croix commence à réévaluer ses biens, non plus avec la règle étroite du calcul mesquin, mais avec les yeux débordants de gratitude. Ce n’est ni un devoir moral arraché de force, ni une compassion de façade, mais le miracle d’une vie qui déborde comme une cascade dans l’âme et qui ouvre naturellement la main jadis serrée. Voilà la puissance du véritable Évangile, voilà la réalité de la grâce dont parle l’apôtre Paul.

Un saint écosystème spirituel qui va à contre-courant de l’ère du chacun pour soi. Paul compare l’offrande au travail du paysan qui sème. La semence ne porte pas du fruit quand elle est conservée en sûreté dans un entrepôt ; elle produit au contraire une moisson débordante de vie — trente, soixante fois plus — lorsqu’elle est jetée dans la terre sombre, là où elle accepte de pourrir. Quand nous avançons calmement vers une méditation profonde de l’Écriture, nous comprenons que ce partage demandé par Paul n’a rien à voir avec la logique mondaine et intéressée selon laquelle « plus on donne, plus on reçoit ». Dans la prédication du pasteur David Jang, cette dynamique du dévouement est déployée en profondeur comme « le principe de l’écosystème spirituel du Royaume de Dieu ». L’entraide de l’Église primitive était une pratique très radicale de « l’égalité », qui s’opposait frontalement à l’ordre impérial dominé par la logique de la force et du chacun pour soi. Si un membre avait faim, les autres considéraient volontiers cette souffrance comme la leur ; si un membre vivait dans l’abondance, cette abondance circulait naturellement, comme le sang dans des veines, selon le souffle organique du corps du Christ. Ne pas abandonner la pauvreté comme s’il s’agissait d’un destin individuel inévitable, placer le pauvre non pas à la périphérie comme objet de pitié mais au centre de la communauté de foi, et porter ensemble ce fardeau : voilà le vrai visage de l’Église, radicalement distinct de n’importe quel autre groupe de ce monde.

Un amour concret qui dépasse le tronc d’offrandes pour pénétrer les blessures d’autrui. Le partage et l’offrande dont parle l’Écriture ne se réduisent jamais à de froids chiffres économiques ou à l’enregistrement d’un livre de comptes. Ils sont, au bout du compte, un pont d’amour qui restaure avec chaleur la dignité humaine perdue et rétablit les liens rompus. Paul affirme que la sincère « action de grâce » qui jaillit des lèvres de ceux qui ont reçu une aide matérielle devient à son tour une prière fervente, tissant spirituellement toute la communauté sans distinguer bénéficiaires et donateurs. Le pasteur David Jang montre que cette structure organique de circulation entre gratitude, amour et prière est précisément le battement de cœur spirituel qui fait mûrir l’Église sans cesse. Si l’Église contemporaine ne fait qu’accumuler d’immenses ressources financières sous le prétexte séculier de préparer l’avenir, tout en détournant le regard du prochain qui saigne et gémit maintenant, elle ne sera rien d’autre qu’un groupe religieux vidé de sa vitalité. Ce que l’Église doit retrouver aujourd’hui, ce ne sont ni des bâtiments somptueux ni des programmes sophistiqués, mais le courage sacré du bon Samaritain, capable d’intégrer volontairement la souffrance de celui qui est tombé aux mains des brigands dans son propre agenda chargé.

En définitive, le message majestueux de 2 Corinthiens 9 transmis par le pasteur David Jang lance aujourd’hui un appel pressant aux croyants : non pas vivre pour accumuler davantage, mais vivre pour laisser couler plus profondément et plus largement ce qui leur a été donné. Le véritable service du croyant ne s’achève jamais dans le tronc d’offrandes placé sous les lumières éclatantes du culte dominical. Il doit être une grande confession de foi vécue au cœur même de l’existence la plus quotidienne et la plus concrète, comme ce geste rude mais authentique de Simon retirant son vieux manteau pour couvrir les épaules glacées de son prochain. Aujourd’hui, vers quelle mare votre abondance stagne-t-elle ? Ou bien coule-t-elle comme une eau vive vers l’âme asséchée de quelque voisin ? Devant cette question grave et poignante du pasteur David Jang, nous sommes conduits à nous repentir profondément de la manière honteuse dont nous avons justifié notre égoïsme sous prétexte d’une grâce à bon marché. Puisse l’écho de cette prédication débordante de vie ouvrir tout grand le portefeuille et le cœur de chacun de nous, afin que l’amour chaleureux du Christ se déverse sans obstacle au milieu d’un monde gelé, comme une source sainte qui met en mouvement la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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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oly Ecosystem Seeping into the Cracks of a Frozen World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Pastor David Jang

In Leo Tolstoy’s classic masterpiece What Men Live By, there appears Simon, a poor shoemaker with a warm heart. One bitter winter, he had only a single worn sheepskin coat to share with his wife through the cold season, and even that night he had turned back empty-handed after lacking the money to have fur added to it. Yet he could not bring himself to ignore a stranger, naked and freezing by the roadside in the snowstorm. After a moment’s hesitation, he finally took off his old coat, covered the stranger’s hunched shoulders, brought him home, and gladly shared his last warm bread and tea. Later it is revealed that the young man was Michael, an angel cast down to earth as punishment. Before ascending again, the angel leaves behind a profound truth: “Man does not live by selfish concern for himself, but by love that fills the lack of others.” This noble literary witness shows how deeply the world is sustained by altruism that willingly shares one’s own life against the grain of human selfishness. Yet Scripture declares that such sharing can never be completed by temporary human goodwill or mere kindheartedness alone, and invites us instead to the unfailing source of grace.

The Paradox and Abundance of the Cross That Opens Clenched Hands

In 2 Corinthians 9, the “collection” the Apostle Paul requested from the Gentile churches for the impoverished church in Jerusalem was not a simple charity drive or a one-time relief effort. It was a holy and revolutionary spiritual event that revealed how the gospel completely reconfigures a hardened soul and a selfish wallet. Through deep theological insight into this passage, Pastor David Jang clearly emphasizes that the collection is both an economic act that fills another person’s material lack and a channel through which the invisible grace of heaven takes visible, physical form.

Contrary to what we often assume, true abundance does not come from the number in a bank account or the quantity of grain stored in a barn. Those who have already experienced the inexhaustible grace of the cross begin to reevaluate their possessions not by the stingy standard of calculation, but through eyes overflowing with gratitude. It is not coerced moral duty or reluctant pity, but the miracle of life cascading like a waterfall within the soul, naturally opening the hand that was once tightly clenched. This is the power of the true gospel and the substance of grace Paul speaks of.

A Holy Spiritual Ecosystem That Defies an Age of Every Person for Themselves

Paul compares giving to the work of a farmer sowing seed. A seed does not bear fruit when it is safely piled up in a storehouse; only when it is willingly cast into dark soil to die does it produce thirtyfold and sixtyfold, bursting with life. As we quietly enter a place of deep scriptural meditation, we come to realize that the sharing Paul calls for is by no means a worldly or prosperity-driven investment logic that says, “Give more, get more back.”

Pastor David Jang’s sermon unfolds this wave of devotion as “the principle of the spiritual ecosystem of the kingdom of God.” The almsgiving of the early church was a radically egalitarian practice that directly challenged the every-person-for-himself order of an empire ruled by power. If one member went hungry, the others willingly regarded that suffering as their own. If one member had abundance, that abundance flowed naturally like blood through veins. It was the organic breathing of the body of Christ. Rather than leaving poverty as an unavoidable individual fate, the church placed the poor not at the margins as objects of pity, but at the center of the faith community and bore their burden together. This is the true face of the church, utterly distinct from any group in the world.

Concrete Love That Moves Beyond the Offering Box and Into the Wounds of Others

The sharing and giving Scripture speaks of can never be reduced to cold economic figures or entries in an accounting ledger. In the end, they are a bridge of love that warmly restores lost human dignity and reconnects broken relationships. Paul says that the sincere thanksgiving that bursts from the lips of those who receive material help through the offering becomes earnest prayer in return, spiritually binding the whole community together without dividing recipients from supporters.

Pastor David Jang points out that this organic cycle of gratitude, love, and prayer is the spiritual heartbeat that continually matures the church. If the modern church merely amasses great wealth under the secular pretext of preparing for the future while ignoring neighbors who are bleeding and groaning in the present, it will be nothing more than a religious institution that has lost its vitality. What the church must recover today is not magnificent buildings or sophisticated programs, but the holy courage of the Good Samaritan, who willingly made the suffering of the wounded man part of his own busy schedule.

In the end, the majestic message of 2 Corinthians 9 as preached by Pastor David Jang urgently invites believers today not to “live by accumulating more,” but to “live by letting more flow out, more deeply and more widely.” The true service of a believer does not end at the offering box placed beneath the bright lights of a Sunday sanctuary. Like Simon’s rough hands removing his worn coat to cover the shoulders of a freezing neighbor, it must become a great confession of faith lived out in the most ordinary and concrete moments of daily life.

Today, where is your abundance collecting? Is it stagnating in some pool? Or is it flowing like living water toward the parched soul of a neighbor? Before this weighty and piercing question from Pastor David Jang, we are led to thoroughly repent of the shameful ways we have justified our selfishness under the excuse of cheap grace. May the living echo of this sermon fling wide open each of our tightly closed wallets and hearts, becoming a holy springhead through which the warm love of Christ may flow freely into the very center of this frozen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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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세상의 틈으로 스며드는 거룩한 생태계 – 장재형 목사 (Olivet University)

장재형 목사와 회의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고전 명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가난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구두장이 시몬이 등장합니다. 그에게는 매서운 겨울을 날 아내와 나눌 단 한 벌의 낡은 양가죽 외투뿐이었고, 그마저도 털을 덧대려다 돈이 부족해 빈손으로 발길을 돌리던 어느 추운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보라 치는 길가에 벌거벗은 채 얼어붙어 가는 낯선 청년을 결코 외면하지 못합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결국 자신의 낡은 외투를 벗어 낯선 이의 굽은 어깨를 덮어주며 집으로 데려와 마지막 남은 따뜻한 빵과 차를 기꺼이 나눕니다. 훗날 그 청년이 벌을 받아 지상으로 쫓겨난 천사 미카엘이었음이 밝혀지고, 천사는 “사람은 자신을 살피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타인의 결핍을 채우려는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위대한 진리를 남기고 승천합니다. 이 숭고한 문학적 증언은, 철저한 이기적 본성을 거슬러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나누는 이타성이 얼마나 세상을 따뜻하게 지탱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나눔이 단지 인간의 일시적인 선의나 착한 심성만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고 선언하며, 영원히 마르지 않는 은혜의 근원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움켜쥔 손을 펴게 하는 십자가의 역설과 넉넉함
고린도후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이 궁핍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이방 교회들에게 요청한 ‘연보(헌금)’는 단순한 자선 냄비나 일회성 구호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한 사람의 굳어진 영혼과 이기적인 지갑을 어떻게 완전히 재구성하는가를 보여주는 거룩하고도 혁명적인 영적 사건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본문에 대한 깊은 신학적 통찰을 통해, 연보가 누군가의 물질적 결핍을 메우는 경제적 행위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은혜가 눈에 보이는 물리적 형태로 굳어지는 통로임을 명확히 강조합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듯 진정한 넉넉함은 통장 잔고의 숫자나 창고에 쌓인 곡식의 양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다함없는 은혜를 경험한 성도는, 더 이상 인색한 계산의 잣대가 아닌 벅찬 감사의 눈으로 자신의 소유를 재평가하기 시작합니다. 억지로 쥐어짜는 윤리적 의무나 동정이 아니라, 내 영혼 안에 폭포수처럼 흘러넘치는 생명이 굳게 움켜쥐었던 손을 자연스럽게 펴게 만드는 기적, 이것이 바로 참된 복음의 능력이자 사도 바울이 말한 은혜의 실체입니다.

각자도생의 시대를 거스르는 거룩한 영적 생태계
바울은 헌금을 ‘씨를 뿌리는 농부의 일’에 비유합니다. 씨앗은 안전한 창고 안에 고이 쌓아둘 때가 아니라, 기꺼이 썩어질 어두운 땅속으로 던져질 때 비로소 서른 배, 육십 배의 생명력 넘치는 열매를 맺습니다. 깊은 성경 묵상의 자리에 조용히 나아가면, 우리는 바울이 요청한 이 나눔이 결코 ‘많이 바치면 더 많이 돌려받는다’는 세속적이고 기복적인 투자 논리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장재형 목사의 설교는 이 헌신의 파동을 ‘하나님 나라의 영적 생태계 원리’로 깊이 있게 풀어냅니다. 초대 교회의 구제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제국의 각자도생적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매우 급진적인 ‘균등’의 실천이었습니다. 한 지체가 굶주리면 다른 지체도 그 고통을 기꺼이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한 지체가 풍성하면 그 풍성함을 혈관처럼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유기적인 그리스도의 몸 된 호흡이었습니다. 빈곤을 어쩔 수 없는 개인의 숙명으로 방치하지 않고, 가난한 자를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의 중심에 두어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것, 이것이 세상의 어떤 집단과도 철저히 구별되는 교회의 진짜 얼굴입니다.

헌금함을 넘어 타인의 상처 속으로 스며드는 구체적 사랑
성경이 말하는 나눔과 연보는 결코 차가운 경제적 수치나 회계 장부의 기록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인간의 잃어버린 존엄을 따뜻하게 회복시키고, 단절되었던 관계의 틈을 다시 잇는 사랑의 다리입니다. 바울은 연보를 통해 물질적 도움을 받은 이들의 입술에서 폭발하는 진실한 ‘감사’가 다시 간절한 기도가 되어, 수혜자와 후원자를 가르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영적으로 묶어낸다고 말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감사와 사랑, 기도의 유기적인 순환 구조가 곧 교회를 끝없이 성숙하게 만드는 영적 심장 박동이라고 짚어냅니다. 만약 현대 교회가 미래를 대비한다는 세속적인 명목으로 재정을 거대하게 축적하기만 하고 당장 피 흘리며 신음하는 이웃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생명력을 잃은 종교 집단에 불과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화려한 건축물이나 정교한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강도 만난 자의 고통을 기꺼이 나의 바쁜 일정 속으로 편입시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거룩한 용기입니다.

결국 장재형 목사가 전하는 고린도후서 9장의 장엄한 메시지는 오늘날의 성도들을 ‘더 많이 축적하는 삶’이 아닌 ‘더 깊고 넓게 흘려보내는 삶’으로 간절히 초대합니다. 성도의 참된 섬김은 주일 예배당의 화려한 조명 아래 놓인 헌금함에서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시몬이 나의 낡은 외투를 벗어 얼어붙은 이웃의 어깨를 덮어주었던 그 투박한 손길처럼, 가장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지는 위대한 신앙 고백이어야 합니다. 오늘 당신의 넉넉함은 어느 웅덩이를 향해 고여 있습니까? 아니면, 메말라가는 어느 이웃의 영혼을 향해 생수처럼 흐르고 있습니까? 장재형 목사의 이 묵직하고도 뼈아픈 질문 앞에서, 우리는 값싼 은혜를 핑계로 이기심을 정당화하던 부끄러운 모습을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부디 이 생명력 넘치는 설교의 울림이 우리 각자의 굳게 닫힌 지갑과 마음을 활짝 열어젖혀, 얼어붙은 세상 한가운데로 따뜻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막힘없이 흘려보내는 거룩한 마중물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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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통찰: 어둠을 뚫고 타오르는 진리의 불꽃 — 장재형 목사가 조명한 ‘파수꾼의 소명’

🎨 렘브란트의 광원과 목회의 명암법: 어둠 속에 갇힌 빛을 사수하라

17세기 네덜란드의 거장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은 평생토록 ‘빛의 신비’에 천착했습니다. 그의 캔버스는 언제나 삼킬 듯한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심연을 뚫고 단 하나의 강렬한 광원이 인물의 얼굴과 영혼을 비춥니다. 미술사에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라 명명된 이 극적인 명암대비는 렘브란트의 삶 그 자체이기도 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의 잇따른 죽음, 그리고 파산이라는 가혹한 운명의 어둠이 그를 덮쳤을 때, 그의 붓 끝에서 탄생한 빛은 역설적으로 더욱 투명하고 견고해졌습니다.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는 디모데전서 강해를 통해 목회의 본질을 바로 이 ‘렘브란트적 긴장’ 위에서 풀어냅니다. 세상은 언제나 혼탁한 시대정신과 교묘한 인본주의, 번지르르한 거짓 교훈의 어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거대한 암흑 속에서 오직 **’복음의 진리’**라는 단 하나의 빛을 꺼뜨리지 않고 지켜내는 것, 그것이 목회의 전부라고 역설합니다. 빛을 사수하는 ‘파수꾼’의 단호함과 그 빛 앞에 스스로를 비추는 ‘기도자’의 겸손함. 장재형 목사는 이 두 가지 태도가 참된 목회자를 지탱하는 두 기둥임을 천명합니다.


🛡️ 잠들지 않는 파수꾼의 눈: 거짓 교훈의 범람 속에 선 성벽의 수호자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건넨 첫 마디는 의외로 전략적 확장이나 예배의 형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게 하며” (딤전 1:3)**라는 엄중한 경고였습니다. 목회자의 첫 번째 사명은 양 떼를 먹이기 이전에, 독초(거짓 교훈)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파수꾼’의 역할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지점에서 목회자의 소명을 성벽 위에서 밤을 지새우는 감시자의 언어로 재해석합니다.

2,000년 전 로마의 광장이 스토아 철학과 영지주의의 달콤한 속삭임으로 넘실댔듯, 오늘날의 강단 역시 자기계발의 논리와 번영신학의 메시지에 위협받고 있습니다. 성경 묵상의 깊이보다 심리학적 위로가 더 환영받는 이 혼란스러운 지형에서 장재형 목사의 설교는 묵직한 돌직구를 던집니다. “당신이 지키고 있는 것은 사람의 철학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파수꾼의 눈은 냉소적이지 않습니다. 그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길 잃은 양 떼를 향한 애끓는 ‘사랑’ 때문입니다. 장 목사가 강조하는 ‘영적 분별력’은 날카로운 칼날인 동시에, 상처받은 영혼을 싸매는 따뜻한 손길이어야 합니다. 진리가 사랑에 기초할 때, 그것은 비로소 공동체를 살리는 생명력이 됩니다.


🛐 죄인 중의 괴수가 드리는 눈물의 제사: 은혜의 기억이 동력이 되는 사역

강한 파수꾼도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결국 소진(Burn-out)되기 마련입니다. 장재형 목사의 신학적 통찰이 가장 깊게 뿌리내린 곳은 바로 사역자의 ‘내면’입니다. 목회의 에너지는 의무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입은 **’은혜에 대한 생생한 기억’**에서 흘러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는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스데반을 죽이고 성도를 핍박했던 ‘포행자’였던 자신을 사도로 부르신 그 아찔한 은혜 앞에서 그는 평생을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일만 달란트 빚 탕감의 비유’를 통해 이 은혜의 무게를 설명합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받은 자만이 타인을 향해 진정한 긍휼을 품을 수 있습니다.

복음서 저자 마가가 자신이 겟세마네에서 벌거벗은 채 도망쳤던 치욕스러운 순간을 굳이 기록한 이유도 같습니다. ‘나 같은 자도 붙드신 은혜’를 증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 목사는 이처럼 사역자가 자신의 연약함을 직시하고 하나님의 긍휼 아래 머물 때, 비로소 다른 이의 영혼을 품을 수 있는 ‘은혜의 통로’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 골방에서 열방으로: 네 겹의 기도가 빚어내는 세계적 영성

내면에서 충만해진 은혜는 필연적으로 기도의 지평을 확장시킵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에서 네 가지 차원의 기도를 명령합니다.

  1. 간구(데에시스): 나의 결핍을 아뢰는 간절함
  2. 기도(프로슈케): 하나님의 주권 앞에 엎드리는 경배
  3. 도고(엔툭시스): 이웃과 공동체를 위한 중보
  4. 감사(유카리스트): 구원의 은총에 응답하는 찬양

장재형 목사는 이 기도의 물결이 ‘나’라는 작은 우물에서 시작하여 ‘온 만민’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흘러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딤전 2:4)**는 말씀 앞에서, 복잡한 신학적 논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심장을 소유하는 일입니다.

‘Think Globally(세계적으로 생각하라)’ — 장 목사가 제시하는 이 영성은 거창한 구호가 아닙니다. 은혜로 녹아내린 한 사람의 가슴이 담장을 넘어 열방의 고통을 품게 되는 복음의 본능적 확장입니다. 성경 묵상이 깊어질수록 골방의 속삭임은 임금들과 나라를 위한 도고로 자라납니다.


💡 마무리: 당신은 어느 편의 빛 아래 서 있습니까?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서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빛을 이긴 적은 없었습니다. 진리의 파수꾼으로 깨어 있고, 은혜의 기도자로 무릎 꿇는 한 사람만 있다면 그 빛은 결코 꺼지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를 관통하는 장재형 목사의 메시지는 우리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정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파수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은혜 입은 죄인의 가슴으로 세상을 품고 있습니까?” 그 흔들리지 않는 빛의 편에 서서, 오늘도 잠들지 않는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미래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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洒落在米利都海岸的泪水 – 张大卫牧師 (Olivet University)

在地中海咸涩的海风吹拂下,米利都的某处海滩上,一群人围成圆圈跪伏在地。比起粗砺拍岸的浪声更响的,是一群壮实男人压抑不住、从胸腔深处迸出的恸哭。在他们当中,站着一位年迈的使徒——双手因漫长的宣教旅程而粗糙,身披陈旧外衣。面对那句悲壮的宣告——“你们将再也见不到我的面”——以弗所的长老们抱住他的颈项,像孩子一般放声痛哭。甘愿踏上通往耶路撒冷的路,明知前方等着他的,是死亡的捆锁与患难的使徒保罗;他转身离去的背影,成为基督教历史中最崇高也最令人心碎的离别场景之一,更是向世人展示何为对福音的绝对献身、何为活生生的圣经默想现场。张大卫借着《使徒行传》第20章这段庄严的记载,向活在今日迷惘时代的我们,再次指出那条失落的真信仰之路与十字架的精神。

在浪中的使徒告白,以及不停歇的脚步

保罗的宣教之路,从来不是赢得掌声与喝彩的华丽荣耀之途。在特罗亚,他深夜传讲信息时,名叫犹推古的青年从窗台坠下,死而复生——即便在这样令人震撼的神迹时刻,保罗也没有沉醉在人的庆幸或骄傲里;他只是默默见证神仍然活着。更有甚者,他先让同伴登船,自己却选择独自步行前往亚朔,那段超过四十公里的路程里,隐藏着一颗只愿聆听主微小声音的心,以及极其迫切、激烈的属灵挣扎。

他为赶上耶路撒冷的五旬节而加紧脚步,并非出于对律法的机械遵守,而是因为他比任何事都更渴望与那承载神救赎历史脉动的群体联合。张大卫从保罗这样的决断中看见:真正的神学洞见,不是跟随人的便利与安逸,而是对圣灵带领的即时顺服。那句“不把生命看作宝贵、也要走十字架道路”的沉重告白,尖锐刺痛我们今日信仰的浅薄现状,并呼唤我们进入更深的悔改。

承受耀之重的眼

保罗留给以弗所长老的临别遗言,其核心正是“谦卑”与“眼泪”。二十世纪杰出的基督教护教家与文学家 C.S. 路易斯(C.S. Lewis)在其经典名讲《荣耀的重量》(The Weight of Glory)中指出:我们每日擦肩而过、看似极其平凡的邻舍,事实上都可能成为将来披戴耀眼“永恒荣耀”、尊贵到令人难以承受的存在。保罗在以弗所三年之久,昼夜不息为各人流下的泪水,正是唯有真正明白灵魂那圣洁荣耀之重量的人,才能流出的神圣液体。

正如张大卫深刻指出的那样:缺乏真理的爱,极易堕落为廉价的感伤;而失去爱的真理,则会化作冷酷律法主义的刀刃,刺伤灵魂。即便在倾泻而来的逼迫与犹太人致命的诡计之中,保罗仍披戴那位在十字架上将自己完全舍出的基督之谦卑,为要把一个个灵魂引向永恒的荣耀而不住哀恸。他不倚仗绝对权威来压服群羊,反倒以怜悯与爱拥抱教会;那泪水,正是能再次滋润、更新当代干涸教会心灵的最有力的恩典甘霖。

呼召的祭倒一切

保罗的目光并未停留在对过往事工的追忆上,而是投向教会未来即将面对的激烈属灵争战。在凶暴的豺狼窥伺群羊、有人用乖谬之言扭曲真理的时代威胁之下,他坚立众长老,称他们为那“用主的血所买来之教会”的监督与看守。教会绝非靠人的卓越领导力或精心策划的华丽节目得以维系;唯有主自己,以及他那充满恩典的话语,才能使群体在异端思想与分裂面前站立得稳。

保罗亲手搭帐棚、以自给自足之劳苦来事奉的彻底献身,正是在生活现场严厉警戒物质贪欲,并把“施比受更为有福”这福音的绝对真理活得鲜明有力的伟大足迹。张大卫借此经文强烈呼吁:现代教会必须逆着物质至上与世俗价值的潮流,回到生命之道与祷告的膝前。属灵领袖不是凌驾羊群之上的统治者,而当是在最低处怀抱群羊、昼夜流泪的献身守望者。

面向永恒福音的今日回

米利都海边那撕心裂肺的告别,并非悲伤的终章,而是新的《使徒行传》伟大开篇。纵然前路有捆锁与患难,保罗仍被圣灵牵引,沉默而坚定地走在使命之途;他的背影在今日依然在我们渴慕真实献身与有生命之福音的灵魂里激起强烈涟漪。正如张大卫在结论中所说:《使徒行传》不是止于二十八章的“合上之书”,而是我们这些手持十字架福音而活的人,应当在每日生活中继续书写的“展开的历史”。当我们各自在蒙召之处,恢复保罗那带泪的爱与不动摇的信心,教会才会再次挺立,成为世界真正的盼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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ミレトの海辺に落ちた涙:十字架の道を歩む者の – 張ダビデ 牧師 (Olivet University)

地中海の塩気を含んだ風が吹き抜けるミレトのある海辺。そこに、一群の人々が円になって集まり、ひざまずいています。荒々しく砕ける波の音よりも大きく響き渡るのは、屈強な男たちが吐き出す、押し殺していた嗚咽です。彼らの中心には、長い宣教の旅で荒れた手と、古びた外衣をまとった一人の老使徒が立っています。二度とその顔を見ることはない――その痛切な宣言の前で、エフェソの長老たちは彼の首にすがりつき、幼子のように泣きじゃくります。死の束縛と患難が待ち受けるエルサレムへ、喜んで足を運ぶ使徒パウロ。彼の背中は、キリスト教史上もっとも崇高で胸を締めつける別れの場面であると同時に、福音への絶対的献身とは何かを示す、生きた聖書黙想の現場でもあります。張ダビデは、この荘厳な使徒言行録20章の記録を通して、混迷する時代を生きる私たちに、失われた真の信仰の道と十字架の精神を改めて提示します。

波音にかき消された使徒の告白、そして止まらない

パウロの宣教の旅は、決して拍手喝采を浴びる華やかな栄光の道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トロアスで夜更けまでみことばを語ったとき、エウテュコスという青年が窓から落ちて死んだのに生き返る――その驚くべき奇跡の瞬間にさえ、パウロは人間的な安堵や慢心に酔いませんでした。彼はただ、神が生きておられることを黙々と証ししたにすぎません。

さらに、同行者たちを先に舟に乗せて送り出し、自らはアソスまで四十キロを超える道のりを一人で歩くことを選び取った、その孤独な足取りの中には、ただ主の静かな御声に耳を澄ませようとする、切実な霊的格闘が刻まれていました。

彼がエルサレムで五旬祭(ペンテコステ)を守るために歩みを急いだのも、単なる律法の順守ではなく、神の贖いの歴史が流れる共同体との一致を、何よりも切望したからです。張ダビデは、このパウロの決断の内に、人間的な利便や安楽ではなく、ただ聖霊の導きに即座に従うという真の神学的洞察を見いだします。命を少しも惜しまず十字架の道を歩む――その使徒の重い告白は、現代を生きる私たちの信仰の浅さを鋭く突き、深い悔い改めへと促します。

光の重みに耐える理と愛が交差する場所

使徒パウロがエフェソの長老たちに残した最後の遺言の核心は、「へりくだり」と「涙」でした。20世紀屈指のキリスト教弁証家であり文学者であるC.S.ルイス(C.S. Lewis)は、古典的名講義『栄光の重み(The Weight of Glory)』において、私たちが日々すれ違うごく平凡に見える隣人たちこそ、やがて耐えがたいほど輝かしい「永遠の栄光」をまとう尊い存在になるのだ、と力説しました。

パウロがエフェソで三年もの間、昼も夜も休まず一人ひとりのために流し続けた涙は、まさにこの「魂に注がれる聖なる栄光の重み」を深く悟った者だけが流し得る、神聖な滴でした。

張ダビデが深く指摘するように、真理を欠いた無分別な愛は安っぽい感傷へと堕しやすく、愛が蒸発した真理は冷たい律法主義の刃となって魂を刺します。パウロは、降り注ぐ迫害とユダヤ人たちの致命的な策略のただ中でも、十字架の上で最後までご自身を差し出されたキリストのへりくだりを身にまとい、一つの魂を永遠の栄光へ導くために、絶えず痛み、嘆きました。権威を振りかざさず、憐れみと愛で信徒を抱きしめたその涙こそ、乾き切った今日の教会の心を再び潤し、回復へ導く最も力強い恵みの雨です。

聖なる召しの祭壇に、すべてを注ぎくす

パウロの視線は、自身の過去の働きを振り返ることにとどまらず、これから教会に迫る激しい霊的戦いへと向けられています。凶暴な狼が羊の群れを狙い、曲がった言葉で真理を損なおうとする時代の脅威の中で、彼は長老たちを、主の血によって代価を払って買い取られた教会の「監督者」として固く立てます。教会は、決して人間の卓越したリーダーシップや、華やかに企画されたプログラムによって支えられる組織ではありません。主と、その恵みのみことばだけが、共同体を異端思想と分裂から堅く守り得るのです。

自ら天幕作りの労苦を担い、自給の働きとして奉仕したパウロの徹底した献身は、物質への貪欲を厳しく退け、「受けるよりも与える方が幸いである」という福音の絶対的真理を、生活の場で生々しく生き抜いた偉大な足跡でした。張ダビデはこの本文を通して、現代の教会が物質万能主義と世俗の価値観に逆らい、ただいのちのみことばと祈りのひざへ立ち帰らねばならないと、力強く説き明かします。霊的指導者は羊の群れの上に君臨する者ではなく、最も低いところで彼らを抱き、昼も夜も泣きつつ見張る、献身した霊の見張り人であるべきなのです。

永遠の福音へ向けた、今日の私たちの

ミレトの海辺の痛切な別れは、決して悲しい終幕ではなく、新しい使徒言行録の偉大な始まりでした。束縛と患難が待ち受け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聖霊に縛られて黙々と使命の道を歩み続けたパウロの背中は、真の献身といのちある福音に渇く私たちの魂に、強い波紋を広げます。張ダビデが結論として語るように、使徒言行録は28章で閉じられた本ではなく、十字架の福音を携えて生きる私たちが、日々の生活のただ中で新しく書き継いでいく「開かれた歴史」です。私たち一人ひとりが召しの場所に立ち、パウロが示した涙の愛と揺るがぬ信仰を回復するとき、教会ははじめて、この世の真の希望として再び堂々と立ち上がるでしょう。

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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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ágrimas derramadas en la playa de Mileto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Pastor David Jang

En una playa de Mileto, donde sopla la brisa salada del Mediterráneo, un grupo de personas se reúne en círculo y se arrodilla. Más fuerte que el estruendo de las olas que se rompen con aspereza, resuena el llanto contenido que estalla de hombres robustos. En medio de ellos está un apóstol anciano: manos endurecidas por un largo itinerario misionero y un manto gastado sobre los hombros. Ante la solemne declaración de que ya no volverán a ver su rostro, los ancianos de Éfeso se aferran a su cuello y lloran como niños. El apóstol Pablo, que voluntariamente dirige sus pasos hacia Jerusalén, donde le esperan cadenas y tribulaciones. Su figura alejándose es una de las escenas de despedida más sublimes y desgarradoras de la historia cristiana, y a la vez un escenario vivo de meditación bíblica que muestra qué es la entrega absoluta al evangelio. David Jang, a través de este majestuoso testimonio de Hechos 20, vuelve a presentar a quienes vivimos en tiempos confusos el camino perdido de la fe auténtica y el espíritu de la cruz.

La confesión del apóstol ahogada por el rumor de las olas, y el paso que no se detiene

El recorrido misionero de Pablo nunca fue un camino brillante de gloria que recibiera aplausos. Incluso cuando, en Tróade, al predicar hasta altas horas de la noche, ocurrió el asombroso milagro de que un joven llamado Eutico cayera desde la ventana, muriera y volviera a la vida, Pablo no se dejó llevar por un alivio meramente humano ni se embriagó de orgullo. Él simplemente daba testimonio, en silencio y con firmeza, de que Dios está vivo. Más aún: hizo que su comitiva se embarcara primero, y él mismo decidió caminar solo hasta Asos, más de 40 kilómetros. En esos pasos solitarios se escondía una lucha espiritual intensa: el anhelo ardiente de escuchar únicamente la voz apacible del Señor.

El hecho de que se apresurara para guardar la fiesta de Pentecostés en Jerusalén no era un simple cumplimiento de la Ley, sino que brotaba de su deseo, por encima de todo, de unirse a la comunidad por la que fluye la historia redentora de Dios. David Jang descubre, en esta determinación de Pablo, un discernimiento teológico genuino: obedecer de inmediato no a la conveniencia humana ni a la comodidad, sino únicamente a la guía del Espíritu Santo. La confesión pesada del apóstol —caminar el camino de la cruz sin tener su vida como cosa preciosa— atraviesa con agudeza la superficialidad de nuestra fe actual y nos llama a un arrepentimiento profundo.

Lágrimas que soportan el peso de la gloria: donde se cruzan la verdad y el amor

El núcleo del último testamento que el apóstol Pablo dejó a los ancianos de Éfeso fue precisamente la “humildad” y las “lágrimas”. C.S. Lewis, uno de los grandes apologistas y escritores cristianos del siglo XX, en su clásica conferencia El peso de la gloria (The Weight of Glory), insistió en que los vecinos que rozamos cada día y que parecen extremadamente comunes son, en realidad, seres destinados a revestirse de una “gloria eterna” tan deslumbrante que hoy nos costaría soportarla. Las lágrimas que Pablo derramó en Éfeso durante tres años, sin cesar de noche y de día por cada persona, eran precisamente ese líquido sagrado que solo puede derramar quien ha comprendido plenamente el peso de la gloria santa del alma.

Como David Jang señala con profundidad, el amor indiscriminado sin verdad tiende a degradarse en sentimentalismo barato, y la verdad a la que se le evapora el amor se convierte en la fría espada del legalismo que hiere las almas. Pablo, aun en medio de persecuciones incesantes y de las intrigas mortales de los judíos, se revistió de la humildad de Cristo, quien se entregó hasta el final en la cruz, y se dolió sin descanso para conducir una sola alma hacia la gloria eterna. Esas lágrimas —que no se amparan en una autoridad absoluta, sino que abrazan a los creyentes con compasión y amor— son la lluvia de gracia más poderosa capaz de volver a humedecer y restaurar el corazón reseco de la iglesia de hoy.

Derramarlo todo sobre el altar del santo llamamiento

La mirada de Pablo no se queda en el recuento de su pasado ministerial, sino que se dirige hacia la feroz batalla espiritual que se avecina sobre el futuro de la iglesia. En un tiempo amenazado por lobos feroces que acechan al rebaño y por palabras torcidas que buscan deformar la verdad, él afirma a los ancianos como “supervisores” de la iglesia, comprada a precio de la sangre del Señor. La iglesia no se sostiene como una organización por un liderazgo humano brillante o por programas espectacularmente planificados. Solo el Señor y la palabra de su gracia pueden resguardar firmemente a la comunidad de ideologías heréticas y de la división.

La entrega radical de Pablo —que trabajó con sus propias manos, haciendo tiendas, y sirvió de manera autosostenida— fue una huella inmensa: una vida que vigiló con rigor la avaricia y encarnó, en la realidad concreta, la verdad absoluta del evangelio: “más bienaventurado es dar que recibir”. David Jang, a través de este pasaje, proclama con fuerza que la iglesia contemporánea debe ir contra el materialismo y los valores del mundo y volver únicamente a la Palabra de vida y a la rodilla doblada en oración. El líder espiritual no es quien domina sobre el rebaño, sino quien, desde el lugar más bajo, los abraza y llora noche y día: un centinela espiritual entregado.

Nuestra respuesta de hoy al evangelio eterno

La despedida dolorosa en la playa de Mileto no fue, en absoluto, un final triste, sino el gran comienzo de unos nuevos Hechos. La figura de Pablo, atado por el Espíritu y caminando en silencio el camino de la misión aunque le esperen cadenas y tribulaciones, provoca ondas profundas en nuestra alma, sedienta de una entrega auténtica y de un evangelio lleno de vida. Como concluye David Jang, el libro de los Hechos no es un volumen cerrado que termina en el capítulo 28, sino una historia abierta que nosotros, quienes vivimos llevando el evangelio de la cruz, debemos seguir escribiendo cada día con nuestra vida. Cuando cada uno de nosotros recupere, en el lugar de su llamamiento, ese amor de lágrimas y esa fe inquebrantable que Pablo mostró, entonces la iglesia se levantará de nuevo como la verdadera esperanza del mu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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