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신앙의 회복 – 장재형목사

장재형목사

1.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 부활신앙의 현장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은 기독교 교회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공간이며, 동시에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 깊은 영적 통찰을 주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다락방은 사도행전 1장부터 2장으로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장면의 무대가 되는데, 바로 여기서 초대교회의 태동과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 시작점인 사도행전 1장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마무리하시는 시점, 즉 승천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와 약속을 주신 사건이 기록된 장면이다. 그리고 이 다락방은 단지 물리적 공간의 개념을 넘어, ‘초대교회가 두려움 속에서도 예루살렘 한복판에 모여 역사적 변화를 일으킨 상징적 장소’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면을 가리켜 “비록 제자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약 40일 동안 그들을 직접 찾아오셔서 다시 세우시고, 믿음을 불어넣어 주신 뒤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하셨다”라고 설명한다. 제자들은 갈릴리까지 흩어졌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부활신앙”으로 무장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부활이 어떠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며, 그 출발점에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예루살렘이어야 했을까?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거기서 처형되셨던 도시가 예루살렘이다. 제자들에게는 몹시도 두렵고 참혹한 기억이 남은 곳이었을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그분을 따르던 많은 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려라”(행1:4-5)는 말씀을 직접 주심으로써, 제자들이 오히려 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지역에 다시 모이게 하셨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하나님의 역사는 늘 우리의 기대와 상식을 뛰어넘는다. 부활신앙이란,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 가장 소망을 전하는 힘을 발휘할 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부활신앙의 특징은, ‘죽음이 끝이 아니다’라는 확신에 있다. 제자들이 한때는 ‘주님이 처형당했고, 이제 우리도 붙잡혀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주저앉았으나, 예수님께서 실제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모습을 보고 “죽음 그 너머의 새로운 시대”를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3절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증언한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일”이란 단지 막연한 종말론이나 철학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교회가 어떤 능력으로 세워져야 하고, 어떻게 전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방향을 포함한다. 그 핵심 중 하나가 “너희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출발하라”는 말씀이다.

장재형 목사는 “사람이 가장 약해지고 넘어졌던 곳에서 다시 회복하는 역사를 ‘부활신앙의 실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이 주는 교훈이라 강조한다. 처음에 제자들이 이 다락방에 모였을 때, 그 분위기는 지극히 숨죽인 상태였을 것이다. 십자가 사건 직후,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안치되었고, 지도층은 예수님의 잔당까지 모조리 소탕하려는 기세가 등등했다. 그렇기에 그 다락방은, ‘잠깐 모여서 기도하는 안전한 은신처’ 정도로 활용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그곳에서 멈추지 말고 기다리라. 멈추어 서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을 받을 때까지 머물라는 것”이었다. 마가의 다락방이 이처럼 ‘무력한 도피처’에서 ‘능력의 발원지’로 바뀌게 된 것은 바로 성령 강림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곧 성령이 임하심으로(행2장),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숨은 제자들이 아니었다. 공포의 공간이던 다락방이 부활의 확신과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현장이 되자, 제자들은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 거리로 나아가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장재형 목사는 “부활이 교리로만 남아 있다면 의미가 없지만, 부활신앙이 실제 삶을 뒤엎는 능력이 될 때, 사람들이 마침내 예루살렘성 안에서조차도 두려움을 뛰어넘어 행동하는 변화를 보게 된다”라고 역설한다.

이런 ‘행동하는 신앙’은 곧 사도행전 전반에 드러난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사마리아와 온 유대, 그리고 땅끝에 이르는 역사적 복음 전파의 여정이 펼쳐지는 것이다. 신앙이 행동으로 이어진 가장 첫 번째 장면은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사건에서 드러나듯, 골방에 숨어 있던 이들이 거리로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고, 하루에 수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받는 장관이 펼쳐진 것이다. 그 발화점이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었다.

한편, 이 다락방은 “교회의 모태” 또는 “교회의 자궁”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새 시대가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확신과 성령 강림으로 인해 실제로 ‘새로운 공동체’가 그 안에서 잉태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아직 지상에 계실 때는, 제자들은 말씀을 배우며 동행하는 수학(修學)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이 임하신 이후, 제자들은 ‘교회 공동체의 기둥’으로서 스스로 복음을 확장해나가는 주체가 되었다. 다락방은 그 전환점의 심장부였고, 그 동력이 곧 부활신앙이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의 회복 장면을 떠올려보면, 제자들이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또 어떻게 다시금 사명을 확인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순종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이후, 주님께서 그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묻고, 베드로가 그 사랑을 고백함으로써 비로소 무너진 자기 자신을 끌어안고 ‘반석’(베드로)으로 거듭 태어난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면에 대해 “교회가 특정 프로그램이나 조직력으로 움직이지 않고, 결국 그 근본 동력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그 사랑은 곧 주님의 부활하심에서 기인하고, 우리를 품어주신 그 은혜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에야 견고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가의 다락방 역시 이와 같은 ‘고백’과 ‘회개’와 ‘믿음’의 집합체였다. 부인했던 제자들,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돌아와 하나의 공동체가 되고, 절망을 넘어서는 용기를 내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부활과 성령의 약속 때문이었다. “마태복음 26장 이하에 기록된 예수님의 고난 현장과, 요한복음 21장 갈릴리로 돌아간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사도행전 1장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이 한 줄로 연결될 때, 비로소 부활신앙이 오늘날 교회에 실질적 메시지를 준다”고 장재형 목사는 거듭 강조한다.

이렇듯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은 결과적으로 ‘두려움에서 대담함으로, 흩어짐에서 모임으로, 수치와 부인에서 회개와 고백으로’ 전환하는 현장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가 이 점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는데, “교회가 어느 시점부터 사회적 지탄이나 박해의 두려움 속에 숨어만 있는다면, 다시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불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활신앙의 현재적 적용이기도 하다.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치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듯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가 세상 한복판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도록 지지해주신다는 사실을 붙들 때,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끝까지” 이르는 길을 기쁨으로 갈 수 있다.

이 모든 맥락에서 장재형 목사는 “마가의 다락방을 단지 역사적 장소로만 여기지 말고, 현재의 교회마다 자기만의 다락방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곧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고 기도하는 자리’일 수도 있고, ‘부활신앙을 함께 붙들고 고백하는 자리’일 수도 있다.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숨는 행위가 아니라 “거기서 능력을 받아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종 준비”라는 점이 핵심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고 하셨듯, 그런 약속이 ‘다락방’에서 성취되었기에, 초대교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2. 맛디아의 선택, 유다의 빈자리를 메우는 교회의 회복

사도행전 1장 후반부에서 제자들은 열두 번째 사도의 자리를 새롭게 채우는 사건을 맞이한다. 부활절을 지나 오순절로 향하는 그 사이,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예수님이 열둘 중에 한 사람으로 부르셨던 가룟 유다의 배신과 그 후속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긴 뒤,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불의한 삯으로 밭을 산 뒤 거기서 몸이 떨어져 장기가 터져 죽었다는 기록(행1:18)으로 인해 “핏값의 비극”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장재형 목사는 유다의 비극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사람이 오히려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라고 표현한다. 유다는 제자 공동체 안에서 돈궤를 맡던 자였으니, 사실상 재정을 관리하고 봉사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재정을 맡고 봉사하는 자리가 때로는 은혜가 충만해야 할 중요한 자리가 되지만, 동시에 사탄의 유혹과 시험이 들어오기 쉬운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이 돈이 때로는 세속적인 이익이나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은 교회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6:10)고 거듭 경계하고, 초대교회가 “모든 재산을 서로 통용하며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행2:45, 4:34)고 기록함으로써, 물질에 얽매여 부패하지 않도록 초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유다는 물질적 욕심과 정치적 계산이라는 틈을 통해 사탄에 의해 쓰임받아, 결국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배신자가 되었다. 그는 배신 직후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제대로 된 회개에 이르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제자 중 하나를 잃었다’는 뼈아픈 상처를 교회에 남겼다. 열두 제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영적 기둥이었고, 주님이 친히 세우신 “새로운 언약 공동체의 문”과 같았다. 그 한쪽 문이 무너졌으니, 이 문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시급했을 것이다.

이에 사도행전 1장에서는 그 공석을 채우기 위한 회의가 열린다. 여기서 초대교회는 새롭게 사도의 자리를 메울 인물을 뽑는데, 그것이 바로 맛디아다. 그 과정을 눈여겨보면, 교회의 위기 대처 방식이 어떠했는지 배울 수 있다. 사도행전 1장 21~22절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제안한다. “이 일, 곧 우리와 함께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증인이 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주님이 승천하시는 그 날까지 우리와 늘 함께하던 사람 중 하나를 세우자.” 그 결과, 두 사람이 후보에 올랐고, 초대교회는 그 자리에서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선택했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주목할 몇 가지 포인트를 제시한다. 첫째, 초대교회가 “부활의 증인”을 최우선 자격 요건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기 위함이므로, 사도의 핵심 사명 역시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다. 맛디아를 비롯해 후보가 되었던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의 공생애와 고난, 죽음, 부활까지 전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로, 사실상 열두 사도와 함께 늘 다니며 배웠던 이들이었다. 둘째, 선택 과정에서 보이는 공동체적 합의와 기도, 그리고 제비뽑기가 인상적이다. “모든 사람의 의견과 교회의 합의가 중요했고, 마지막 단계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에 운명을 맡기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교회가 단지 인간적 계산이나 정치적 타협으로 리더를 뽑지 않음을 시사한다. 셋째, 이렇게 뽑힌 맛디아가 이후 교회에서 어떠한 능력을 나타냈는지에 대한 기록 자체는 성경에 길게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열두 제자가 온전히 회복되어 다시 오순절 성령 강림을 맞이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선택의 과정이 중요할까? 교회가 성령이 임하기 직전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지도자 팀(사도단)을 회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유다가 만들어낸 공백과 배신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교회가 온전히 하나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우리 중 하나가 주님을 배반했다”는 배신감이 남아 있었고, 그 가운데 제자들은 서로를 향한 신뢰 회복이 시급했다. 또한 각자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모여 함께 기도하면서, “이제는 다시는 그런 배신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단단한 결속을 다져야 했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 안에 생겨난 상처, 지도자의 배신이란 것이 얼마나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 유다의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라고 지적한다. 그렇기에 초대교회는 가룟 유다의 사건을 단순히 잊어버리거나 덮어두지 않고, 아예 교회 첫 발을 내딛는 시점에 투명하게 정리하고 넘어갔다. 유다가 남긴 핏값의 돈은 성전에 던져졌고, 그것으로 ‘피밭’을 샀다는 사실(마27:5-8)이 공공연히 드러났다. 교회는 이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지 않고, 되레 예언(예레미야나 시편)에 입각하여 “이 일이 예언이 성취되는 과정의 일부”라고까지 받아들이며, 공동체 전체가 한 목소리로 기도하고 새 인물을 임명했다.

그리하여 맛디아가 사도의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 교회는 다시 열두 사도의 틀을 회복하고, 그 안에서 더욱 공고해진 영적 유대감 속에 오순절 성령 강림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성령의 힘을 입은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기점으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까지 복음을 확장해 나가게 된다. 만일 유다의 배신과 죽음으로 인해 생긴 내분과 상처를 방치했다면, 교회가 출범하기 전부터 붕괴될 위험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상처를 드러내어 해결하고, 회복의 과정을 공적으로 선포함으로써, 교회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또 다른 관점에서 유다의 실수와 죽음은, 초대교회에 ‘결코 그 누구도 이 길에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라는 경각심을 심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을 직접 3년간 따라다니고, 기적과 말씀을 접하며, 심지어 돈궤를 맡겨질 정도로 신뢰받던 인물조차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은, 교회 구성원 누구든지 시험에 드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 대해 “현대 교회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 보여도, 끊임없이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살피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사단은 언제든지 우리를 미끼로 삼을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교회사는 배신과 타락의 역사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인물(맛디아 같은)을 세워 교회의 빈 자리를 메우고, 역사를 이어 가셨음을 우리는 본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가 맛디아의 선택 사건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첫째, 교회가 공동체적 합의와 기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도자 자리를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능력·명성·정치력을 보고 지도자를 세워서는 안 되며, “부활신앙을 확실히 붙들고 있는가?” “주님과 함께해 온 시간이 있는가?” “주님의 고난·죽음·부활을 옆에서 목격하고, 자기 삶으로 간증할 수 있는가?”라는 핵심 신앙 고백이 훨씬 중요하다. 둘째, 지도자의 배신 또는 교회 안의 큰 상처가 생길 때마다, 그것을 단지 ‘개인의 비극’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아파하며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기도와 말씀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다가 무너진 뒤, 초대교회가 그를 강렬히 비난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고, 주님의 말씀과 예언을 찾아 연구하며, 거기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간 자세는 배울 점이 많다. 셋째, 이 모든 회복 과정은 궁극적으로 ‘성령 강림’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교회가 왜 굳이 이 사건을 성령 임재 이전에 다뤘겠는가? 바로 오순절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온전한 상태로 자신들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불의와 혼란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의 큰 역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성령의 역사, 부흥, 성장 등을 말하기 전에, 먼저 내부의 죄와 불의를 다루는 과정을 진지하게 거쳐야 하며, 지도자들의 무너짐이 있다면 그것을 은폐하지 말고 진정으로 치유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다에게서 벗어나 맛디아를 세운 것이 “하나의 상징”이라면, 곧 ‘교회는 그 어떤 큰 상처를 당해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반드시 회복의 길을 찾는다’는 메시지를 준다. 물론, 유다는 원천적으로 ‘버려진 자’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선택해 그 길로 나아갔다가 영원한 비극을 맞이한 것이다. 교회가 누구를 불문하고 회복과 구원의 길로 초청하지만, 개인이 끝까지 거부하면 비극은 일어난다. 교회는 그런 비극을 무조건 덮는 대신, 회개와 갱신의 동력을 찾아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활신앙”이 핵심 저력으로 작용한다.

부활신앙은 “죽음을 끝장내고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유다는 예수님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었고, 그 뒤에 찾아온 죄책감에 무너져 갔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셨다. 가룟 유다의 배신이 교회에 남긴 충격과 공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소망에 의해 극복될 수 있었다. 맛디아가 그 빈자리를 메꾸었을 때, 열두 제자는 다시 하나가 되어 성령을 기다렸고, 곧 교회에 불처럼 임한 성령으로 인해 예루살렘에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1장에서 4장까지 읽어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수비대를 비롯한 종교 권력 앞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예수 이름 외에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이 없다”(행4:12)고 선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의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던 베드로”가 더 이상 아니다. 그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회복된 자, 성령 받은 자, 그리고 맛디아와 함께한 “온전한 사도단”의 대표가 되어 버젓이 복음을 외친다. 여기에는 “무너져버린 지도자 한 사람의 자리마저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셨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장재형 목사는 “유다를 잃고 맛디아를 얻은 교회가 ‘피투성이가 된 상처’를 치유받은 것처럼, 교회도 끊임없이 옛 상처와 고통을 치유받으며 새 술 부대를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초대교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교회도 각종 분쟁·부패·배신 같은 사건을 겪을 때가 많으며, 그때마다 어떻게 ‘새로운 맛디아’를 세워서 공동체를 정돈하고 성령의 역사를 받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성령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공동체”이며, 동시에 “배신과 회개, 죽음과 부활, 좌절과 회복”이라는 수많은 교차점을 통과해가며 성장한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죽음을 재촉했고, 맛디아는 그 빈자리를 메우며 복음의 문을 확장했다. 베드로는 부인하고 도망갔으나, 다시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요한복음 21장에서 그의 사랑을 회복시키셨고, 사도행전에서 가장 먼저 설교를 펼치는 지도자로 세우셨다. 이렇게 사도들의 재정비가 끝나고, 초대교회는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공간에서 성령이 임하는 장관을 경험한다. 그 성령이 임한 순간부터 교회는 더 이상 숨어 있지 않고 거리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고, 이내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혔다.

오늘날도 교회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장재형 목사는 “당연히 가능하다. 다만, 그 조건은 오늘날 교회가 부활신앙의 실제적 파워를 믿고, 내부의 문제(배신·부패·불신)를 회개와 기도로 해결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구하는 데 달렸다”고 주장한다. 마가의 다락방과 맛디아의 선택은, 교회가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실제 삶에서 체험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공동체 안의 갈등과 상처를 극복하여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부활신앙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의 핵심은 “이 땅의 죽음, 절망, 실패가 결코 마지막이 아니다”라는 믿음이다. 가룟 유다라는 절망적 사례가 있어도, 교회는 맛디아를 통해 복음 전파의 긴 역사를 이어 간다. 우리가 때로는 베드로처럼 주님을 부인하고 죄책감 속에 살지라도, 요한복음 21장처럼 주님이 친히 우리를 다시 찾아오시고 회복시킨다. 그 은혜가 우리를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으로 이끌어, 무기력한 상태가 아니라 담대한 성령의 능력을 입어 세상 한복판으로 나가도록 만든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초대교회는 결국 사도행전 28장 마지막 절에서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라는 당당한 선포로 마무리한다. 복음 전파를 막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베드로는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거꾸로 십자가에 달리는 순교로 사명을 마무리했으나, 그의 뒤를 잇는 수많은 제자들이 또다시 교회의 빈 자리를 채워나갔다. 이처럼 교회는 주기적으로 흔들리고 넘어질지라도, 부활신앙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새롭게 일어선다.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 무너져도, 하나님께서는 사도직을 회복하고, 땅끝까지 이어지게 하는 방법을 갖고 계신다.

맛디아의 선택은 바로 이 ‘회복’과 ‘전진’의 두 가지 정신을 모두 아우른다. 교회가 내부의 상처를 치유하고, 부활신앙에 기초하여 더 큰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고, 교회 지도자들마다 사역 현장에서 다양한 갈등과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초대교회는 어떻게 이 난관을 돌파했나?”를 돌아보면, 결국 그 답은 “부활신앙의 견고한 고백과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는 기도, 그리고 투명한 공동체적 절차”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정리하며 말한다. “부활은 능력이다. 그 능력은 우리 마음 안에 역사할 때,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 아무리 큰 배신자가 있어도, 그 배신을 넘어 교회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회복과 새 출발의 길을 찾게 된다. 유다의 실패가 교회 역사의 종말을 뜻하지 않았듯이,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는 어떠한 큰 상처도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소멸시키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과 맛디아의 선택”이 하나로 연결되는 결정적 이유다. 마가의 다락방은 숨죽이고 숨어 있던 제자들이 성령 강림을 경험한 뒤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 발화점이라면, 맛디아의 선택은 사도 중 한 사람의 배신과 죽음을 넘어서 교회가 다시 ‘온전한 공동체’로 거듭나는 장면이다. 두 이야기는 “교회 안의 배신·부인·두려움이, 주님의 부활과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어떻게 회복과 능력의 역사로 바뀌는가”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슬픔과 회환이 섞여 있지만, 더욱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가 깃들어 있다. 그 결과,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을 넘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길로 분연히 일어설 수 있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지역 교회나 공동체가 마치 마가의 다락방처럼 ‘현대적 의미의 다락방’을 회복해 부활신앙으로 충만해진다면, 그리고 가룟 유다가 남기고 간 상처를 맛디아의 선출처럼 투명하고 말씀에 충실한 방식으로 치유한다면, 성령의 새 역사를 기대할 수 있다. 오순절 사건이 2000년 전 어느 한 장소에서만 일어난 ‘역사적 일회성’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지역의 교회가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운동인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장재형목사가 줄곧 강조해온 “부활신앙의 실천성”과 맞닿아 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지적(知的)으로만 받아들이고 말면, 그것은 단순한 교리에 그친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 부활을 실제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배신이나 고난, 죽음이나 절망도 더 이상 끝이 아님을 시연해 보였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자신들을 죽이려 했던 세력들에게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모습은, 부활이 얼마나 실재적이고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어, 가룟 유다의 배신을 맛디아의 선출로 회복하고, 성령 강림을 통해 전 세계로 나아간 공동체”라고 답할 수 있다. 그 정체성은 역사의 시공간을 넘어 오늘도 유효하며, 교회가 부활신앙을 지키는 이상 결코 문이 닫히지 않는다. 때로 교회 내부에 치명적인 균열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인물을 세워 그 자리를 회복시키시고, 또다시 성령을 부어주신다. 이것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로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복음의 연속성이자, 현대 교회가 이어받아야 할 믿음의 유산이다.

장재형 목사의 결론적인 권면도 여기에 맞닿는다. “우리는 현재적 다락방을 회복해야 하며, 배신과 실패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덮는 대신 진실하게 회개하고 투명하게 해결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출발의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그 중심에는 ‘부활의 주님’이 계시고, 그분이 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선교적 사명이 놓여 있다.” 교회가 이 길에 순종할 때, 사도행전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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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osición de Efesios 4 : una comunidad de fe madura forjada por el amor y la verdad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El escritor ruso Aleksandr Solzhenitsyn dijo: “Una sola palabra de verdad pesa más que el mundo entero”. Así como su frase atravesó la oscuridad de su tiempo y despertó la dignidad de la existencia humana, también en el mundo de la fe la verdad es la estructura más firme que sostiene a la comunidad. Sin embargo, si sobre esa estructura no se reviste la carne llamada “amor”, la verdad puede convertirse en una hoja fría que hiere a los demás. A través de su exposición de Efesios 4, el pastor David Jang nos invita a una profunda reflexión sobre cómo la verdad y el amor se hacen un solo cuerpo y llevan a la iglesia a la madurez.

La sinfonía de unidad que surge de la diversidad de dones

A menudo malinterpretamos que solo los talentos sobresalientes o los cargos visibles son los que guían la obra de Dios. Pero el pastor David Jang define a la iglesia como “el cuerpo de Cristo”, y desde ese punto corrige de raíz nuestra manera de entender los dones. Así como cada órgano del cuerpo cumple una función propia en su lugar, todos los dones dentro de la iglesia no representan una diferencia de superioridad o inferioridad, sino únicamente una diferencia de función.

Cuando el lugar que recibe aplausos y el lugar que sirve sin nombre no se excluyen mutuamente, sino que se conectan, la comunidad finalmente adquiere una vitalidad sana. Cuando se establece una cultura de cooperación en lugar de competencia, la adoración y la administración, la misión y el cuidado pastoral fluyen como una sola y hermosa melodía. El pastor David Jang sitúa la esencia del liderazgo no en “quién es más alto”, sino en “ayudar a que cada miembro sirva con gozo según el don que ha recibido”.

El camino hacia una madurez personal donde el conocimiento y la vida coinciden

La madurez no significa simplemente acumular más información. En la tradición hebrea, la expresión “conocer” (yada) alude a una comunión personal profunda y a una participación vivencial con el objeto conocido. El pastor David Jang advierte contra el peligro de que el conocimiento de Cristo quede disecado como un simple dato en la mente. La verdadera reflexión teológica solo se completa cuando la verdad de la Escritura se traduce en formas concretas de vida en la cotidianidad del creyente.

La fe sin conocimiento fácilmente se reduce a un entusiasmo ciego, mientras que el conocimiento sin fe solo produce discusiones vacías. La iglesia debe alzar el vuelo con dos alas: una, firme, que es el sistema doctrinal; y otra, ardiente, que es la experiencia de la presencia del Espíritu Santo. Cuando se produce este santo círculo virtuoso de vivir conforme a lo aprendido y aprender conforme a lo vivido, una fe que antes era como la de un niño crece hasta alcanzar una madurez que no se deja sacudir por modas pasajeras ni por enseñanzas distorsionadas.

El valor de decir la verdad en amor

El secreto más profundo de la unidad es, al final, el amor. La verdad sin amor tiende a convertirse en arrogancia, y el amor sin verdad corre el riesgo de degenerar en una transigencia cobarde. La exhortación de Efesios 4 —“hablando la verdad en amor, crezcamos en todo en aquel que es la cabeza”— es una señal eterna para nuestra fe. El pastor David Jang explica que el amor no es un simple juego emocional, sino una decisión voluntaria y un hábito: cubrir las faltas del otro y compartir de buena gana la responsabilidad.

En los momentos de conflicto, pensar primero en el bien de la comunidad en vez de imponer la propia opinión, y ser capaces de expresar incluso una verdad dolorosa con el lenguaje del amor, constituye la señal más clara de la madurez. Así como los huesos secos del valle de Ezequiel se unieron por el viento del Espíritu y por los lazos del amor hasta formar un gran ejército, también nosotros debemos edificar el cuerpo de Cristo llenando con amor las carencias de los unos y los otros.

La esperanza del mañana que nace de las pequeñas obediencias cotidianas

Hoy en día, a la iglesia se le exige una responsabilidad pública hacia el mundo más allá de sus muros. Una fe madura debe demostrarse en una vida concreta que se solidariza con el dolor de la comunidad local y practica la justicia y la misericordia.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que esta práctica no comienza con grandes consignas, sino con “pequeños pasos”: restaurar el culto familiar, animar a los compañeros y bendecir a los vecinos.

Incluso en una época en la que lo digital forma parte de la vida diaria, lo esencial no ha cambiado: la comunión profunda dentro de una comunidad que se encuentra cara a cara. Debemos expandir el evangelio aprovechando la comodidad de lo digital, sin perder el equilibrio que preserva la espiritualidad del encuentro real, donde partimos el pan juntos y oramos unidos. El camino que propone el pastor David Jang no es un ideal inalcanzable. En la ayuda del Espíritu Santo, una sola palabra amable o una decisión honesta elegida hoy puede unirse a muchas otras y transformar el mañana de la iglesia.

¿Hasta dónde hemos crecido ahora como cuerpo de Cristo? Debemos preguntarnos en silencio si acaso hemos herido a alguien en nombre de la verdad, o si, con la excusa del amor, hemos soltado una verdad que debíamos sostener. Anhelo que sobre este camino estrecho pero glorioso, en el que nos edificamos unos a otros diciendo la verdad en amor, repose la respuesta sincera de todos nosot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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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osition d’Éphésiens 4 – Pasteu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L’écrivain russe de l’ex-Union soviétique Alexandre Soljenitsyne a dit : « Une seule parole de vérité pèse plus lourd que le monde entier. » De même que cette phrase a percé les ténèbres de son époque pour réveiller la dignité de l’existence humaine, dans l’univers de la foi aussi, la vérité constitue l’ossature la plus solide qui soutient la communauté. Mais si cette ossature n’est pas revêtue de la chair qu’est l’« amour », la vérité peut devenir une lame froide qui blesse les uns et les autres. À travers son exposition d’Éphésiens 4, le pasteur David Jang nous invite à une profonde réflexion sur la manière dont la vérité et l’amour s’unissent pour conduire l’Église à la maturité.

La symphonie de l’unité façonnée par la diversité des dons

Nous nous trompons souvent en pensant que seuls les talents remarquables ou les fonctions visibles conduisent l’œuvre de Dieu. Pourtant, le pasteur David Jang définit l’Église comme le « corps du Christ » et, à partir de là, corrige en profondeur notre manière de considérer les dons. De même que chaque organe du corps remplit une fonction propre selon sa place, tous les dons dans l’Église ne se distinguent pas par une hiérarchie de valeur, mais simplement par une différence de rôle.

Lorsque la place qui reçoit les applaudissements et celle qui sert sans être nommée ne se repoussent pas mais se relient l’une à l’autre, la communauté acquiert enfin une vitalité saine. Quand une culture de coopération remplace la compétition, le culte et l’administration, la mission et l’accompagnement des autres se fondent en une seule et belle mélodie. Pour le pasteur David Jang, l’essence du leadership ne réside pas dans la question de savoir « qui est le plus élevé », mais dans le fait « d’aider chaque membre à servir avec joie selon le don qu’il a reçu ».

Le chemin d’une maturité personnelle où la connaissance et la vie ne font qu’un

La maturité ne signifie pas simplement accumuler davantage d’informations. Dans la tradition hébraïque, le verbe « connaître » (yada) renvoie à une communion personnelle profonde et à une participation vécue avec l’objet de cette connaissance. Le pasteur David Jang met en garde contre le risque de figer la connaissance du Christ en simples données stockées dans l’esprit. En effet, une véritable réflexion théologique ne s’accomplit pleinement que lorsque la vérité des Écritures se traduit concrètement, dans le quotidien du croyant, en un art de vivre.

Une foi sans connaissance risque de se réduire à un enthousiasme aveugle, tandis qu’une connaissance sans foi ne produit que des débats vides. L’Église doit s’élever avec les deux ailes à la fois : l’aile solide du système doctrinal et l’aile ardente de l’expérience de la présence du Saint-Esprit. Lorsque s’installe ce saint cercle vertueux consistant à vivre ce que l’on a appris et à apprendre à partir de ce que l’on vit, une foi encore enfantine grandit jusqu’à une pleine maturité, capable de ne pas vaciller face aux modes passagères et aux enseignements déformés.

Le courage de dire la vérité dans l’amour

Le secret le plus profond de l’unité est, en fin de compte, l’amour. Une vérité sans amour devient facilement de l’arrogance, tandis qu’un amour sans vérité risque de dériver vers un compromis lâche. L’exhortation d’Éphésiens 4 — « en disant la vérité dans l’amour, croissons à tous égards en celui qui est le Christ » — demeure un repère éternel pour notre foi. Le pasteur David Jang explique que l’amour n’est pas un simple jeu émotionnel, mais une décision volontaire et une habitude consistant à couvrir les fautes de l’autre et à partager volontiers la responsabilité.

Dans les moments de conflit, le signe le plus clair de la maturité est précisément cette attitude qui, au lieu d’imposer sa propre opinion, cherche d’abord le bien de la communauté et sait exprimer même une vérité douloureuse avec le langage de l’amour. De même que les ossements desséchés de la vallée d’Ézéchiel furent reliés par le souffle de l’Esprit et les liens de l’amour pour former une grande armée, nous aussi, nous devons édifier le corps du Christ en comblant mutuellement nos insuffisances par l’amour.

L’espérance de demain façonnée par les petites obéissances du quotidien

Aujourd’hui, l’Église est appelée à assumer une responsabilité publique envers le monde au-delà de ses murs. Une foi mûre doit se prouver par une vie concrète qui compatit à la souffrance de la société locale et met en pratique la justice et la miséricorde.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que cette mise en pratique ne commence pas par de grands slogans, mais par de « petits pas » : restaurer le culte familial, encourager un collègue, bénir son voisin.

Même à l’ère du numérique devenu ordinaire, l’essentiel ne change pas : une communion profonde au sein d’une communauté qui se rencontre réellement. Il est nécessaire de garder l’équilibre entre l’extension de l’Évangile grâce à la commodité du numérique et la préservation de la spiritualité du terrain, là où l’on rompt le pain et où l’on prie ensemble. La voie proposée par le pasteur David Jang n’est nullement un idéal inaccessible. Avec l’aide du Saint-Esprit, une parole empreinte de douceur choisie aujourd’hui, une décision honnête prise aujourd’hui, peuvent ensemble transformer le lendemain de l’Église.

Jusqu’où avons-nous grandi aujourd’hui en tant que corps du Christ ? Ne devrions-nous pas nous demander en silence si, au nom de la vérité, nous n’avons pas blessé quelqu’un, ou si, sous prétexte d’amour, nous n’avons pas laissé échapper une vérité qu’il fallait pourtant tenir fermement ? Sur ce chemin étroit mais glorieux où l’on dit la vérité dans l’amour et où l’on s’édifie mutuellement, j’espère que pourra demeurer la réponse sincère de chacun de n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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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osition of Ephesians 4: A Mature Faith Community Shaped by Love and Truth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Aleksandr Solzhenitsyn, the great writer of the former Soviet Union, once said, “A single line of truth outweighs the whole world.” Just as his words pierced through the darkness of his age and awakened people to the dignity of human existence, truth in the world of faith is also the strongest framework that sustains a community. Yet if that framework is not clothed with the flesh of “love,” truth can easily become a cold blade that wounds one another. Through his exposition of Ephesians 4, Pastor David Jang invites us into deep reflection on how truth and love become one body and bring the church to maturity.

The Symphony of Unity Woven Through the Diversity of Gifts
We often misunderstand, thinking that only exceptional talents or highly visible offices are what carry out the work of God. Pastor David Jang, however, defines the church as “the body of Christ,” and at this very point he fundamentally corrects the way we view spiritual gifts. Just as each part of the body performs its own unique function in its proper place, every gift within the church is not a matter of superiority or inferiority, but simply a difference in role.

When places that receive applause and places of nameless service do not push each other away but remain connected, the community finally gains healthy vitality. When a culture of cooperation rather than competition takes root, worship and administration, missions and care, all flow together as one beautiful melody. Pastor David Jang sees the essence of leadership not as “who is higher,” but as “helping every member joyfully serve according to the gift they have received.”

The Journey of Personal Maturity Where Knowledge and Life Become One
Maturity does not simply mean possessing more information. In the Hebrew tradition, the word “to know” (yada) signifies deep personal communion and experiential participation with the one who is known. Pastor David Jang warns against reducing the knowledge of Christ to frozen data stored in the mind. True theological insight is only completed when the truth of Scripture is translated into a concrete way of life in the daily walk of believers.

Faith without knowledge can easily become blind enthusiasm, while knowledge without faith produces only hollow arguments. The church must rise on two strong wings together: the solid wing of doctrinal structure and the burning wing of experiencing the presence of the Holy Spirit. When this holy virtuous cycle takes place—living as we have learned and learning as we have lived—faith that was once childlike grows into mature fullness that does not waver before passing trends or distorted teachings.

The Courage to Speak What Is True in Love
The deepest secret of unity is, in the end, love. Truth without love easily turns into dogmatism, while love without truth runs the risk of becoming cowardly compromise. The exhortation of Ephesians 4, “speaking the truth in love, we are to grow up in every way into him,” remains an eternal signpost for our faith. Pastor David Jang explains love not as mere emotional sentiment, but as a willing decision and a cultivated habit to cover another’s shortcomings and gladly share responsibility.

In moments of conflict, the clearest mark of maturity is the attitude that thinks first of the good of the community rather than insisting only on one’s own position, and that can express even painful truths in the language of love. Just as the dry bones in Ezekiel’s valley were joined together by the wind of the Spirit and the cords of love to become a vast army, we too must fill up one another’s deficiencies with love as we build up the body of Christ.

The Hope of Tomorrow Formed by Small Acts of Obedience Today
Today, the church is being called to take public responsibility for the world beyond its walls. Mature faith must be proven through a concrete life that empathizes with the pain of the local community and practices justice and mercy. Pastor David Jang emphasizes that such practice does not begin with grand slogans, but with “small steps” such as restoring family worship, encouraging colleagues, and blessing neighbors.

Even in an age when digital life has become ordinary, the unchanging core remains deep fellowship within a face-to-face community. While the convenience of online platforms can expand the reach of the gospel, we still need the balance of not losing the spirituality of gathering in person to break bread and pray together. The path presented by Pastor David Jang is by no means an unattainable ideal. With the help of the Holy Spirit, one gentle word we choose today and one honest decision we make can come together to transform the church’s tomorrow.

How far have we grown now as the body of Christ? We must quietly ask ourselves whether we may have wounded someone in the name of truth, or whether, under the excuse of love, we may have let go of the truth we ought to have held firmly. On this narrow yet glorious path of speaking the truth in love and building one another up, may the sincere response of each one of us re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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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장 강해: 사랑과 진리가 빚어내는 성숙한 신앙 공동체 – 장재형 목사 (Olivet University)

구소련의 문호 솔제니친은 “한 줄기 진리가 전 세계보다 무겁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문장이 시대의 어둠을 뚫고 인간 존재의 존엄을 일깨웠듯, 신앙의 세계에서도 진리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뼈대입니다. 하지만 그 뼈대 위에 ‘사랑’이라는 살이 입혀지지 않는다면, 진리는 자칫 차가운 칼날이 되어 서로를 상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장재형 목사는 에베소서 4장의 강해를 통해, 진리와 사랑이 어떻게 한 몸을 이루어 교회를 성숙하게 하는지에 대한 깊은 사유를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은사의 다양성이 빚어내는 연합의 교향곡

우리는 흔히 뛰어난 재능이나 눈에 띄는 직분만이 하나님의 일을 이끈다고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정의하며, 이 지점에서 은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근본적으로 교정합니다. 몸의 각 기관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듯, 교회 내의 모든 은사는 우열이 아닌 ‘역할’의 차이일 뿐입니다.

박수를 받는 자리와 이름 없이 섬기는 자리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연결될 때, 공동체는 비로소 건강한 생명력을 얻습니다. 경쟁이 아닌 협력의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예배와 행정, 선교와 돌봄은 하나의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흐릅니다. 장재형 목사는 리더십의 본질을 ‘누가 더 높은가’가 아니라 ‘모든 지체가 자신의 은사를 따라 기쁘게 섬기도록 돕는 것’에 둡니다.

앎과 삶이 일치되는 인격적 성숙의 여정

성숙이란 단순히 정보가 많아지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적 전통에서 ‘안다(야다)’는 표현은 대상과의 깊은 인격적 교제와 체험적 참여를 뜻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머릿속 데이터로 박제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참된 신학적 통찰은 성경 속의 진리가 성도의 일상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양식으로 번역될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지식 없는 믿음은 맹목적인 열광에 그치기 쉽고, 믿음 없는 지식은 공허한 논쟁만을 낳습니다. 교회는 교리적 체계라는 든든한 날개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뜨거운 날개로 함께 날아올라야 합니다. 배운 대로 살고, 산 대로 배우는 이 거룩한 선순환이 일어날 때, 어린아이와 같던 신앙은 거센 유행과 왜곡된 가르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용기

연합의 가장 깊은 비밀은 결국 사랑입니다. 사랑 없는 진리는 독선이 되기 쉽고, 진리 없는 사랑은 비겁한 타협으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이 권면하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는 말씀은 우리 신앙의 영원한 이정표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사랑을 단순한 감정적 유희가 아니라, 상대의 허물을 덮고 책임을 기꺼이 나누는 의지적 결단이자 습관으로 설명합니다.

갈등의 순간에 자기 주장만을 관철하기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며, 아픈 진실조차 사랑의 언어로 담아낼 수 있는 태도야말로 성숙의 가장 분명한 표지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성령의 바람과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큰 군대를 이루었듯, 우리 역시 서로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메우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야 합니다.

일상의 작은 순종이 만드는 내일의 희망

오늘날 교회는 담장 너머 세상을 향한 공적 책임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지역 사회의 아픔에 공감하고,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삶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실천이 거창한 구호가 아닌, 가정예배를 회복하고 동료를 격려하며 이웃을 축복하는 ‘작은 걸음’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합니다.

디지털이 일상이 된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핵심은 대면하는 공동체 속에서의 깊은 교제입니다. 온라인의 편리함으로 복음을 확장하되, 함께 떡을 떼며 기도하는 현장의 영성을 놓치지 않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장재형 목사가 제시하는 이 길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우리가 오늘 선택하는 온유한 말 한마디, 정직한 결정 하나가 모여 교회의 내일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어디까지 자라나 있습니까? 혹시 진리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혹은 사랑이라는 핑계로 마땅히 붙들어야 할 진리를 놓치지는 않았는지 조용히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서로를 세워가는 이 좁고도 영광스러운 길 위에, 우리 모두의 진심 어린 응답이 머물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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渗入冰封世界裂缝的圣洁生态 – 张大卫牧師 (Olivet University)

张大卫牧師

在俄国文学巨匠列夫·托尔斯泰的经典名作《人靠什么活着》中,出现了一位贫穷却心地温暖的鞋匠西蒙。他仅有的一件旧羊皮外套,是要与妻子一同熬过严冬的全部依靠;而就在某个寒冷的夜晚,他想给这件外套添些毛皮,却因钱不够而空手而返。然而,在风雪交加的路边,他实在无法对一个赤身露体、几乎冻僵的陌生青年视若无睹。短暂犹豫之后,他终于脱下自己那件破旧的外套,披在陌生人弯曲的肩头上,又把他带回家中,甘心把最后剩下的热面包和热茶与之分享。后来,人们才知道,那青年原来是因受罚而被赶到地上的天使米迦勒。天使留下了一句伟大的真理后便升天而去:“人活着,不是靠自我保全的自私之心,而是靠着愿意填补他人缺乏的爱。”这崇高的文学见证,向我们展示了:逆着人彻底自私的本性,甘愿分享自己生命的利他之爱,是如何温暖地支撑着这个世界的。然而,圣经却宣告,这样的分享绝不能仅凭人一时的善意或所谓善良本性来完成;它邀请我们归向那永不枯竭的恩典源头。

使紧握的手张开的十字架悖论与丰盛。在《哥林多后书》第9章中,使徒保罗为了帮助贫困的耶路撒冷教会,而向外邦诸教会所请求的“捐献(奉献)”,并不是简单的慈善募捐,也不是一次性的救济活动。那是一场神圣而革命性的属灵事件,显明福音如何彻底重塑一个人僵硬的灵魂和自私的钱囊。张大卫牧师借着对这段经文深刻的神学洞见,清楚强调:捐献一方面是填补他人物质缺乏的经济行为,另一方面也是那看不见的天上恩典凝结为可见物质形态的通道。正如我们常常误解的那样,真正的丰盛并不来自账户余额上的数字,也不来自仓库中堆积的粮食。凡在十字架上已经经历了无尽恩典的圣徒,就会开始不再用吝啬计算的尺度,而是用满溢感恩的眼光重新评估自己的所有。不是出于被迫挤出来的伦理义务,也不是出于怜悯式的施舍,而是那在灵魂深处如瀑布般涌流的生命,自然而然地使原本紧握不放的手张开。这就是福音真正的能力,也是使徒保罗所说恩典的实体。

逆行于“各自求生”时代的圣洁属灵生态系统。保罗把奉献比作“撒种的农夫之工”。种子不是安稳地存放在安全的仓库中时才有价值,而是惟有甘愿被投入那会朽坏的黑暗土壤里时,才会结出三十倍、六十倍充满生命力的果实。若我们安静进入深层的圣经默想,就会领悟到,保罗所呼吁的这种分享,绝不是一种“奉献得越多,就会回报得越多”的世俗而功利的投资逻辑。张大卫牧师的讲道,将这种奉献的波动深刻阐释为“神国属灵生态系统的原则”。初代教会的周济,是对那个被强权逻辑所支配的帝国式“各自求生”秩序的正面挑战,是极其激进的“均等”实践。一个肢体若饥饿,其他肢体也甘愿把那痛苦看作自己的;一个肢体若丰盛,那丰盛就如血脉一般自然流向他人。这正是作为基督身体那有机而连结的呼吸。不是把贫穷放任为个人无法改变的宿命,也不是把穷人仅仅当作值得同情的对象,而是把他们置于信仰共同体的中心,一同承担那份重担——这才是教会真正的面貌,也是它与世上一切群体彻底不同之处。

超越奉献箱,渗入他人伤口之中的具体之爱。圣经所说的分享与捐献,绝不能被还原为冰冷的经济数字或会计账簿上的记录。归根结底,它乃是温暖地恢复人失落的尊严,并重新连接那些曾经断裂关系的爱之桥梁。保罗说,借着捐献而得到物质帮助之人,从口中爆发出来的真实“感谢”,又会化为恳切的祷告,不再区分受助者与支持者,而是把整个共同体在属灵上紧紧连结起来。张大卫牧师指出,这种感谢、爱与祷告彼此循环的有机结构,正是使教会不断成熟的属灵心跳。若现代教会只是以“为未来做准备”这种世俗名义不断大量积累财务,却对眼前流血呻吟的邻舍视而不见,那它不过是一个失去生命力的宗教团体。今日教会所需要恢复的,不是华丽的建筑,也不是精巧的项目,而是那位好撒马利亚人神圣的勇气——甘愿把遭遇强盗之人的痛苦纳入自己忙碌的日程之中。

归根结底,张大卫牧师所传讲的《哥林多后书》第9章的宏大信息,是迫切邀请今日的圣徒不要过“积攒更多”的人生,而要活出“流淌得更深、更广”的人生。圣徒真正的服事,绝不会止于主日礼拜堂华丽灯光下的奉献箱前。它应当像西蒙脱下自己那件旧外套,披在冻僵邻舍肩头上的那双朴素之手一样,成为发生在最日常、最具体生活现场中的伟大信仰告白。今天,你的丰盛正积聚在哪一片洼地里?还是说,它正如活水一般,流向某个正在干涸的邻舍灵魂?在张大卫牧师这沉重而刺骨的问题面前,我们不得不彻底悔改那种以廉价恩典为借口、为自私辩护的可耻样貌。愿这篇充满生命力的讲道回响,能大大敞开我们每一个人紧紧关闭的钱囊与内心,使温暖的基督之爱毫无阻碍地流向这冰封世界的中央,成为那圣洁而有生命力的引水之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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凍てついた世界の裂け目にしみ込む聖なる生態系 – 張ダビデ 牧師 (Olivet University)

ロシアの文豪レフ・トルストイの古典的名作『人は何によって生きるか』には、貧しいながらも温かな心を持つ靴職人シモンが登場します。彼には、厳しい冬を妻とともに越すための、たった一着の古びた羊皮の外套しかありませんでした。その外套に毛皮を継ぎ足そうとしたものの金が足りず、手ぶらで引き返していた、ある寒い夜のことでした。けれども彼は、吹雪の道端で裸のまま凍え死にかけている見知らぬ青年を、どうしても見過ごすことができません。しばらくためらった末、彼はついに自分の古い外套を脱いでその青年のうなだれた肩を覆い、家へ連れ帰って、最後に残っていた温かなパンと茶を喜んで分け与えます。のちに、その青年が罰を受けて地上へ追放された天使ミカエルであったことが明かされ、天使は「人は、自分のことだけを顧みる利己的な心によってではなく、他者の欠乏を満たそうとする愛によって生きる」という偉大な真理を残して昇天します。この崇高な文学的証言は、徹底した利己的本性に逆らい、進んで自らの生活を分かち合う利他性が、どれほど世界を温かく支えているかを示しています。しかし聖書は、このような分かち合いが単なる人間の一時的な善意や善良さだけでは決して完成し得ないと宣言し、永遠に枯れることのない恵みの源へと私たちを招きます。

握りしめた手を開かせる十字架の逆説と豊かさ。コリント人への手紙二 9章で、使徒パウロが窮乏するエルサレム教会のために異邦人教会へ求めた「献金」は、単なる慈善募金や一回限りの救援活動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それは、福音が一人の硬くなった魂と利己的な財布をいかに根本から組み替えるのかを示す、聖なる、しかも革命的な霊的出来事です。張ダビデ牧師は、この本文に対する深い神学的洞察を通して、献金が誰かの物質的欠乏を満たす経済行為であると同時に、見えない天の恵みが目に見える物質的形として結晶する通路であることを明確に強調します。私たちがしばしば誤解するように、真の豊かさは預金残高の数字や倉に積まれた穀物の量から生ま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十字架においてすでに尽きることのない恵みを経験した聖徒は、もはやけちな計算の物差しではなく、あふれる感謝の眼差しで自らの持ち物を見直し始めます。無理に搾り出す倫理的義務や同情ではなく、私の魂の内に滝のようにあふれ流れるいのちが、固く握りしめていた手を自然に開かせる奇跡――これこそが、真の福音の力であり、使徒パウロが語った恵みの実体なのです。

自分だけで生き延びようとする時代に抗う聖なる霊的生態系。パウロは献金を「種をまく農夫の働き」にたとえます。種は、安全な倉の中に大切に積んでおくときではなく、進んで朽ちることを受け入れて暗い土の中に投じられるとき、はじめて三十倍、六十倍のいのちあふれる実を結びます。深い聖書黙想の場に静かに進み出るなら、私たちは、パウロが求めたこの分かち合いが決して「多くささげれば、より多く返ってくる」という世俗的でご利益的な投資論理ではないことに気づかされます。張ダビデ牧師の説教は、この献身の波動を「神の国の霊的生態系の原理」として深く解き明かします。初代教会の慈善は、力の論理が支配していた帝国の、自分だけで生き残ろうとする秩序に真正面から逆らう、きわめて急進的な「均等」の実践でした。一つの肢体が飢えれば他の肢体もその痛みを進んで自分のものとみなし、一つの肢体が豊かであればその豊かさを血管のように自然に流し出す、有機的なキリストの体の呼吸でした。貧困を避けがたい個人の宿命として放置せず、貧しい者を憐れみの対象としてではなく、信仰共同体の中心に置いてその重荷を共に担うこと――これこそが、この世のいかなる集団とも徹底的に区別される教会の本当の顔です。

献金箱を越えて、他者の傷の中へとしみ込む具体的な愛。聖書が語る分かち合いと献金は、決して冷たい経済指標や会計帳簿の記録へと還元されません。それは結局のところ、失われた人間の尊厳を温かく回復し、断たれていた関係の裂け目をもう一度つなぎ直す愛の橋です。パウロは、献金によって物質的助けを受けた人々の唇からほとばしる真実の「感謝」が、再び切なる祈りとなって、受け手と支え手を分け隔てることなく共同体全体を霊的に結び合わせると語ります。張ダビデ牧師は、こうした感謝と愛、祈りの有機的な循環構造こそが、教会を絶えず成熟させる霊的な心拍であると指摘します。もし現代教会が、将来に備えるという世俗的な名目のもとで財政を巨大に蓄積するばかりで、今まさに血を流しうめいている隣人を顧みないなら、それは命を失った宗教集団にすぎないでしょう。今日の教会が回復すべきものは、華麗な建築物や精巧なプログラムではありません。追いはぎに襲われた者の苦しみを、進んで自分の忙しい予定の中へ組み込む善きサマリア人の聖なる勇気です。

結局のところ、張ダビデ牧師が伝えるコリント人への手紙二 9章の壮大なメッセージは、今日の聖徒たちを「より多く蓄える生き方」ではなく、「より深く、より広く流し出す生き方」へと切に招いています。聖徒の真の奉仕は、日曜礼拝堂の華やかな照明の下に置かれた献金箱で決して終わ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それは、シモンが自分の古びた外套を脱いで凍えた隣人の肩を覆ってあげた、その無骨な手つきのように、最も日常的で具体的な生活のただ中でなされるべき偉大な信仰告白なのです。今日、あなたの豊かさはどこかの水たまりに向かってよどんでいるでしょうか。それとも、干からびていく誰か隣人の魂に向かって、生ける水のように流れているでしょうか。張ダビデ牧師のこの重く、そして痛切な問いの前で、私たちは、安価な恵みを口実に利己心を正当化していた恥ずべき姿を徹底して悔い改めるよう促されます。どうかこのいのちあふれる説教の響きが、私たち一人ひとりの固く閉ざされた財布と心を大きく開き、凍てついた世界のただ中へ、温かなキリストの愛を滞りなく流し出す聖なる呼び水となるよう、切に祈ります。

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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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ecosistema santo que se filtra por las grietas de un mundo congelado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Pastor David Jang

En la obra maestra clásica de León Tolstói, el gran escritor ruso, ¿De qué viven los hombres?, aparece Simón, un zapatero pobre pero de corazón cálido. Todo lo que tenía para pasar el crudo invierno junto a su esposa era un solo abrigo viejo de piel de oveja, y ni siquiera podía reforzarlo con más forro porque no tenía dinero, de modo que una noche fría regresaba a casa con las manos vacías. Sin embargo, no pudo ignorar a un joven desconocido que, desnudo al borde del camino bajo la ventisca, se estaba congelando. Tras vacilar por un momento, finalmente se quitó su viejo abrigo, cubrió los hombros encorvados del desconocido, lo llevó a su casa y compartió con gusto el último pan caliente y el té que le quedaban. Más tarde se revela que aquel joven era el ángel Miguel, expulsado a la tierra como castigo, y el ángel asciende al cielo dejando esta gran verdad: “El hombre no vive por un corazón egoísta que solo mira por sí mismo, sino por el amor que busca llenar la carencia del otro”. Este noble testimonio literario muestra hasta qué punto el altruismo, que voluntariamente comparte la propia vida en contra de una naturaleza profundamente egoísta, sostiene y calienta al mundo. Pero la Biblia declara que este compartir jamás puede completarse solo con la bondad pasajera o el buen corazón humano, y nos invita a la fuente de una gracia que nunca se seca.

La paradoja y la generosidad de la cruz que hacen abrir las manos cerradas
En 2 Corintios 9, la “colecta” que el apóstol Pablo pidió a las iglesias gentiles para la necesitada iglesia de Jerusalén no era una simple campaña benéfica ni una actividad de ayuda puntual. Era un acontecimiento espiritual santo y revolucionario que muestra cómo el evangelio reconstruye por completo un alma endurecida y una billetera egoísta. A través de una profunda reflexión teológica sobre este pasaje,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con claridad que la colecta no es solo un acto económico que suple la carencia material de alguien, sino también el canal por el cual la gracia invisible del cielo se solidifica en una forma visible y tangible. Como a menudo malinterpretamos, la verdadera generosidad no proviene del saldo de una cuenta bancaria ni de la cantidad de grano almacenado en un granero. Quien ya ha experimentado la gracia inagotable de la cruz comienza a reevaluar sus bienes, ya no con el criterio mezquino del cálculo, sino con la mirada rebosante de gratitud. No se trata de una obligación moral arrancada a la fuerza ni de mera compasión, sino del milagro por el cual la vida que desborda como una cascada dentro del alma hace que la mano, antes rígidamente aferrada, se abra de manera natural. Ese es precisamente el poder del verdadero evangelio y la realidad de la gracia de la que habló el apóstol Pablo.

Un santo ecosistema espiritual que desafía la era del “cada uno por su cuenta”
Pablo compara la ofrenda con “la labor de un agricultor que siembra”. La semilla no da fruto cuando se guarda segura en un almacén; solo cuando se arroja con voluntad a la tierra oscura, donde habrá de descomponerse, produce una cosecha rebosante de vida, al treinta y al sesenta por uno. Si nos acercamos en silencio al lugar de la profunda meditación bíblica, comprendemos que esta generosidad que Pablo pide no es en absoluto la lógica mundana y utilitarista de inversión según la cual “cuanto más das, más recibes”. En la predicación del pastor David Jang, esta onda de entrega se explica profundamente como “el principio del ecosistema espiritual del reino de Dios”. La ayuda a los necesitados en la iglesia primitiva fue una práctica sumamente radical de “igualdad”, que se oponía de frente al orden imperial dominado por la lógica del poder y del sálvese quien pueda. Si un miembro pasaba hambre, los demás asumían ese dolor como propio; si un miembro tenía abundancia, esa abundancia fluía de manera natural como la sangre por las venas: era la respiración orgánica del cuerpo de Cristo. No abandonar la pobreza como si fuera un destino individual inevitable, sino colocar al pobre no como objeto de lástima, sino en el centro mismo de la comunidad de fe, cargando juntos con ese peso: ese es el verdadero rostro de la iglesia, radicalmente distinto al de cualquier grupo de este mundo.

Un amor concreto que va más allá del cepillo de ofrendas y penetra en las heridas ajenas
La generosidad y la colecta de las que habla la Biblia nunca pueden reducirse a cifras económicas frías o a simples registros contables. Son, al fin y al cabo, un puente de amor que restaura con calidez la dignidad humana perdida y vuelve a unir las grietas de relaciones que habían quedado rotas. Pablo dice que, por medio de la colecta, la sincera “gratitud” que estalla en los labios de quienes recibieron ayuda material se transforma nuevamente en oración ferviente, uniendo espiritualmente a toda la comunidad sin dividir entre beneficiarios y benefactores. El pastor David Jang señala que esta estructura orgánica de gratitud, amor y oración es precisamente el latido espiritual que hace madurar sin cesar a la iglesia. Si la iglesia moderna, bajo el pretexto mundano de prepararse para el futuro, solo acumula enormes recursos financieros y al mismo tiempo da la espalda al prójimo que hoy sangra y gime, no será más que un grupo religioso sin vida. Lo que la iglesia necesita recuperar hoy no es un edificio espléndido ni programas sofisticados. Es el santo valor del buen samaritano, que incorpora voluntariamente el dolor del asaltado en medio de su propia agenda ocupada.

En definitiva, el majestuoso mensaje de 2 Corintios 9 que transmite el pastor David Jang invita con urgencia a los creyentes de hoy no a una vida de “acumular más”, sino a una vida de “dejar fluir más hondo y más ampliamente”. El verdadero servicio del creyente nunca termina en el cepillo de ofrendas colocado bajo las luces brillantes del santuario dominical. Debe ser, más bien, una gran confesión de fe realizada en medio de la vida más cotidiana y concreta, como aquella mano tosca con la que Simón se quitó su viejo abrigo para cubrir los hombros congelados de su prójimo. Hoy, ¿hacia qué estanque se está acumulando tu generosidad? ¿O está fluyendo como agua viva hacia el alma reseca de algún vecino? Ante esta pregunta profunda y dolorosa del pastor David Jang, nos vemos llevados a arrepentirnos a fondo de la vergonzosa actitud con la que justificábamos nuestro egoísmo escudándonos en una gracia barata. Oro fervientemente para que el eco de este sermón lleno de vida abra de par en par nuestras billeteras y nuestros corazones firmemente cerrados, y se convierta en un santo cauce inicial por el que el cálido amor de Cristo fluya sin estorbo hacia el centro mismo de este mundo congel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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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écosystème sacré qui s’infiltre dans les fissures d’un monde gelé – Pasteu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Dans le chef-d’œuvre classique de Léon Tolstoï, De quoi vivent les hommes, apparaît Simon, un cordonnier pauvre mais au cœur chaleureux. Pour traverser l’hiver rigoureux, il ne possédait qu’un seul vieux manteau de peau de mouton à partager avec sa femme. Un soir glacial, alors qu’il avait voulu y faire ajouter de la fourrure mais avait dû rebrousser chemin les mains vides faute d’argent, il croisa sur le bord d’une route battue par la neige un jeune inconnu, nu et en train de mourir de froid. Il hésita un instant, puis finit par retirer son vieux manteau pour le poser sur les épaules voûtées de l’étranger, le ramena chez lui et partagea volontiers avec lui le dernier pain chaud et le thé qui lui restaient. Plus tard, on découvre que ce jeune homme était l’ange Michel, chassé sur la terre en punition. Avant de remonter au ciel, l’ange laisse cette grande vérité : « L’homme ne vit pas d’un cœur égoïste replié sur lui-même, mais de l’amour qui cherche à combler le manque d’autrui. » Ce noble témoignage littéraire montre combien l’altruisme, qui consent à partager sa propre vie en allant à rebours de l’égoïsme humain, soutient chaleureusement le monde. Mais la Bible déclare qu’un tel partage ne peut jamais être accompli uniquement par la bonté passagère ou la bonne volonté naturelle de l’être humain ; elle nous invite à la source de grâce qui ne se tarit jamais.

Le paradoxe de la croix et l’abondance qui desserrent la main crispée. Dans 2 Corinthiens 9, la « collecte » que l’apôtre Paul demande aux Églises d’origine païenne pour l’Église démunie de Jérusalem n’était ni une simple campagne de charité, ni une action de secours ponctuelle. C’était un événement spirituel, saint et révolutionnaire, qui montre comment l’Évangile reconfigure entièrement une âme endurcie et un portefeuille égoïste. À travers une profonde lecture théologique de ce passage,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clairement que l’offrande est à la fois un acte économique qui comble la pénurie matérielle d’autrui et un canal par lequel la grâce invisible du ciel se solidifie sous une forme visible et concrète. Contrairement à ce que nous croyons souvent, la véritable abondance ne vient ni du chiffre inscrit sur un compte bancaire, ni de la quantité de grain entassée dans un grenier. Celui qui a déjà fait l’expérience de la grâce inépuisable de la croix commence à réévaluer ses biens, non plus avec la règle étroite du calcul mesquin, mais avec les yeux débordants de gratitude. Ce n’est ni un devoir moral arraché de force, ni une compassion de façade, mais le miracle d’une vie qui déborde comme une cascade dans l’âme et qui ouvre naturellement la main jadis serrée. Voilà la puissance du véritable Évangile, voilà la réalité de la grâce dont parle l’apôtre Paul.

Un saint écosystème spirituel qui va à contre-courant de l’ère du chacun pour soi. Paul compare l’offrande au travail du paysan qui sème. La semence ne porte pas du fruit quand elle est conservée en sûreté dans un entrepôt ; elle produit au contraire une moisson débordante de vie — trente, soixante fois plus — lorsqu’elle est jetée dans la terre sombre, là où elle accepte de pourrir. Quand nous avançons calmement vers une méditation profonde de l’Écriture, nous comprenons que ce partage demandé par Paul n’a rien à voir avec la logique mondaine et intéressée selon laquelle « plus on donne, plus on reçoit ». Dans la prédication du pasteur David Jang, cette dynamique du dévouement est déployée en profondeur comme « le principe de l’écosystème spirituel du Royaume de Dieu ». L’entraide de l’Église primitive était une pratique très radicale de « l’égalité », qui s’opposait frontalement à l’ordre impérial dominé par la logique de la force et du chacun pour soi. Si un membre avait faim, les autres considéraient volontiers cette souffrance comme la leur ; si un membre vivait dans l’abondance, cette abondance circulait naturellement, comme le sang dans des veines, selon le souffle organique du corps du Christ. Ne pas abandonner la pauvreté comme s’il s’agissait d’un destin individuel inévitable, placer le pauvre non pas à la périphérie comme objet de pitié mais au centre de la communauté de foi, et porter ensemble ce fardeau : voilà le vrai visage de l’Église, radicalement distinct de n’importe quel autre groupe de ce monde.

Un amour concret qui dépasse le tronc d’offrandes pour pénétrer les blessures d’autrui. Le partage et l’offrande dont parle l’Écriture ne se réduisent jamais à de froids chiffres économiques ou à l’enregistrement d’un livre de comptes. Ils sont, au bout du compte, un pont d’amour qui restaure avec chaleur la dignité humaine perdue et rétablit les liens rompus. Paul affirme que la sincère « action de grâce » qui jaillit des lèvres de ceux qui ont reçu une aide matérielle devient à son tour une prière fervente, tissant spirituellement toute la communauté sans distinguer bénéficiaires et donateurs. Le pasteur David Jang montre que cette structure organique de circulation entre gratitude, amour et prière est précisément le battement de cœur spirituel qui fait mûrir l’Église sans cesse. Si l’Église contemporaine ne fait qu’accumuler d’immenses ressources financières sous le prétexte séculier de préparer l’avenir, tout en détournant le regard du prochain qui saigne et gémit maintenant, elle ne sera rien d’autre qu’un groupe religieux vidé de sa vitalité. Ce que l’Église doit retrouver aujourd’hui, ce ne sont ni des bâtiments somptueux ni des programmes sophistiqués, mais le courage sacré du bon Samaritain, capable d’intégrer volontairement la souffrance de celui qui est tombé aux mains des brigands dans son propre agenda chargé.

En définitive, le message majestueux de 2 Corinthiens 9 transmis par le pasteur David Jang lance aujourd’hui un appel pressant aux croyants : non pas vivre pour accumuler davantage, mais vivre pour laisser couler plus profondément et plus largement ce qui leur a été donné. Le véritable service du croyant ne s’achève jamais dans le tronc d’offrandes placé sous les lumières éclatantes du culte dominical. Il doit être une grande confession de foi vécue au cœur même de l’existence la plus quotidienne et la plus concrète, comme ce geste rude mais authentique de Simon retirant son vieux manteau pour couvrir les épaules glacées de son prochain. Aujourd’hui, vers quelle mare votre abondance stagne-t-elle ? Ou bien coule-t-elle comme une eau vive vers l’âme asséchée de quelque voisin ? Devant cette question grave et poignante du pasteur David Jang, nous sommes conduits à nous repentir profondément de la manière honteuse dont nous avons justifié notre égoïsme sous prétexte d’une grâce à bon marché. Puisse l’écho de cette prédication débordante de vie ouvrir tout grand le portefeuille et le cœur de chacun de nous, afin que l’amour chaleureux du Christ se déverse sans obstacle au milieu d’un monde gelé, comme une source sainte qui met en mouvement la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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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oly Ecosystem Seeping into the Cracks of a Frozen World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Pastor David Jang

In Leo Tolstoy’s classic masterpiece What Men Live By, there appears Simon, a poor shoemaker with a warm heart. One bitter winter, he had only a single worn sheepskin coat to share with his wife through the cold season, and even that night he had turned back empty-handed after lacking the money to have fur added to it. Yet he could not bring himself to ignore a stranger, naked and freezing by the roadside in the snowstorm. After a moment’s hesitation, he finally took off his old coat, covered the stranger’s hunched shoulders, brought him home, and gladly shared his last warm bread and tea. Later it is revealed that the young man was Michael, an angel cast down to earth as punishment. Before ascending again, the angel leaves behind a profound truth: “Man does not live by selfish concern for himself, but by love that fills the lack of others.” This noble literary witness shows how deeply the world is sustained by altruism that willingly shares one’s own life against the grain of human selfishness. Yet Scripture declares that such sharing can never be completed by temporary human goodwill or mere kindheartedness alone, and invites us instead to the unfailing source of grace.

The Paradox and Abundance of the Cross That Opens Clenched Hands

In 2 Corinthians 9, the “collection” the Apostle Paul requested from the Gentile churches for the impoverished church in Jerusalem was not a simple charity drive or a one-time relief effort. It was a holy and revolutionary spiritual event that revealed how the gospel completely reconfigures a hardened soul and a selfish wallet. Through deep theological insight into this passage, Pastor David Jang clearly emphasizes that the collection is both an economic act that fills another person’s material lack and a channel through which the invisible grace of heaven takes visible, physical form.

Contrary to what we often assume, true abundance does not come from the number in a bank account or the quantity of grain stored in a barn. Those who have already experienced the inexhaustible grace of the cross begin to reevaluate their possessions not by the stingy standard of calculation, but through eyes overflowing with gratitude. It is not coerced moral duty or reluctant pity, but the miracle of life cascading like a waterfall within the soul, naturally opening the hand that was once tightly clenched. This is the power of the true gospel and the substance of grace Paul speaks of.

A Holy Spiritual Ecosystem That Defies an Age of Every Person for Themselves

Paul compares giving to the work of a farmer sowing seed. A seed does not bear fruit when it is safely piled up in a storehouse; only when it is willingly cast into dark soil to die does it produce thirtyfold and sixtyfold, bursting with life. As we quietly enter a place of deep scriptural meditation, we come to realize that the sharing Paul calls for is by no means a worldly or prosperity-driven investment logic that says, “Give more, get more back.”

Pastor David Jang’s sermon unfolds this wave of devotion as “the principle of the spiritual ecosystem of the kingdom of God.” The almsgiving of the early church was a radically egalitarian practice that directly challenged the every-person-for-himself order of an empire ruled by power. If one member went hungry, the others willingly regarded that suffering as their own. If one member had abundance, that abundance flowed naturally like blood through veins. It was the organic breathing of the body of Christ. Rather than leaving poverty as an unavoidable individual fate, the church placed the poor not at the margins as objects of pity, but at the center of the faith community and bore their burden together. This is the true face of the church, utterly distinct from any group in the world.

Concrete Love That Moves Beyond the Offering Box and Into the Wounds of Others

The sharing and giving Scripture speaks of can never be reduced to cold economic figures or entries in an accounting ledger. In the end, they are a bridge of love that warmly restores lost human dignity and reconnects broken relationships. Paul says that the sincere thanksgiving that bursts from the lips of those who receive material help through the offering becomes earnest prayer in return, spiritually binding the whole community together without dividing recipients from supporters.

Pastor David Jang points out that this organic cycle of gratitude, love, and prayer is the spiritual heartbeat that continually matures the church. If the modern church merely amasses great wealth under the secular pretext of preparing for the future while ignoring neighbors who are bleeding and groaning in the present, it will be nothing more than a religious institution that has lost its vitality. What the church must recover today is not magnificent buildings or sophisticated programs, but the holy courage of the Good Samaritan, who willingly made the suffering of the wounded man part of his own busy schedule.

In the end, the majestic message of 2 Corinthians 9 as preached by Pastor David Jang urgently invites believers today not to “live by accumulating more,” but to “live by letting more flow out, more deeply and more widely.” The true service of a believer does not end at the offering box placed beneath the bright lights of a Sunday sanctuary. Like Simon’s rough hands removing his worn coat to cover the shoulders of a freezing neighbor, it must become a great confession of faith lived out in the most ordinary and concrete moments of daily life.

Today, where is your abundance collecting? Is it stagnating in some pool? Or is it flowing like living water toward the parched soul of a neighbor? Before this weighty and piercing question from Pastor David Jang, we are led to thoroughly repent of the shameful ways we have justified our selfishness under the excuse of cheap grace. May the living echo of this sermon fling wide open each of our tightly closed wallets and hearts, becoming a holy springhead through which the warm love of Christ may flow freely into the very center of this frozen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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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세상의 틈으로 스며드는 거룩한 생태계 – 장재형 목사 (Olivet University)

장재형 목사와 회의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고전 명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가난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구두장이 시몬이 등장합니다. 그에게는 매서운 겨울을 날 아내와 나눌 단 한 벌의 낡은 양가죽 외투뿐이었고, 그마저도 털을 덧대려다 돈이 부족해 빈손으로 발길을 돌리던 어느 추운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보라 치는 길가에 벌거벗은 채 얼어붙어 가는 낯선 청년을 결코 외면하지 못합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결국 자신의 낡은 외투를 벗어 낯선 이의 굽은 어깨를 덮어주며 집으로 데려와 마지막 남은 따뜻한 빵과 차를 기꺼이 나눕니다. 훗날 그 청년이 벌을 받아 지상으로 쫓겨난 천사 미카엘이었음이 밝혀지고, 천사는 “사람은 자신을 살피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타인의 결핍을 채우려는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위대한 진리를 남기고 승천합니다. 이 숭고한 문학적 증언은, 철저한 이기적 본성을 거슬러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나누는 이타성이 얼마나 세상을 따뜻하게 지탱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나눔이 단지 인간의 일시적인 선의나 착한 심성만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고 선언하며, 영원히 마르지 않는 은혜의 근원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움켜쥔 손을 펴게 하는 십자가의 역설과 넉넉함
고린도후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이 궁핍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이방 교회들에게 요청한 ‘연보(헌금)’는 단순한 자선 냄비나 일회성 구호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한 사람의 굳어진 영혼과 이기적인 지갑을 어떻게 완전히 재구성하는가를 보여주는 거룩하고도 혁명적인 영적 사건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본문에 대한 깊은 신학적 통찰을 통해, 연보가 누군가의 물질적 결핍을 메우는 경제적 행위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은혜가 눈에 보이는 물리적 형태로 굳어지는 통로임을 명확히 강조합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듯 진정한 넉넉함은 통장 잔고의 숫자나 창고에 쌓인 곡식의 양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다함없는 은혜를 경험한 성도는, 더 이상 인색한 계산의 잣대가 아닌 벅찬 감사의 눈으로 자신의 소유를 재평가하기 시작합니다. 억지로 쥐어짜는 윤리적 의무나 동정이 아니라, 내 영혼 안에 폭포수처럼 흘러넘치는 생명이 굳게 움켜쥐었던 손을 자연스럽게 펴게 만드는 기적, 이것이 바로 참된 복음의 능력이자 사도 바울이 말한 은혜의 실체입니다.

각자도생의 시대를 거스르는 거룩한 영적 생태계
바울은 헌금을 ‘씨를 뿌리는 농부의 일’에 비유합니다. 씨앗은 안전한 창고 안에 고이 쌓아둘 때가 아니라, 기꺼이 썩어질 어두운 땅속으로 던져질 때 비로소 서른 배, 육십 배의 생명력 넘치는 열매를 맺습니다. 깊은 성경 묵상의 자리에 조용히 나아가면, 우리는 바울이 요청한 이 나눔이 결코 ‘많이 바치면 더 많이 돌려받는다’는 세속적이고 기복적인 투자 논리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장재형 목사의 설교는 이 헌신의 파동을 ‘하나님 나라의 영적 생태계 원리’로 깊이 있게 풀어냅니다. 초대 교회의 구제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제국의 각자도생적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매우 급진적인 ‘균등’의 실천이었습니다. 한 지체가 굶주리면 다른 지체도 그 고통을 기꺼이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한 지체가 풍성하면 그 풍성함을 혈관처럼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유기적인 그리스도의 몸 된 호흡이었습니다. 빈곤을 어쩔 수 없는 개인의 숙명으로 방치하지 않고, 가난한 자를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의 중심에 두어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것, 이것이 세상의 어떤 집단과도 철저히 구별되는 교회의 진짜 얼굴입니다.

헌금함을 넘어 타인의 상처 속으로 스며드는 구체적 사랑
성경이 말하는 나눔과 연보는 결코 차가운 경제적 수치나 회계 장부의 기록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인간의 잃어버린 존엄을 따뜻하게 회복시키고, 단절되었던 관계의 틈을 다시 잇는 사랑의 다리입니다. 바울은 연보를 통해 물질적 도움을 받은 이들의 입술에서 폭발하는 진실한 ‘감사’가 다시 간절한 기도가 되어, 수혜자와 후원자를 가르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영적으로 묶어낸다고 말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감사와 사랑, 기도의 유기적인 순환 구조가 곧 교회를 끝없이 성숙하게 만드는 영적 심장 박동이라고 짚어냅니다. 만약 현대 교회가 미래를 대비한다는 세속적인 명목으로 재정을 거대하게 축적하기만 하고 당장 피 흘리며 신음하는 이웃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생명력을 잃은 종교 집단에 불과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화려한 건축물이나 정교한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강도 만난 자의 고통을 기꺼이 나의 바쁜 일정 속으로 편입시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거룩한 용기입니다.

결국 장재형 목사가 전하는 고린도후서 9장의 장엄한 메시지는 오늘날의 성도들을 ‘더 많이 축적하는 삶’이 아닌 ‘더 깊고 넓게 흘려보내는 삶’으로 간절히 초대합니다. 성도의 참된 섬김은 주일 예배당의 화려한 조명 아래 놓인 헌금함에서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시몬이 나의 낡은 외투를 벗어 얼어붙은 이웃의 어깨를 덮어주었던 그 투박한 손길처럼, 가장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지는 위대한 신앙 고백이어야 합니다. 오늘 당신의 넉넉함은 어느 웅덩이를 향해 고여 있습니까? 아니면, 메말라가는 어느 이웃의 영혼을 향해 생수처럼 흐르고 있습니까? 장재형 목사의 이 묵직하고도 뼈아픈 질문 앞에서, 우리는 값싼 은혜를 핑계로 이기심을 정당화하던 부끄러운 모습을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부디 이 생명력 넘치는 설교의 울림이 우리 각자의 굳게 닫힌 지갑과 마음을 활짝 열어젖혀, 얼어붙은 세상 한가운데로 따뜻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막힘없이 흘려보내는 거룩한 마중물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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