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신앙의 회복 – 장재형목사

장재형목사

1.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 부활신앙의 현장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은 기독교 교회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공간이며, 동시에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 깊은 영적 통찰을 주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다락방은 사도행전 1장부터 2장으로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장면의 무대가 되는데, 바로 여기서 초대교회의 태동과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 시작점인 사도행전 1장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마무리하시는 시점, 즉 승천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와 약속을 주신 사건이 기록된 장면이다. 그리고 이 다락방은 단지 물리적 공간의 개념을 넘어, ‘초대교회가 두려움 속에서도 예루살렘 한복판에 모여 역사적 변화를 일으킨 상징적 장소’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면을 가리켜 “비록 제자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약 40일 동안 그들을 직접 찾아오셔서 다시 세우시고, 믿음을 불어넣어 주신 뒤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하셨다”라고 설명한다. 제자들은 갈릴리까지 흩어졌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부활신앙”으로 무장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부활이 어떠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며, 그 출발점에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예루살렘이어야 했을까?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거기서 처형되셨던 도시가 예루살렘이다. 제자들에게는 몹시도 두렵고 참혹한 기억이 남은 곳이었을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그분을 따르던 많은 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려라”(행1:4-5)는 말씀을 직접 주심으로써, 제자들이 오히려 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지역에 다시 모이게 하셨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하나님의 역사는 늘 우리의 기대와 상식을 뛰어넘는다. 부활신앙이란,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 가장 소망을 전하는 힘을 발휘할 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부활신앙의 특징은, ‘죽음이 끝이 아니다’라는 확신에 있다. 제자들이 한때는 ‘주님이 처형당했고, 이제 우리도 붙잡혀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주저앉았으나, 예수님께서 실제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모습을 보고 “죽음 그 너머의 새로운 시대”를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3절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증언한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일”이란 단지 막연한 종말론이나 철학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교회가 어떤 능력으로 세워져야 하고, 어떻게 전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방향을 포함한다. 그 핵심 중 하나가 “너희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출발하라”는 말씀이다.

장재형 목사는 “사람이 가장 약해지고 넘어졌던 곳에서 다시 회복하는 역사를 ‘부활신앙의 실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이 주는 교훈이라 강조한다. 처음에 제자들이 이 다락방에 모였을 때, 그 분위기는 지극히 숨죽인 상태였을 것이다. 십자가 사건 직후,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안치되었고, 지도층은 예수님의 잔당까지 모조리 소탕하려는 기세가 등등했다. 그렇기에 그 다락방은, ‘잠깐 모여서 기도하는 안전한 은신처’ 정도로 활용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그곳에서 멈추지 말고 기다리라. 멈추어 서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을 받을 때까지 머물라는 것”이었다. 마가의 다락방이 이처럼 ‘무력한 도피처’에서 ‘능력의 발원지’로 바뀌게 된 것은 바로 성령 강림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곧 성령이 임하심으로(행2장),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숨은 제자들이 아니었다. 공포의 공간이던 다락방이 부활의 확신과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현장이 되자, 제자들은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 거리로 나아가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장재형 목사는 “부활이 교리로만 남아 있다면 의미가 없지만, 부활신앙이 실제 삶을 뒤엎는 능력이 될 때, 사람들이 마침내 예루살렘성 안에서조차도 두려움을 뛰어넘어 행동하는 변화를 보게 된다”라고 역설한다.

이런 ‘행동하는 신앙’은 곧 사도행전 전반에 드러난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사마리아와 온 유대, 그리고 땅끝에 이르는 역사적 복음 전파의 여정이 펼쳐지는 것이다. 신앙이 행동으로 이어진 가장 첫 번째 장면은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사건에서 드러나듯, 골방에 숨어 있던 이들이 거리로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고, 하루에 수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받는 장관이 펼쳐진 것이다. 그 발화점이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었다.

한편, 이 다락방은 “교회의 모태” 또는 “교회의 자궁”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새 시대가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확신과 성령 강림으로 인해 실제로 ‘새로운 공동체’가 그 안에서 잉태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아직 지상에 계실 때는, 제자들은 말씀을 배우며 동행하는 수학(修學)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이 임하신 이후, 제자들은 ‘교회 공동체의 기둥’으로서 스스로 복음을 확장해나가는 주체가 되었다. 다락방은 그 전환점의 심장부였고, 그 동력이 곧 부활신앙이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의 회복 장면을 떠올려보면, 제자들이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또 어떻게 다시금 사명을 확인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순종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이후, 주님께서 그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묻고, 베드로가 그 사랑을 고백함으로써 비로소 무너진 자기 자신을 끌어안고 ‘반석’(베드로)으로 거듭 태어난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면에 대해 “교회가 특정 프로그램이나 조직력으로 움직이지 않고, 결국 그 근본 동력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그 사랑은 곧 주님의 부활하심에서 기인하고, 우리를 품어주신 그 은혜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에야 견고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가의 다락방 역시 이와 같은 ‘고백’과 ‘회개’와 ‘믿음’의 집합체였다. 부인했던 제자들,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돌아와 하나의 공동체가 되고, 절망을 넘어서는 용기를 내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부활과 성령의 약속 때문이었다. “마태복음 26장 이하에 기록된 예수님의 고난 현장과, 요한복음 21장 갈릴리로 돌아간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사도행전 1장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이 한 줄로 연결될 때, 비로소 부활신앙이 오늘날 교회에 실질적 메시지를 준다”고 장재형 목사는 거듭 강조한다.

이렇듯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은 결과적으로 ‘두려움에서 대담함으로, 흩어짐에서 모임으로, 수치와 부인에서 회개와 고백으로’ 전환하는 현장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가 이 점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는데, “교회가 어느 시점부터 사회적 지탄이나 박해의 두려움 속에 숨어만 있는다면, 다시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불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활신앙의 현재적 적용이기도 하다.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치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듯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가 세상 한복판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도록 지지해주신다는 사실을 붙들 때,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끝까지” 이르는 길을 기쁨으로 갈 수 있다.

이 모든 맥락에서 장재형 목사는 “마가의 다락방을 단지 역사적 장소로만 여기지 말고, 현재의 교회마다 자기만의 다락방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곧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고 기도하는 자리’일 수도 있고, ‘부활신앙을 함께 붙들고 고백하는 자리’일 수도 있다.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숨는 행위가 아니라 “거기서 능력을 받아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종 준비”라는 점이 핵심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고 하셨듯, 그런 약속이 ‘다락방’에서 성취되었기에, 초대교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2. 맛디아의 선택, 유다의 빈자리를 메우는 교회의 회복

사도행전 1장 후반부에서 제자들은 열두 번째 사도의 자리를 새롭게 채우는 사건을 맞이한다. 부활절을 지나 오순절로 향하는 그 사이,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예수님이 열둘 중에 한 사람으로 부르셨던 가룟 유다의 배신과 그 후속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긴 뒤,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불의한 삯으로 밭을 산 뒤 거기서 몸이 떨어져 장기가 터져 죽었다는 기록(행1:18)으로 인해 “핏값의 비극”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장재형 목사는 유다의 비극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사람이 오히려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라고 표현한다. 유다는 제자 공동체 안에서 돈궤를 맡던 자였으니, 사실상 재정을 관리하고 봉사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재정을 맡고 봉사하는 자리가 때로는 은혜가 충만해야 할 중요한 자리가 되지만, 동시에 사탄의 유혹과 시험이 들어오기 쉬운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이 돈이 때로는 세속적인 이익이나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은 교회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6:10)고 거듭 경계하고, 초대교회가 “모든 재산을 서로 통용하며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행2:45, 4:34)고 기록함으로써, 물질에 얽매여 부패하지 않도록 초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유다는 물질적 욕심과 정치적 계산이라는 틈을 통해 사탄에 의해 쓰임받아, 결국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배신자가 되었다. 그는 배신 직후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제대로 된 회개에 이르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제자 중 하나를 잃었다’는 뼈아픈 상처를 교회에 남겼다. 열두 제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영적 기둥이었고, 주님이 친히 세우신 “새로운 언약 공동체의 문”과 같았다. 그 한쪽 문이 무너졌으니, 이 문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시급했을 것이다.

이에 사도행전 1장에서는 그 공석을 채우기 위한 회의가 열린다. 여기서 초대교회는 새롭게 사도의 자리를 메울 인물을 뽑는데, 그것이 바로 맛디아다. 그 과정을 눈여겨보면, 교회의 위기 대처 방식이 어떠했는지 배울 수 있다. 사도행전 1장 21~22절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제안한다. “이 일, 곧 우리와 함께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증인이 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주님이 승천하시는 그 날까지 우리와 늘 함께하던 사람 중 하나를 세우자.” 그 결과, 두 사람이 후보에 올랐고, 초대교회는 그 자리에서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선택했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주목할 몇 가지 포인트를 제시한다. 첫째, 초대교회가 “부활의 증인”을 최우선 자격 요건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기 위함이므로, 사도의 핵심 사명 역시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다. 맛디아를 비롯해 후보가 되었던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의 공생애와 고난, 죽음, 부활까지 전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로, 사실상 열두 사도와 함께 늘 다니며 배웠던 이들이었다. 둘째, 선택 과정에서 보이는 공동체적 합의와 기도, 그리고 제비뽑기가 인상적이다. “모든 사람의 의견과 교회의 합의가 중요했고, 마지막 단계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에 운명을 맡기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교회가 단지 인간적 계산이나 정치적 타협으로 리더를 뽑지 않음을 시사한다. 셋째, 이렇게 뽑힌 맛디아가 이후 교회에서 어떠한 능력을 나타냈는지에 대한 기록 자체는 성경에 길게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열두 제자가 온전히 회복되어 다시 오순절 성령 강림을 맞이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선택의 과정이 중요할까? 교회가 성령이 임하기 직전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지도자 팀(사도단)을 회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유다가 만들어낸 공백과 배신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교회가 온전히 하나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우리 중 하나가 주님을 배반했다”는 배신감이 남아 있었고, 그 가운데 제자들은 서로를 향한 신뢰 회복이 시급했다. 또한 각자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모여 함께 기도하면서, “이제는 다시는 그런 배신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단단한 결속을 다져야 했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 안에 생겨난 상처, 지도자의 배신이란 것이 얼마나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 유다의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라고 지적한다. 그렇기에 초대교회는 가룟 유다의 사건을 단순히 잊어버리거나 덮어두지 않고, 아예 교회 첫 발을 내딛는 시점에 투명하게 정리하고 넘어갔다. 유다가 남긴 핏값의 돈은 성전에 던져졌고, 그것으로 ‘피밭’을 샀다는 사실(마27:5-8)이 공공연히 드러났다. 교회는 이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지 않고, 되레 예언(예레미야나 시편)에 입각하여 “이 일이 예언이 성취되는 과정의 일부”라고까지 받아들이며, 공동체 전체가 한 목소리로 기도하고 새 인물을 임명했다.

그리하여 맛디아가 사도의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 교회는 다시 열두 사도의 틀을 회복하고, 그 안에서 더욱 공고해진 영적 유대감 속에 오순절 성령 강림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성령의 힘을 입은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기점으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까지 복음을 확장해 나가게 된다. 만일 유다의 배신과 죽음으로 인해 생긴 내분과 상처를 방치했다면, 교회가 출범하기 전부터 붕괴될 위험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상처를 드러내어 해결하고, 회복의 과정을 공적으로 선포함으로써, 교회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또 다른 관점에서 유다의 실수와 죽음은, 초대교회에 ‘결코 그 누구도 이 길에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라는 경각심을 심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을 직접 3년간 따라다니고, 기적과 말씀을 접하며, 심지어 돈궤를 맡겨질 정도로 신뢰받던 인물조차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은, 교회 구성원 누구든지 시험에 드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 대해 “현대 교회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 보여도, 끊임없이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살피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사단은 언제든지 우리를 미끼로 삼을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교회사는 배신과 타락의 역사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인물(맛디아 같은)을 세워 교회의 빈 자리를 메우고, 역사를 이어 가셨음을 우리는 본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가 맛디아의 선택 사건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첫째, 교회가 공동체적 합의와 기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도자 자리를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능력·명성·정치력을 보고 지도자를 세워서는 안 되며, “부활신앙을 확실히 붙들고 있는가?” “주님과 함께해 온 시간이 있는가?” “주님의 고난·죽음·부활을 옆에서 목격하고, 자기 삶으로 간증할 수 있는가?”라는 핵심 신앙 고백이 훨씬 중요하다. 둘째, 지도자의 배신 또는 교회 안의 큰 상처가 생길 때마다, 그것을 단지 ‘개인의 비극’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아파하며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기도와 말씀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다가 무너진 뒤, 초대교회가 그를 강렬히 비난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고, 주님의 말씀과 예언을 찾아 연구하며, 거기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간 자세는 배울 점이 많다. 셋째, 이 모든 회복 과정은 궁극적으로 ‘성령 강림’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교회가 왜 굳이 이 사건을 성령 임재 이전에 다뤘겠는가? 바로 오순절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온전한 상태로 자신들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불의와 혼란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의 큰 역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성령의 역사, 부흥, 성장 등을 말하기 전에, 먼저 내부의 죄와 불의를 다루는 과정을 진지하게 거쳐야 하며, 지도자들의 무너짐이 있다면 그것을 은폐하지 말고 진정으로 치유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다에게서 벗어나 맛디아를 세운 것이 “하나의 상징”이라면, 곧 ‘교회는 그 어떤 큰 상처를 당해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반드시 회복의 길을 찾는다’는 메시지를 준다. 물론, 유다는 원천적으로 ‘버려진 자’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선택해 그 길로 나아갔다가 영원한 비극을 맞이한 것이다. 교회가 누구를 불문하고 회복과 구원의 길로 초청하지만, 개인이 끝까지 거부하면 비극은 일어난다. 교회는 그런 비극을 무조건 덮는 대신, 회개와 갱신의 동력을 찾아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활신앙”이 핵심 저력으로 작용한다.

부활신앙은 “죽음을 끝장내고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유다는 예수님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었고, 그 뒤에 찾아온 죄책감에 무너져 갔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셨다. 가룟 유다의 배신이 교회에 남긴 충격과 공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소망에 의해 극복될 수 있었다. 맛디아가 그 빈자리를 메꾸었을 때, 열두 제자는 다시 하나가 되어 성령을 기다렸고, 곧 교회에 불처럼 임한 성령으로 인해 예루살렘에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1장에서 4장까지 읽어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수비대를 비롯한 종교 권력 앞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예수 이름 외에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이 없다”(행4:12)고 선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의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던 베드로”가 더 이상 아니다. 그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회복된 자, 성령 받은 자, 그리고 맛디아와 함께한 “온전한 사도단”의 대표가 되어 버젓이 복음을 외친다. 여기에는 “무너져버린 지도자 한 사람의 자리마저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셨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장재형 목사는 “유다를 잃고 맛디아를 얻은 교회가 ‘피투성이가 된 상처’를 치유받은 것처럼, 교회도 끊임없이 옛 상처와 고통을 치유받으며 새 술 부대를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초대교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교회도 각종 분쟁·부패·배신 같은 사건을 겪을 때가 많으며, 그때마다 어떻게 ‘새로운 맛디아’를 세워서 공동체를 정돈하고 성령의 역사를 받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성령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공동체”이며, 동시에 “배신과 회개, 죽음과 부활, 좌절과 회복”이라는 수많은 교차점을 통과해가며 성장한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죽음을 재촉했고, 맛디아는 그 빈자리를 메우며 복음의 문을 확장했다. 베드로는 부인하고 도망갔으나, 다시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요한복음 21장에서 그의 사랑을 회복시키셨고, 사도행전에서 가장 먼저 설교를 펼치는 지도자로 세우셨다. 이렇게 사도들의 재정비가 끝나고, 초대교회는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공간에서 성령이 임하는 장관을 경험한다. 그 성령이 임한 순간부터 교회는 더 이상 숨어 있지 않고 거리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고, 이내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혔다.

오늘날도 교회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장재형 목사는 “당연히 가능하다. 다만, 그 조건은 오늘날 교회가 부활신앙의 실제적 파워를 믿고, 내부의 문제(배신·부패·불신)를 회개와 기도로 해결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구하는 데 달렸다”고 주장한다. 마가의 다락방과 맛디아의 선택은, 교회가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실제 삶에서 체험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공동체 안의 갈등과 상처를 극복하여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부활신앙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의 핵심은 “이 땅의 죽음, 절망, 실패가 결코 마지막이 아니다”라는 믿음이다. 가룟 유다라는 절망적 사례가 있어도, 교회는 맛디아를 통해 복음 전파의 긴 역사를 이어 간다. 우리가 때로는 베드로처럼 주님을 부인하고 죄책감 속에 살지라도, 요한복음 21장처럼 주님이 친히 우리를 다시 찾아오시고 회복시킨다. 그 은혜가 우리를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으로 이끌어, 무기력한 상태가 아니라 담대한 성령의 능력을 입어 세상 한복판으로 나가도록 만든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초대교회는 결국 사도행전 28장 마지막 절에서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라는 당당한 선포로 마무리한다. 복음 전파를 막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베드로는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거꾸로 십자가에 달리는 순교로 사명을 마무리했으나, 그의 뒤를 잇는 수많은 제자들이 또다시 교회의 빈 자리를 채워나갔다. 이처럼 교회는 주기적으로 흔들리고 넘어질지라도, 부활신앙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새롭게 일어선다.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 무너져도, 하나님께서는 사도직을 회복하고, 땅끝까지 이어지게 하는 방법을 갖고 계신다.

맛디아의 선택은 바로 이 ‘회복’과 ‘전진’의 두 가지 정신을 모두 아우른다. 교회가 내부의 상처를 치유하고, 부활신앙에 기초하여 더 큰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고, 교회 지도자들마다 사역 현장에서 다양한 갈등과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초대교회는 어떻게 이 난관을 돌파했나?”를 돌아보면, 결국 그 답은 “부활신앙의 견고한 고백과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는 기도, 그리고 투명한 공동체적 절차”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정리하며 말한다. “부활은 능력이다. 그 능력은 우리 마음 안에 역사할 때,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 아무리 큰 배신자가 있어도, 그 배신을 넘어 교회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회복과 새 출발의 길을 찾게 된다. 유다의 실패가 교회 역사의 종말을 뜻하지 않았듯이,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는 어떠한 큰 상처도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소멸시키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과 맛디아의 선택”이 하나로 연결되는 결정적 이유다. 마가의 다락방은 숨죽이고 숨어 있던 제자들이 성령 강림을 경험한 뒤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 발화점이라면, 맛디아의 선택은 사도 중 한 사람의 배신과 죽음을 넘어서 교회가 다시 ‘온전한 공동체’로 거듭나는 장면이다. 두 이야기는 “교회 안의 배신·부인·두려움이, 주님의 부활과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어떻게 회복과 능력의 역사로 바뀌는가”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슬픔과 회환이 섞여 있지만, 더욱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가 깃들어 있다. 그 결과,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을 넘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길로 분연히 일어설 수 있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지역 교회나 공동체가 마치 마가의 다락방처럼 ‘현대적 의미의 다락방’을 회복해 부활신앙으로 충만해진다면, 그리고 가룟 유다가 남기고 간 상처를 맛디아의 선출처럼 투명하고 말씀에 충실한 방식으로 치유한다면, 성령의 새 역사를 기대할 수 있다. 오순절 사건이 2000년 전 어느 한 장소에서만 일어난 ‘역사적 일회성’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지역의 교회가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운동인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장재형목사가 줄곧 강조해온 “부활신앙의 실천성”과 맞닿아 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지적(知的)으로만 받아들이고 말면, 그것은 단순한 교리에 그친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 부활을 실제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배신이나 고난, 죽음이나 절망도 더 이상 끝이 아님을 시연해 보였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자신들을 죽이려 했던 세력들에게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모습은, 부활이 얼마나 실재적이고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어, 가룟 유다의 배신을 맛디아의 선출로 회복하고, 성령 강림을 통해 전 세계로 나아간 공동체”라고 답할 수 있다. 그 정체성은 역사의 시공간을 넘어 오늘도 유효하며, 교회가 부활신앙을 지키는 이상 결코 문이 닫히지 않는다. 때로 교회 내부에 치명적인 균열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인물을 세워 그 자리를 회복시키시고, 또다시 성령을 부어주신다. 이것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로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복음의 연속성이자, 현대 교회가 이어받아야 할 믿음의 유산이다.

장재형 목사의 결론적인 권면도 여기에 맞닿는다. “우리는 현재적 다락방을 회복해야 하며, 배신과 실패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덮는 대신 진실하게 회개하고 투명하게 해결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출발의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그 중심에는 ‘부활의 주님’이 계시고, 그분이 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선교적 사명이 놓여 있다.” 교회가 이 길에 순종할 때, 사도행전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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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David Jang’s Meditation on Galatians (Olivet University):The Grace of the Holy Spirit and Freedom

Pastor David Jang

When one stands before El Greco’s Pentecost, it is not first the heavenly light descending like fire that catches the eye, but the faces of the people. Astonishment and fear, trembling and reverence all quiver within a single frame, yet their gaze ultimately converges on one center. Pastor David Jang’s meditation on Galatians speaks of the Holy Spirit in much the same way. The Holy Spirit is not an ornament added at the edges of faith, but the presence of God who breathes new life into the human soul and redirects the course of belief. Thus, the Spirit cannot be reduced to a moment of excitement or a special experience. The Spirit is understood as the living help who transforms the very structure of thought, rearranges the order of desire, and renews even the way we love and serve. The Holy Spirit is not merely one who heightens the atmosphere of worship, but one who patiently rewrites a person’s character and the culture of a community. The work of the Spirit described in this sermon is closer to endurance than explosion, to transformation than momentary sensation, and to the reconstitution of being rather than emotion.

Freedom is not license, but the order of a new life

The freedom spoken of in Galatians is not the release to do whatever one wants. It is the order by which the grace of redemption restores a person, and the beginning of repentance in which the heart that once clung to self-righteousness turns back to God. This sermon does not treat sin merely as a list of wrong actions. Sin is first a rupture with God, and that rupture twists the direction of desire, distorts the language of relationships, and eventually makes competition more familiar than love. Strife, jealousy, anger, and greed do not suddenly fall from the sky; they are the symptoms of a soul already collapsing within. Therefore, the gospel is not merely comfort that relieves guilt, but grace that restores broken relationship and opens the way to a new obedience. Without the Holy Spirit, faith easily hardens into the rigid shell of legalism or, conversely, scatters into emotion without a center. Yet the Spirit leads faith beyond both extremes and brings it back again to the relational center of being “in Christ.”

When the Word awakens from knowledge into life

One reason this exposition offers such profound theological insight is that it does not separate the Spirit from the Word. Zeal without the Word easily turns into self-assurance, while Bible meditation without the Spirit can harden into dry doctrine. But when the Holy Spirit illuminates the Word, familiar passages no longer remain mere information. They become living truth that pierces the heart, exposes hidden wounds and pride, and calls one to reconsider the choices of life. This is why the same verse may linger only in the mind on one day, and on another bring tears and redirect a life. This is precisely where the faith Pastor David Jang emphasizes begins. Hearing does not simply remain hearing; it ultimately leads to obedience that changes one’s life. The Word does not remain only a sword of judgment; it becomes a mirror that reflects the self, and before that mirror a person finally learns true repentance and new hope.

Fruit is not a sudden burst of fervor, but the long season of sanctification

In Galatians 5, the works of the flesh are presented in the plural, while the fruit of the Spirit is presented in the singular. This distinction shows that the fruit of the Spirit is not a list of isolated virtues, but an integrated character growing from one life. When love stands at the center, joy and peace follow; patience, kindness, and goodness reshape the texture of relationships;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renew the rhythm of life. What matters here is that fruit is not an ornament artificially attached, but something that grows from a transformed root. Sanctification is not a victory completed overnight. It is the journey of one who has already entered grace, yet slowly walks toward a holiness not yet completed. The habits of sin are long-established directions of the soul, and so they do not easily disappear through human resolve alone. But the Holy Spirit does not merely drive us harder to try more; the Spirit plants within us a new desire that makes possible choices once impossible. Therefore, hope does not grow from trusting our own determination, but from the help of the Spirit who lifts us up even in our stumbling. The conflict between the desires of the flesh and the desires of the Spirit is not in itself evidence of despair. Rather, that struggle may be a sign that the soul is still alive and that its longing for grace has not gone out. Just as the groaning in Romans ultimately moves toward hope, so the battle of faith is not a swamp of condemnation but a path that leads us to lean on God again. This is why the sermon’s definition of the righteous person is so deep: not one without blemish, but one who seeks once more to obey the leading of the Spirit. The fact that even failure can become material for sanctification offers the most realistic comfort to frail human beings. Self-control, too, is presented not as the language of suppression, but as the freedom that makes love possible. When the runaway force of desire is stilled, a person can finally see the needs of others, hear the pain of the community, and move into places of service.

Love ultimately becomes the face of the community

The fruit of the Spirit is not completed in isolation. Love is tested before others, peace is revealed in places of conflict, and self-control shines precisely in the moment when one empties oneself in order to preserve relationship. That is why Pastor David Jang speaks of the church as the temple of the Holy Spirit. It does not primarily mean the holiness of a building, but a community in which different people live out their oneness in the gospel. Spiritual gifts may make a person stand out, but without the fruit of love, faith easily becomes harsh. If the presence of the Spirit remains only a source of personal comfort, faith turns into a religion of self-care. But within the true work of the Spirit, a person is ultimately led toward service and sharing, 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 In the end, the age of the Spirit is not an age that produces stronger people, but one that teaches holier love. The church is the place where that love is proven through relationships and the ethics of daily life. If faith is genuine, it must change the expression and language of the community. When gentleness grows in place of sharpness, service in place of self-display, and words of reconciliation in place of division, the gospel finally bears visible fruit. This order, in which character comes before gifts, poses a weighty yet lucid question to today’s church as well.

The question this sermon leaves at the end is simple, yet profound: are we trying to possess the Holy Spirit, or are we asking to be possessed by the Spirit? The gospel is not a power that makes us appear more impressive, but a grace that leads us back again to the Word, back again to choosing love, and back again to walking the path of obedience. Pastor David Jang’s meditation on Galatians does not speak lightly of freedom. True freedom begins only where the frenzy of desire comes to rest, and where a heart renewed before God opens toward its neighbor. Freedom is, in the end, the state in which one who has been grasped by God becomes able to love more deeply in the world. That freedom strips away self-display and flows outward in a love that gives life to others. Is our faith today resting in the safety of form, or is it being slowly renewed in the presence of the Holy Spirit? To remain long before that question may be the deepest biblical meditation this sermon leaves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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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tación sobre Gálatas del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la gracia del Espíritu Santo y la libertad

pastor David Jang

Al detenerse frente a Pentecostés de El Greco, antes incluso que la luz celestial que desciende como fuego, lo primero que se percibe son los rostros de las personas. Sorpresa y temor, temblor y reverencia oscilan dentro de una misma escena, pero sus miradas terminan por converger en un solo centro. La meditación sobre Gálatas del pastor David Jang, fundador de Olivet University, explica precisamente así al Espíritu Santo. El Espíritu Santo no es un adorno añadido en los márgenes de la fe, sino la presencia de Dios que insufla al ser humano un aliento nuevo y cambia la dirección de su fe. Por eso no puede reducirse a una emoción momentánea o a una experiencia excepcional. Se le comprende como una ayuda viva que transforma la estructura del pensamiento, reordena la lógica de los deseos y renueva incluso la manera de amar y servir. El Espíritu Santo no es un ser que simplemente intensifica la atmósfera del culto, sino quien vuelve a tejer poco a poco el carácter de una persona y la cultura de una comunidad. La obra del Espíritu, tal como la presenta esta predicación, está más cerca de la transformación duradera que de la explosión, más cerca del cambio continuo que del instante, y más cerca de la reconfiguración del ser que de la mera emoción.

La libertad no es libertinaje, sino el orden de una vida nueva

La libertad de la que habla Gálatas no consiste en disfrutar sin límites de todo lo que uno desea. Es el orden por el cual la gracia de la redención vuelve a levantar al ser humano, y el comienzo del arrepentimiento en el que el corazón, antes aferrado a su propia justicia, se vuelve hacia Dios. La predicación no considera el pecado solo como una lista de actos equivocados. El pecado es, ante todo, ruptura con Dios; y esa ruptura tuerce la dirección del deseo, distorsiona el lenguaje de las relaciones y, finalmente, hace que la competencia resulte más familiar que el amor. Las contiendas, la envidia, la ira y la codicia no aparecen de repente; son síntomas de un alma que ya se estaba derrumbando por dentro. Por eso el evangelio no es solamente un consuelo que alivia la culpa, sino una gracia que restaura la relación quebrada y abre el camino hacia una obediencia nueva. Cuando falta el Espíritu Santo, la fe se endurece fácilmente en la cáscara rígida del legalismo o, por el contrario, se dispersa en emociones sin centro. Pero el Espíritu atraviesa ambos extremos y devuelve la fe al centro de la relación: “en Cristo”.

Cuando la Palabra despierta y pasa del conocimiento a la vida

Una de las razones por las que esta exposición ofrece una profunda intuición teológica es que no separa al Espíritu de la Palabra. El fervor sin Palabra fácilmente se desliza hacia la autosuficiencia, y la meditación bíblica sin Espíritu se endurece con facilidad en una doctrina seca. Pero cuando el Espíritu ilumina la Palabra, los pasajes conocidos dejan de ser simple información. Se convierten en verdad viva que hiere el corazón, saca a la luz heridas ocultas y orgullo escondido, y obliga a replantear las decisiones de la vida. Esa es la razón por la que, aun leyendo el mismo pasaje, algunos días permanece solo en la mente, mientras que en otros provoca lágrimas y cambia nuestro rumbo. La fe que enfatiza el pastor David Jang comienza precisamente aquí: en escuchar de tal manera que esa escucha no se quede estancada, sino que termine por conducir a una obediencia que transforma la vida. La Palabra no permanece únicamente como espada de juicio, sino que se vuelve un espejo que nos refleja a nosotros mismos; y ante ese espejo, la persona aprende por fin el arrepentimiento verdadero y una esperanza nueva.

El fruto no es un entusiasmo repentino, sino una larga estación de santificación

En Gálatas 5, las obras de la carne aparecen en plural, mientras que el fruto del Espíritu aparece en singular. Esta diferencia muestra que el fruto del Espíritu no es una simple enumeración de virtudes, sino un carácter integrado que brota de una sola vida. Cuando el amor ocupa el centro, le siguen el gozo y la paz; la paciencia, la benignidad y la bondad transforman la textura de las relaciones; y la fidelidad, la mansedumbre y el dominio propio renuevan el ritmo de la vida. Lo importante aquí es que el fruto no es un adorno impuesto a la fuerza, sino algo que crece a partir de un cambio en la raíz. La santificación no es una victoria consumada de la noche a la mañana. Es el camino por el cual quien ya ha entrado en la gracia avanza lentamente hacia una santidad todavía no consumada. Los hábitos del pecado son orientaciones antiguas, y por eso no desaparecen fácilmente solo con decisión humana. Pero el Espíritu Santo no se limita a empujarnos para que nos esforcemos más; Él implanta en nosotros un deseo nuevo que hace posibles elecciones que antes eran imposibles. Por eso la esperanza no nace de confiar en nuestra propia determinación, sino en la ayuda del Espíritu, que nos levanta aun en medio de las caídas. El hecho mismo de que exista un conflicto entre los deseos de la carne y los del Espíritu no es prueba de desesperación. Puede ser, más bien, una señal de que el alma sigue viva y de que el anhelo por la gracia no se ha extinguido. Así como el lamento en Romanos desemboca finalmente en esperanza, también la batalla de la fe no conduce al pantano de la condenación, sino a un nuevo abandono confiado en Dios. Por eso es profunda la definición que ofrece esta predicación: el justo no es quien está libre de toda mancha, sino quien vuelve a someterse a la guía del Espíritu. El hecho de que incluso la caída pueda convertirse en material para la santificación ofrece el consuelo más realista al ser humano frágil. También el dominio propio se presenta no como lenguaje de represión, sino como una libertad que hace posible el amor. Cuando se detiene el desenfreno del deseo, la persona puede por fin ver la necesidad del otro, escuchar el dolor de la comunidad y desplazarse hacia el lugar del servicio.

El amor acaba convirtiéndose en el rostro de la comunidad

El fruto del Espíritu no se completa en soledad. El amor se pone a prueba delante del otro, la paz se manifiesta en el lugar del conflicto, y el dominio propio resplandece precisamente en el momento en que uno se vacía para preservar la relación. Por eso el pastor David Jang habla de la iglesia como templo del Espíritu Santo. Esto no apunta tanto a la santidad de un edificio como a una comunidad en la que personas diferentes viven la unidad dentro del evangelio. Los dones pueden hacer destacar a una persona, pero sin el fruto del amor la fe fácilmente se vuelve áspera. Si la presencia del Espíritu se limita al consuelo individual, la fe se convierte en una religión de autocuidado; pero en la verdadera obra del Espíritu, la persona termina avanzando hacia el servicio, el compartir, el perdón y la reconciliación. En definitiva, la era del Espíritu no es la era que produce personas más fuertes, sino la que enseña un amor más santo. La iglesia es precisamente el lugar donde ese amor se demuestra en las relaciones y en la ética de la vida. Si la fe es genuina, necesariamente transformará el semblante y el lenguaje de la comunidad. Cuando en lugar de aspereza crece la mansedumbre, cuando en vez de exhibición personal surge el servicio, y cuando en lugar de ruptura nacen palabras de reconciliación, entonces el evangelio da por fin un fruto visible. Este orden, que sitúa el carácter por encima de los dones, lanza también a la iglesia de hoy una pregunta seria y luminosa.

La pregunta final que deja esta predicación es sencilla, pero profunda: ¿tratamos de poseer al Espíritu Santo, o pedimos ser cautivados por Él? El evangelio no es una fuerza que nos hace parecer personas más admirables, sino una gracia que nos hace volver una vez más a la Palabra, volver a elegir el amor y volver a caminar por la senda de la obediencia. La meditación sobre Gálatas del pastor David Jang no habla de la libertad de manera ligera. La verdadera libertad comienza cuando se detiene el desenfreno del deseo y un corazón renovado delante de Dios se abre hacia el prójimo. La libertad es, en última instancia, el estado en el que una persona aferrada por Dios puede amar más en medio del mundo. Esa libertad reduce la autoexaltación y fluye hacia un amor que da vida al prójimo. ¿Permanece hoy nuestra fe en la seguridad de las formas, o está siendo renovada poco a poco en la presencia del Espíritu? Permanecer largo tiempo ante esa pregunta es, quizá, la meditación bíblica más profunda que deja esta predicaci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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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ダビデ牧師(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のガラテヤ書黙想、聖霊と自由の恵み

張ダビデ牧師

エル・グレコの《ペンテコステ》の前に立つとき、炎のように降り注ぐ天の光よりも先に、人々の顔が目に入る。驚きと恐れ、震えと畏敬が一つの画面の中で揺れているが、その視線はついに一つの中心へと集まっていく。張ダビデ牧師(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のガラテヤ書黙想は、まさにその場面のように聖霊を語る。聖霊は信仰の周縁に付け加えられる装飾ではなく、人間の内に新しい息を吹き込み、信仰の方向を変えてくださる神の臨在である。だから聖霊は、一瞬の高揚や特別な体験へと縮小されない。思考の構造を変え、欲望の秩序を組み替え、愛し仕えるあり方にまで新しくしてくださる、生きた助けとして理解される。聖霊は礼拝の雰囲気だけを高める存在ではなく、一人の人格と共同体の文化をゆっくりと編み直していかれるお方である。説教が語る聖霊の働きは、爆発よりも持続、瞬間よりも変化、感情よりも存在そのものの再構成に、より近いものとして響いてくる。

自由は放ではなく、新しいいのちの秩序である
ガラテヤ書が語る自由は、したいことを思うままに享受する解放ではない。それは贖いの恵みが人を新たに立て上げる秩序であり、自分の義にしがみついていた心が神へと立ち返る悔い改めの始まりである。この説教は、罪をいくつかの誤った行為の一覧としてだけ見ない。罪とはまず神との断絶であり、その断絶は欲望の向きをねじ曲げ、関係の言葉を濁らせ、ついには愛よりも競争に慣れさせてしまう。争いとねたみ、怒りと貪欲は、突然降って湧いた結果ではなく、すでに内側で崩れ始めていた魂の徴候なのである。だから福音は、ただ罪責感を和らげる慰めではなく、断たれた関係を回復し、新しい従順への道を開く恵みである。聖霊がないとき、信仰はたやすく律法主義という固い殻になるか、逆に中心を失った感情として散ってしまう。しかし聖霊はその両極端を越えて、信仰を再び「キリストにあって」という関係の中心へと連れ戻してくださる。

御言葉が知識からいのちへと目めるとき
この講解が深い神学的洞察を与える理由は、聖霊と御言葉を切り離さないからである。御言葉のない熱心は、たやすく自己確信へと流れ、聖霊のない聖書黙想は、乾いた教理として固まってしまいやすい。しかし聖霊が御言葉を照らされるとき、慣れ親しんだ聖句はもはや情報のままでは残らない。それは人の心を刺し、隠された傷や高慢をあらわにし、人生の選択をもう一度問い直させる、生きた真理となる。同じ箇所を読んでも、ある日は頭の中だけを巡り、またある日は涙を呼び、進む方向を変えさせる理由がここにある。張ダビデ牧師が強調する信仰は、まさにここから始まる。ただ聞くだけにとどまらず、ついには人生を変える従順へとつながっていくのである。御言葉は裁きの剣としてだけ残るのではなく、自分自身を映す鏡となり、その鏡の前で人はようやく真実な悔い改めと新しい希望を学ぶ。

りは一度きりの熱狂ではなく、長い聖化の季節である
ガラテヤ書5章では、肉の業は複数形で、聖霊の実は単数形で示されている。この違いは、聖霊の実がいくつもの徳目の羅列ではなく、一つのいのちから育っていく統合された品性であることを示している。愛が中心に置かれるとき、喜びと平和がそれに続き、忍耐と慈愛と善意が人間関係の肌理を変え、誠実と柔和と自制が人生のリズムを新しくする。ここで重要なのは、実りが無理やり取りつける飾りではなく、根の変化から育つという事実である。聖化は、一朝一夕に完成される勝利ではない。すでに恵みのうちへと入れられた人が、なお完成していない聖さへ向かって、ゆっくりと歩んでいく旅路である。罪の習慣は長く続いた方向性であるゆえに、人間の決意だけでは簡単には消えない。しかし聖霊は、ただもっと努力しなさいと押しつけるのではなく、以前には不可能であった選択を可能にする新しい願いを植えつけてくださる。それゆえ希望は、自分の決意を信じるところから来るのではなく、倒れた中でも再び立ち上がらせてくださる聖霊の助けのうちに育つ。肉の欲望と聖霊の願いが衝突するという事実そのものが、絶望の証拠なのではない。むしろその戦いは、なお魂が生きており、恵みへの渇望が消えていないしるしかもしれない。ローマ書の嘆きがついには希望へと移っていくように、信仰の戦いもまた、断罪の沼ではなく、再び神に寄りかかるための通路となる。義人とは傷のない人ではなく、再び聖霊の導きに従おうとする人である、という説教の定義が深く響くのもそのためである。つまずきさえ終わりではなく、聖化の材料になりうるという事実は、弱い人間にとって最も現実的な慰めとなる。自制もまた、抑圧の言葉ではなく、愛を可能にする自由として示される。欲望の暴走が止まるとき、人はようやく他者の必要を見、共同体の痛みに耳を傾け、仕える場へと移っていくことができる。

愛はついに共同体の顔となる
聖霊の実は、一人だけで完成するものではない。愛は他者の前で試され、平和は葛藤の場であらわれ、自制は関係を守るために自分を空しくする瞬間にこそ輝く。だから張ダビデ牧師は、教会を聖霊の宮と語るのである。それは建物の聖さよりも、異なる人々が福音のうちに一つであることを生きる共同体を意味する。賜物は人を目立たせることがあっても、愛の実がなければ信仰はたやすく荒々しくなる。聖霊の臨在が個人の慰めにだけとどまるなら、信仰は自己ケアの宗教になってしまう。しかし真の聖霊の働きの中で、人はついに仕え合い、分かち合い、赦し合い、和解する場へと進んでいく。結局、聖霊の時代とは、より強い人をつくる時代ではなく、より聖なる愛を学ぶ時代である。教会はまさに、その愛が関係と生活の倫理によって証明される場所である。信仰が真実であるなら、それは必ず共同体の表情と言葉を変える。鋭さの代わりに柔和が、自己誇示の代わりに仕える心が、断絶の代わりに和解の言葉が育つとき、福音はようやく目に見える実を結ぶ。賜物よりも品性が先であるというこの秩序は、今日の教会にも重く、しかも澄んだ問いを投げかける。

この説教が最後に残す問いは単純でありながら深い。私たちは聖霊を所有しようとしているのか、それとも聖霊に捕らえられることを願っているのか。福音は、より立派な人に見せる力ではなく、再び御言葉へ立ち返らせ、再び愛を選ばせ、再び従順の道を歩ませる恵みである。張ダビデ牧師のガラテヤ書黙想は、自由を軽く語らない。真の自由は、欲望の暴走が止まり、神の前で新しくされた心が隣人へと開かれる場において、初めて始まる。自由とは結局、神に捕らえられた人が、この世の中でもっと愛することができる状態である。その自由は、自己誇示をそぎ落とし、隣人を生かす愛へと流れていく。今日、私たちの信仰は形式の安全さにとどまっているのか、それとも聖霊の臨在の中で少しずつ新しくされているのか。その問いの前に長くとどまることこそ、この説教が残す最も深い聖書黙想な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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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大卫牧师(Olivet University)的加拉太书默想:圣灵与自由的恩典

张大卫牧师

站在埃尔·格列柯的《五旬节》前,最先映入眼帘的,并不是那如火降下的天光,而是画中众人的面容。惊讶、惧怕、战栗与敬畏,在同一幅画面中彼此摇动,但他们的目光最终都汇聚于一个中心。张大卫牧师(Olivet University)的《加拉太书》默想,正如这一幕般诠释圣灵。圣灵不是附加在信仰边缘的装饰,而是将新的气息吹入人里面、转变信心方向的神的临在。因此,圣灵不能被缩减为一时的激动或某种特殊体验。祂是活着的帮助者,更新人的思想结构,重新整理欲望的秩序,甚至改变人去爱与服事的方式。圣灵不是单单提升敬拜氛围的存在,而是那位慢慢重塑一个人的品格与一个群体文化的主。这篇讲道所说的圣灵工作,比起爆发更接近持久,比起瞬间更接近转变,比起情绪更接近存在本身的重新构成。

自由不是放,而是新生命的秩序

《加拉太书》所说的自由,并不是随心所欲的释放,而是救赎恩典重新建立人的秩序,是原本紧抓自义之心转向神的悔改起点。讲道并不只是把罪看作若干错误行为的清单。罪首先是与神的隔绝;而这种隔绝会扭曲欲望的方向,使关系中的语言失去纯净,最终让人对竞争比对相爱更感到熟悉。纷争、嫉妒、愤怒与贪欲,并不是突然坠下的结果,而是灵魂内部早已开始崩塌的征兆。因此,福音不只是减轻罪疚感的安慰,更是恢复断裂关系、开启全新顺服之路的恩典。没有圣灵时,信仰很容易变成律法主义坚硬的外壳,或者反过来,散落成没有中心的情绪。然而圣灵带人越过这两个极端,把信仰重新带回“在基督里”这一关系性的中心。

话语识苏生命

这篇讲解之所以带来深刻的神学洞见,是因为它并没有把圣灵与圣言分开。没有圣言的热心,很容易流于自我确信;没有圣灵的圣经默想,也很容易凝固成干枯的教义。然而,当圣灵光照圣言时,熟悉的经文便不再只是信息。它会刺透人的内心,揭露隐藏的伤口与骄傲,使人重新思索生命中的选择,成为活泼的真理。即使读的是同一段经文,有些日子只是停留在头脑里,有些日子却能使人流泪、改变方向,原因就在这里。张大卫牧师所强调的信心,正是从这里开始的:听见并不停留在听见,而是最终走向改变生命的顺服。圣言不只是成为审判的刀,也成为照见自己的镜子;人在这面镜子前,才真正学会真实的悔改与新的盼望。

果子不是一,而是漫的季

在《加拉太书》第五章中,“肉体的事”是复数,“圣灵的果子”却是单数。这一差异显示,圣灵的果子并不是多种美德的简单罗列,而是从同一个生命中长出来的整全品格。当爱居于中心时,喜乐与和平随之而来;恒久忍耐、恩慈与良善改变关系的质地;忠信、温柔与节制则重新塑造生活的节奏。这里重要的是,果子并不是勉强挂上的装饰,而是从根的改变中自然生长出来。成圣并不是一夜之间完成的胜利,而是已经进入恩典中的人,朝向尚未完全的圣洁缓缓前行的旅程。罪的习惯是一种长期形成的方向性,因此单靠人的决心很难轻易消失。然而,圣灵并不是只催逼人“再努力一点”,而是把过去不可能的选择,变成可以做出的新渴望。

所以,盼望不是来自相信自己的意志,而是来自圣灵在跌倒中仍再次扶起人的帮助。肉体的私欲与圣灵的心意彼此争战,这件事本身并不是绝望的证据;相反,那场争战也许正表明灵魂仍然活着,对恩典的渴慕并没有熄灭。正如《罗马书》中的叹息最终走向盼望,信仰中的争战也不是把人拖入定罪的泥沼,而是再次引人倚靠神。因此,讲道中对义人的定义格外深刻:义人不是毫无瑕疵的人,而是愿意再次顺服圣灵引导的人。连跌倒本身都不一定是终点,反而能够成为成圣的材料;这一事实,给软弱的人带来最现实的安慰。节制也不是压抑的语言,而是使爱成为可能的自由。当欲望的狂奔停下来时,人才能真正看见他人的需要,听见群体的伤痛,并走向服事的位置。

群体的面容

圣灵的果子并不是一个人独自完成的。爱是在他人面前受考验的;和平是在冲突之处显明的;节制则是在为了守护关系而愿意倒空自己的时刻,才真正发出光芒。因此,张大卫牧师称教会为圣灵的殿。这所指的,并不是建筑物本身的神圣,而是不同的人在福音中活出合一的群体。恩赐也许能让人显得突出,但若没有爱的果子,信仰就很容易变得粗糙。若圣灵的同在只停留在个人的安慰层面,信仰就会沦为一种自我照顾的宗教;但在真正的圣灵工作中,人最终会走向服事、分享、饶恕与和好的位置。说到底,圣灵的时代不是塑造更强势之人的时代,而是学习更圣洁之爱的时代。教会正是那份爱在关系中、在生活伦理中得以证明的地方。若信心是真实的,它必然会改变群体的表情与语言。当温柔取代尖锐,服事取代自我炫耀,和好的句子取代断裂的表达时,福音才真正结出可见的果子。恩赐之前,品格优先——这一秩序,也向今日的教会发出沉重而清澈的提问。

这篇讲道最后留下的问题,简单却深刻:我们是在试图拥有圣灵,还是在祈求被圣灵掌管?福音并不是让人看起来更了不起的力量,而是使人重新回到圣言、重新选择爱、重新走上顺服道路的恩典。张大卫牧师对《加拉太书》的默想,并没有轻率地谈论自由。真正的自由,是当欲望的失控止息,一个在神面前被更新的心开始向邻舍敞开时,才真正开始。自由终究是一种状态:一个被神抓住的人,在这世界中变得更能去爱。这样的自由会削弱自我夸耀,并流淌成使邻舍得生命的爱。

今天,我们的信仰是停留在形式的安全感里,还是正在圣灵的临在中一点点被更新?能够长久停留在这个问题之前,本身也许就是这篇讲道所留下的最深的圣经默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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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eur David Jang : Galates, Saint-Esprit et liberté

Pasteur David Jang

Devant La Pentecôte d’El Greco, ce ne sont pas d’abord les langues de feu qui attirent le regard, mais les visages. On y lit l’étonnement, la crainte, le tremblement et l’adoration. Pourtant, tous les regards convergent vers un même centre. La méditation du pasteur David Jang sur l’Épître aux Galates décrit le Saint-Esprit de cette manière : non comme un élément secondaire de la foi, mais comme la présence vivante de Dieu qui redonne souffle à l’être humain et réoriente toute son existence.

Dans cette lecture spirituelle des Galates, le Saint-Esprit ne se réduit ni à une émotion passagère ni à une expérience religieuse spectaculaire. Il transforme la pensée, réorganise les désirs, purifie les motivations et renouvelle la manière d’aimer, de servir et de vivre en communauté. Ainsi, la grâce du Saint-Esprit ne concerne pas seulement l’intensité d’un culte ; elle façonne patiemment le caractère d’une personne et la culture d’une Église. L’œuvre de l’Esprit touche moins à l’instant qu’à la durée, moins à l’excitation qu’à la transformation intérieure.

La liberté chrétienne selon l’Épître aux Galates

L’un des grands thèmes de l’Épître aux Galates est la liberté chrétienne. Mais cette liberté n’est jamais présentée comme une permission de faire tout ce que l’on veut. Elle n’est pas le désordre des désirs, ni une autonomie sans limites. Elle est, au contraire, l’ordre nouveau qui naît de la grâce. Elle est le commencement d’une vie restaurée devant Dieu.

Dans la méditation du pasteur David Jang, le péché n’est pas seulement une série de fautes morales. Il est d’abord une rupture de relation avec Dieu. De cette rupture naissent ensuite les conflits, la jalousie, la colère, l’envie, la rivalité et l’orgueil. Ces réalités ne surgissent pas par hasard ; elles révèlent un cœur désorienté. C’est pourquoi l’Évangile n’est pas simplement une consolation psychologique. Il est la bonne nouvelle d’une relation rétablie, d’un pardon reçu et d’un chemin nouveau ouvert par la grâce.

Sans le Saint-Esprit, la foi tombe facilement dans deux excès. D’un côté, elle devient légaliste, rigide, enfermée dans l’effort religieux. De l’autre, elle se disperse dans une spiritualité sans centre, dominée par l’émotion. Mais l’Esprit ramène toujours le croyant à l’essentiel : vivre en Christ, marcher par la foi et laisser l’amour devenir concret.

Quand la Parole de Dieu devient vie

La force théologique de cette méditation biblique tient aussi au fait qu’elle ne sépare jamais la Parole de Dieu du Saint-Esprit. Un enthousiasme religieux sans la Parole conduit souvent à l’illusion de soi. Une lecture de la Bible sans l’Esprit, en revanche, peut se durcir en doctrine sèche. Mais lorsque le Saint-Esprit éclaire les Écritures, les versets connus cessent d’être de simples informations. Ils deviennent une parole vivante.

C’est alors que la Bible révèle les blessures cachées, met en lumière l’orgueil, corrige les faux appuis et invite à un vrai changement de vie. Un même passage peut, certains jours, rester au niveau de l’intellect ; mais à d’autres moments, il touche le cœur, fait naître les larmes, provoque la repentance et conduit à un nouveau choix. C’est là que commence la foi authentique : lorsque l’écoute de la Parole devient obéissance.

Dans cette perspective, la Bible n’est pas seulement une règle extérieure. Elle devient un miroir spirituel. Devant ce miroir, l’être humain découvre ce qu’il est réellement et apprend à revenir vers Dieu avec humilité. La méditation sur l’Épître aux Galates proposée par David Jang insiste précisément sur ce point : la foi véritable n’est pas une simple adhésion intellectuelle, mais une transformation concrète de la vie.

Le fruit de l’Esprit : une œuvre de sanctification

Au cœur de Galates 5, Paul oppose les œuvres de la chair au fruit de l’Esprit. Ce contraste est décisif. Les œuvres de la chair apparaissent au pluriel, tandis que le fruit de l’Esprit est au singulier. Cela signifie que le fruit de l’Esprit n’est pas une liste dispersée de qualités morales, mais l’expression d’une vie unifiée, transformée par Dieu.

L’amour en est le centre. De cet amour découlent la joie, la paix, la patience, la bonté, la bienveillance, la fidélité, la douceur et la maîtrise de soi. Ces vertus ne sont pas des décorations extérieures que l’on accroche à son comportement. Elles poussent à partir d’une racine nouvelle. Le cœur change, puis la vie porte du fruit.

C’est pourquoi la sanctification n’est pas un succès instantané. Elle est un chemin. Elle est la longue saison durant laquelle une personne déjà entrée dans la grâce apprend, jour après jour, à ressembler davantage au Christ. Les habitudes du péché sont anciennes, profondément enracinées, et elles ne disparaissent pas par la seule force de la volonté. Mais le Saint-Esprit ne se contente pas d’exiger plus d’efforts ; il dépose en nous un désir nouveau, une orientation nouvelle, une capacité nouvelle à choisir ce qui était auparavant impossible.

Ainsi, l’espérance chrétienne ne repose pas sur la fermeté de nos résolutions, mais sur l’action fidèle de Dieu. Même les combats intérieurs ont un sens. Le conflit entre la chair et l’Esprit n’est pas toujours un signe d’échec ; il peut être la preuve qu’une vie spirituelle est encore en mouvement. Une âme qui lutte n’est pas forcément une âme perdue. Elle peut être une âme que Dieu travaille encore.

Dans cette lecture, le juste n’est pas celui qui ne tombe jamais, mais celui qui revient à Dieu, se relève par la grâce et désire de nouveau marcher selon l’Esprit. Cette vision de la sanctification est à la fois réaliste et profondément consolante. Elle parle à tous ceux qui connaissent la fragilité, la fatigue et les rechutes, mais qui refusent de renoncer à l’espérance.

La maîtrise de soi : une vraie liberté

La liberté chrétienne n’est donc pas l’absence de limites. Elle est la possibilité nouvelle d’aimer justement. La maîtrise de soi, dans cette perspective, n’est pas une oppression intérieure. Elle est une libération. Quand les désirs cessent de gouverner toute la vie, le regard s’ouvre enfin vers autrui. On commence à voir la souffrance de l’autre, à entendre les besoins de la communauté, à répondre avec compassion plutôt qu’avec égoïsme.

La véritable liberté ne consiste pas à suivre tous ses élans, mais à être rendu capable du bien. Voilà pourquoi l’Épître aux Galates relie si fortement la liberté à l’amour. L’homme libre en Christ n’est pas celui qui vit pour lui-même ; c’est celui qui peut enfin se donner.

L’amour, visage visible de la communauté chrétienne

Le fruit de l’Esprit ne grandit jamais dans l’isolement. L’amour se vérifie dans la relation. La paix se révèle dans les conflits. La patience s’éprouve dans l’attente. La douceur apparaît lorsque la tension monte. La maîtrise de soi se manifeste lorsque l’on choisit de préserver une relation au lieu d’imposer sa volonté.

C’est dans ce sens que David Jang parle de l’Église comme du temple du Saint-Esprit. Il ne s’agit pas d’abord d’un lieu sacré au sens architectural, mais d’un peuple transformé par l’Évangile. Une communauté chrétienne n’est pas reconnue à la seule intensité de ses dons, mais à la qualité de son amour. Les dons peuvent impressionner ; seul le fruit révèle la maturité.

Si la présence du Saint-Esprit se limite au bien-être personnel, la foi risque de devenir une religion centrée sur soi. Mais lorsque l’Esprit agit véritablement, il conduit toujours vers le service, le partage, le pardon et la réconciliation. Une Église remplie de l’Esprit devient alors un espace où les relations changent réellement : la dureté laisse place à la douceur, l’orgueil au service, la division à la paix.

Cette priorité du caractère sur les dons est une interpellation forte pour l’Église contemporaine. La question n’est pas seulement de savoir si une communauté est active, visible ou influente. La vraie question est de savoir si elle porte le fruit de l’Esprit.

Être saisi par l’Esprit plutôt que vouloir le posséder

La question finale de cette méditation est simple, mais profonde : cherchons-nous à posséder le Saint-Esprit, ou désirons-nous être saisis par lui ? L’Évangile ne nous est pas donné pour paraître plus spirituels, plus puissants ou plus admirables. Il nous est donné pour revenir à la Parole, choisir à nouveau l’amour et marcher dans l’obéissance.

Dans la méditation du pasteur David Jang sur l’Épître aux Galates, la liberté n’est jamais banalisée. La vraie liberté commence lorsque le cœur, renouvelé par Dieu, s’ouvre au prochain. Elle se manifeste lorsque l’ego recule, lorsque le désir cesse de dominer, lorsque l’amour devient plus fort que la recherche de soi.

En définitive, la liberté selon l’Évangile est l’état d’une personne tenue par Dieu et rendue capable d’aimer davantage dans le monde. C’est une liberté qui renonce à l’apparence pour choisir le service, qui abandonne l’orgueil pour faire place à la grâce, et qui transforme peu à peu la foi en une vie visible.

Aujourd’hui encore, cette question demeure : notre foi reste-t-elle enfermée dans la sécurité des formes religieuses, ou se renouvelle-t-elle réellement dans la présence du Saint-Esprit ? Demeurer devant cette question, avec sincérité et persévérance, est peut-être l’une des plus belles manières d’entrer dans une véritable méditation biblique sur les Galates, le fruit de l’Esprit, la sanctification et la liberté chrétie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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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의 갈라디아서 묵상, 성령과 자유의 은혜

장재형 목사

엘 그레코의 「오순절」 앞에 서면, 불처럼 내리는 하늘의 빛보다 먼저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놀람과 두려움, 떨림과 경외가 한 화면 안에서 흔들리지만, 그 시선은 끝내 하나의 중심으로 모인다.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의 갈라디아서 묵상은 바로 그 장면처럼 성령을 설명한다. 성령은 신앙의 가장자리에서 덧붙는 장식이 아니라, 인간 안에 새 숨을 불어넣어 믿음의 방향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임재다. 그래서 성령은 한순간의 흥분이나 특별한 체험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생각의 구조를 바꾸고, 욕망의 질서를 재배열하며, 사랑하고 섬기는 방식까지 새롭게 하시는 살아 있는 도우심으로 이해된다. 성령은 예배의 분위기만 높이는 존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성품과 공동체의 문화를 천천히 다시 짜 가시는 분이다. 설교가 말하는 성령의 역사는 폭발보다 지속, 순간보다 변화, 감정보다 존재의 재구성에 더 가까이 닿아 있다.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새 삶의 질서다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는 해방이 아니다. 그것은 구속의 은혜가 사람을 다시 세우는 질서이며, 자기 의를 붙들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개의 시작이다. 설교는 죄를 몇 가지 잘못된 행위의 목록으로만 보지 않는다. 죄는 먼저 하나님과의 단절이며, 그 단절은 욕망의 방향을 비틀고 관계의 언어를 흐리게 하며, 마침내 사랑보다 경쟁을 익숙하게 만든다. 분쟁과 시기, 분노와 탐심은 갑자기 떨어진 결과가 아니라, 이미 안에서 무너지고 있던 영혼의 징후다. 그래서 복음은 단지 죄책감을 덜어 주는 위로가 아니라,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여 새로운 순종의 길을 여는 은혜다. 성령이 없을 때 신앙은 쉽게 율법주의의 단단한 껍질이 되거나, 반대로 중심 없는 감정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성령은 그 양극단을 지나, 신앙을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관계의 중심으로 데려간다.

말씀이 지식에서 생명으로 깨어날 때

이 강해가 깊은 신학적 통찰을 주는 이유는 성령과 말씀을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 없는 열심은 쉽게 자기 확신으로 흐르고, 성령 없는 성경 묵상은 메마른 교리로 굳어지기 쉽다. 그러나 성령이 말씀을 비추실 때, 익숙한 구절은 더 이상 정보로 남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찌르고, 감추어진 상처와 교만을 드러내며, 삶의 선택을 다시 묻게 하는 살아 있는 진리가 된다. 같은 구절을 읽어도 어떤 날에는 머리에서만 맴돌고, 어떤 날에는 눈물을 부르며 방향을 바꾸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는 믿음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듣는 것이 머무르지 않고, 결국 삶을 바꾸는 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말씀은 판단의 칼로만 남지 않고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며, 그 거울 앞에서 사람은 비로소 진실한 회개와 새 소망을 배운다.

열매는 단번의 열광이 아니라 긴 성화의 계절이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육체의 일은 복수로, 성령의 열매는 단수로 제시된다. 이 차이는 성령의 열매가 여러 덕목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에서 자라나는 통합된 성품임을 보여 준다. 사랑이 중심에 놓일 때 희락과 화평이 뒤따르고,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이 관계의 결을 바꾸며,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삶의 리듬을 새롭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열매가 억지로 매다는 장식이 아니라 뿌리의 변화에서 자라난다는 사실이다. 성화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승리가 아니다. 이미 은혜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거룩함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여정이다. 죄의 습관은 오래된 방향성이기에 인간의 결심만으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은 단지 더 애쓰라고 밀어붙이지 않으시고, 이전에는 불가능하던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소욕을 심어 주신다. 그러므로 소망은 자신의 결심을 믿는 데서 오지 않고, 넘어짐 속에서도 다시 일으키시는 성령의 도우심에서 자라난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충돌한다는 사실 자체가 절망의 증거는 아니다. 오히려 그 싸움은 아직 영혼이 살아 있고, 은혜를 향한 갈망이 꺼지지 않았다는 표지일 수 있다. 로마서의 탄식이 결국 소망으로 넘어가듯, 신앙의 전쟁도 정죄의 늪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께 기대게 하는 통로가 된다. 의인은 흠 없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려는 사람이라는 설교의 정의도 그래서 깊다. 넘어짐조차 끝이 아니라 성화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연약한 인간에게 가장 현실적인 위로가 된다. 절제 역시 억압의 언어가 아니라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로 제시된다. 욕망의 폭주가 멈출 때 사람은 비로소 타인의 필요를 보고, 공동체의 아픔을 듣고, 섬김의 자리로 옮겨 갈 수 있다.

사랑은 결국 공동체의 얼굴이 된다

성령의 열매는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랑은 타인 앞에서 시험받고, 화평은 갈등의 자리에서 드러나며, 절제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비우는 순간에 비로소 빛난다. 그래서 장재형 목사는 교회를 성령의 전으로 말한다. 그것은 건물의 거룩함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복음 안에서 하나됨을 살아 내는 공동체를 뜻한다. 은사가 사람을 돋보이게 할 수는 있어도, 사랑의 열매가 없으면 신앙은 쉽게 거칠어진다. 성령의 임재가 개인의 위로에만 머무르면 신앙은 자기 돌봄의 종교가 되지만, 참된 성령의 역사 안에서 사람은 결국 섬김과 나눔, 용서와 화해의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결국 성령의 시대는 더 강한 사람을 만드는 시대가 아니라, 더 거룩한 사랑을 배우는 시대다. 교회는 바로 그 사랑이 관계와 삶의 윤리로 증명되는 자리다. 믿음이 참되다면 그것은 반드시 공동체의 표정과 언어를 바꾼다. 날카로움 대신 온유가, 자기 과시 대신 섬김이, 단절 대신 화해의 문장이 자라날 때 복음은 비로소 눈에 보이는 열매를 맺는다. 은사보다 성품이 먼저라는 이 질서는 오늘의 교회에도 무겁고도 맑은 질문을 던진다.

이 설교가 마지막에 남기는 물음은 단순하지만 깊다. 우리는 성령을 소유하려 하는가, 아니면 성령께 사로잡히기를 구하는가. 복음은 더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다시 말씀으로 돌아오게 하고 다시 사랑을 선택하게 하며 다시 순종의 길을 걷게 하는 은혜다. 장재형 목사의 갈라디아서 묵상은 자유를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 참된 자유는 욕망의 폭주가 멈추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워진 마음이 이웃을 향해 열리는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자유는 결국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세상 속에서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상태다. 그 자유는 자기 과시를 덜어 내고, 이웃을 살리는 사랑으로 흘러간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형식의 안전함에 머무르고 있는가, 아니면 성령의 임재 안에서 조금씩 새로워지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 오래 머무는 것이야말로 이 설교가 남기는 가장 깊은 성경 묵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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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osición de Efesios 4 : una comunidad de fe madura forjada por el amor y la verdad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El escritor ruso Aleksandr Solzhenitsyn dijo: “Una sola palabra de verdad pesa más que el mundo entero”. Así como su frase atravesó la oscuridad de su tiempo y despertó la dignidad de la existencia humana, también en el mundo de la fe la verdad es la estructura más firme que sostiene a la comunidad. Sin embargo, si sobre esa estructura no se reviste la carne llamada “amor”, la verdad puede convertirse en una hoja fría que hiere a los demás. A través de su exposición de Efesios 4, el pastor David Jang nos invita a una profunda reflexión sobre cómo la verdad y el amor se hacen un solo cuerpo y llevan a la iglesia a la madurez.

La sinfonía de unidad que surge de la diversidad de dones

A menudo malinterpretamos que solo los talentos sobresalientes o los cargos visibles son los que guían la obra de Dios. Pero el pastor David Jang define a la iglesia como “el cuerpo de Cristo”, y desde ese punto corrige de raíz nuestra manera de entender los dones. Así como cada órgano del cuerpo cumple una función propia en su lugar, todos los dones dentro de la iglesia no representan una diferencia de superioridad o inferioridad, sino únicamente una diferencia de función.

Cuando el lugar que recibe aplausos y el lugar que sirve sin nombre no se excluyen mutuamente, sino que se conectan, la comunidad finalmente adquiere una vitalidad sana. Cuando se establece una cultura de cooperación en lugar de competencia, la adoración y la administración, la misión y el cuidado pastoral fluyen como una sola y hermosa melodía. El pastor David Jang sitúa la esencia del liderazgo no en “quién es más alto”, sino en “ayudar a que cada miembro sirva con gozo según el don que ha recibido”.

El camino hacia una madurez personal donde el conocimiento y la vida coinciden

La madurez no significa simplemente acumular más información. En la tradición hebrea, la expresión “conocer” (yada) alude a una comunión personal profunda y a una participación vivencial con el objeto conocido. El pastor David Jang advierte contra el peligro de que el conocimiento de Cristo quede disecado como un simple dato en la mente. La verdadera reflexión teológica solo se completa cuando la verdad de la Escritura se traduce en formas concretas de vida en la cotidianidad del creyente.

La fe sin conocimiento fácilmente se reduce a un entusiasmo ciego, mientras que el conocimiento sin fe solo produce discusiones vacías. La iglesia debe alzar el vuelo con dos alas: una, firme, que es el sistema doctrinal; y otra, ardiente, que es la experiencia de la presencia del Espíritu Santo. Cuando se produce este santo círculo virtuoso de vivir conforme a lo aprendido y aprender conforme a lo vivido, una fe que antes era como la de un niño crece hasta alcanzar una madurez que no se deja sacudir por modas pasajeras ni por enseñanzas distorsionadas.

El valor de decir la verdad en amor

El secreto más profundo de la unidad es, al final, el amor. La verdad sin amor tiende a convertirse en arrogancia, y el amor sin verdad corre el riesgo de degenerar en una transigencia cobarde. La exhortación de Efesios 4 —“hablando la verdad en amor, crezcamos en todo en aquel que es la cabeza”— es una señal eterna para nuestra fe. El pastor David Jang explica que el amor no es un simple juego emocional, sino una decisión voluntaria y un hábito: cubrir las faltas del otro y compartir de buena gana la responsabilidad.

En los momentos de conflicto, pensar primero en el bien de la comunidad en vez de imponer la propia opinión, y ser capaces de expresar incluso una verdad dolorosa con el lenguaje del amor, constituye la señal más clara de la madurez. Así como los huesos secos del valle de Ezequiel se unieron por el viento del Espíritu y por los lazos del amor hasta formar un gran ejército, también nosotros debemos edificar el cuerpo de Cristo llenando con amor las carencias de los unos y los otros.

La esperanza del mañana que nace de las pequeñas obediencias cotidianas

Hoy en día, a la iglesia se le exige una responsabilidad pública hacia el mundo más allá de sus muros. Una fe madura debe demostrarse en una vida concreta que se solidariza con el dolor de la comunidad local y practica la justicia y la misericordia.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que esta práctica no comienza con grandes consignas, sino con “pequeños pasos”: restaurar el culto familiar, animar a los compañeros y bendecir a los vecinos.

Incluso en una época en la que lo digital forma parte de la vida diaria, lo esencial no ha cambiado: la comunión profunda dentro de una comunidad que se encuentra cara a cara. Debemos expandir el evangelio aprovechando la comodidad de lo digital, sin perder el equilibrio que preserva la espiritualidad del encuentro real, donde partimos el pan juntos y oramos unidos. El camino que propone el pastor David Jang no es un ideal inalcanzable. En la ayuda del Espíritu Santo, una sola palabra amable o una decisión honesta elegida hoy puede unirse a muchas otras y transformar el mañana de la iglesia.

¿Hasta dónde hemos crecido ahora como cuerpo de Cristo? Debemos preguntarnos en silencio si acaso hemos herido a alguien en nombre de la verdad, o si, con la excusa del amor, hemos soltado una verdad que debíamos sostener. Anhelo que sobre este camino estrecho pero glorioso, en el que nos edificamos unos a otros diciendo la verdad en amor, repose la respuesta sincera de todos nosot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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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osition d’Éphésiens 4 – Pasteu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L’écrivain russe de l’ex-Union soviétique Alexandre Soljenitsyne a dit : « Une seule parole de vérité pèse plus lourd que le monde entier. » De même que cette phrase a percé les ténèbres de son époque pour réveiller la dignité de l’existence humaine, dans l’univers de la foi aussi, la vérité constitue l’ossature la plus solide qui soutient la communauté. Mais si cette ossature n’est pas revêtue de la chair qu’est l’« amour », la vérité peut devenir une lame froide qui blesse les uns et les autres. À travers son exposition d’Éphésiens 4, le pasteur David Jang nous invite à une profonde réflexion sur la manière dont la vérité et l’amour s’unissent pour conduire l’Église à la maturité.

La symphonie de l’unité façonnée par la diversité des dons

Nous nous trompons souvent en pensant que seuls les talents remarquables ou les fonctions visibles conduisent l’œuvre de Dieu. Pourtant, le pasteur David Jang définit l’Église comme le « corps du Christ » et, à partir de là, corrige en profondeur notre manière de considérer les dons. De même que chaque organe du corps remplit une fonction propre selon sa place, tous les dons dans l’Église ne se distinguent pas par une hiérarchie de valeur, mais simplement par une différence de rôle.

Lorsque la place qui reçoit les applaudissements et celle qui sert sans être nommée ne se repoussent pas mais se relient l’une à l’autre, la communauté acquiert enfin une vitalité saine. Quand une culture de coopération remplace la compétition, le culte et l’administration, la mission et l’accompagnement des autres se fondent en une seule et belle mélodie. Pour le pasteur David Jang, l’essence du leadership ne réside pas dans la question de savoir « qui est le plus élevé », mais dans le fait « d’aider chaque membre à servir avec joie selon le don qu’il a reçu ».

Le chemin d’une maturité personnelle où la connaissance et la vie ne font qu’un

La maturité ne signifie pas simplement accumuler davantage d’informations. Dans la tradition hébraïque, le verbe « connaître » (yada) renvoie à une communion personnelle profonde et à une participation vécue avec l’objet de cette connaissance. Le pasteur David Jang met en garde contre le risque de figer la connaissance du Christ en simples données stockées dans l’esprit. En effet, une véritable réflexion théologique ne s’accomplit pleinement que lorsque la vérité des Écritures se traduit concrètement, dans le quotidien du croyant, en un art de vivre.

Une foi sans connaissance risque de se réduire à un enthousiasme aveugle, tandis qu’une connaissance sans foi ne produit que des débats vides. L’Église doit s’élever avec les deux ailes à la fois : l’aile solide du système doctrinal et l’aile ardente de l’expérience de la présence du Saint-Esprit. Lorsque s’installe ce saint cercle vertueux consistant à vivre ce que l’on a appris et à apprendre à partir de ce que l’on vit, une foi encore enfantine grandit jusqu’à une pleine maturité, capable de ne pas vaciller face aux modes passagères et aux enseignements déformés.

Le courage de dire la vérité dans l’amour

Le secret le plus profond de l’unité est, en fin de compte, l’amour. Une vérité sans amour devient facilement de l’arrogance, tandis qu’un amour sans vérité risque de dériver vers un compromis lâche. L’exhortation d’Éphésiens 4 — « en disant la vérité dans l’amour, croissons à tous égards en celui qui est le Christ » — demeure un repère éternel pour notre foi. Le pasteur David Jang explique que l’amour n’est pas un simple jeu émotionnel, mais une décision volontaire et une habitude consistant à couvrir les fautes de l’autre et à partager volontiers la responsabilité.

Dans les moments de conflit, le signe le plus clair de la maturité est précisément cette attitude qui, au lieu d’imposer sa propre opinion, cherche d’abord le bien de la communauté et sait exprimer même une vérité douloureuse avec le langage de l’amour. De même que les ossements desséchés de la vallée d’Ézéchiel furent reliés par le souffle de l’Esprit et les liens de l’amour pour former une grande armée, nous aussi, nous devons édifier le corps du Christ en comblant mutuellement nos insuffisances par l’amour.

L’espérance de demain façonnée par les petites obéissances du quotidien

Aujourd’hui, l’Église est appelée à assumer une responsabilité publique envers le monde au-delà de ses murs. Une foi mûre doit se prouver par une vie concrète qui compatit à la souffrance de la société locale et met en pratique la justice et la miséricorde.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que cette mise en pratique ne commence pas par de grands slogans, mais par de « petits pas » : restaurer le culte familial, encourager un collègue, bénir son voisin.

Même à l’ère du numérique devenu ordinaire, l’essentiel ne change pas : une communion profonde au sein d’une communauté qui se rencontre réellement. Il est nécessaire de garder l’équilibre entre l’extension de l’Évangile grâce à la commodité du numérique et la préservation de la spiritualité du terrain, là où l’on rompt le pain et où l’on prie ensemble. La voie proposée par le pasteur David Jang n’est nullement un idéal inaccessible. Avec l’aide du Saint-Esprit, une parole empreinte de douceur choisie aujourd’hui, une décision honnête prise aujourd’hui, peuvent ensemble transformer le lendemain de l’Église.

Jusqu’où avons-nous grandi aujourd’hui en tant que corps du Christ ? Ne devrions-nous pas nous demander en silence si, au nom de la vérité, nous n’avons pas blessé quelqu’un, ou si, sous prétexte d’amour, nous n’avons pas laissé échapper une vérité qu’il fallait pourtant tenir fermement ? Sur ce chemin étroit mais glorieux où l’on dit la vérité dans l’amour et où l’on s’édifie mutuellement, j’espère que pourra demeurer la réponse sincère de chacun de n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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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osition of Ephesians 4: A Mature Faith Community Shaped by Love and Truth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Aleksandr Solzhenitsyn, the great writer of the former Soviet Union, once said, “A single line of truth outweighs the whole world.” Just as his words pierced through the darkness of his age and awakened people to the dignity of human existence, truth in the world of faith is also the strongest framework that sustains a community. Yet if that framework is not clothed with the flesh of “love,” truth can easily become a cold blade that wounds one another. Through his exposition of Ephesians 4, Pastor David Jang invites us into deep reflection on how truth and love become one body and bring the church to maturity.

The Symphony of Unity Woven Through the Diversity of Gifts
We often misunderstand, thinking that only exceptional talents or highly visible offices are what carry out the work of God. Pastor David Jang, however, defines the church as “the body of Christ,” and at this very point he fundamentally corrects the way we view spiritual gifts. Just as each part of the body performs its own unique function in its proper place, every gift within the church is not a matter of superiority or inferiority, but simply a difference in role.

When places that receive applause and places of nameless service do not push each other away but remain connected, the community finally gains healthy vitality. When a culture of cooperation rather than competition takes root, worship and administration, missions and care, all flow together as one beautiful melody. Pastor David Jang sees the essence of leadership not as “who is higher,” but as “helping every member joyfully serve according to the gift they have received.”

The Journey of Personal Maturity Where Knowledge and Life Become One
Maturity does not simply mean possessing more information. In the Hebrew tradition, the word “to know” (yada) signifies deep personal communion and experiential participation with the one who is known. Pastor David Jang warns against reducing the knowledge of Christ to frozen data stored in the mind. True theological insight is only completed when the truth of Scripture is translated into a concrete way of life in the daily walk of believers.

Faith without knowledge can easily become blind enthusiasm, while knowledge without faith produces only hollow arguments. The church must rise on two strong wings together: the solid wing of doctrinal structure and the burning wing of experiencing the presence of the Holy Spirit. When this holy virtuous cycle takes place—living as we have learned and learning as we have lived—faith that was once childlike grows into mature fullness that does not waver before passing trends or distorted teachings.

The Courage to Speak What Is True in Love
The deepest secret of unity is, in the end, love. Truth without love easily turns into dogmatism, while love without truth runs the risk of becoming cowardly compromise. The exhortation of Ephesians 4, “speaking the truth in love, we are to grow up in every way into him,” remains an eternal signpost for our faith. Pastor David Jang explains love not as mere emotional sentiment, but as a willing decision and a cultivated habit to cover another’s shortcomings and gladly share responsibility.

In moments of conflict, the clearest mark of maturity is the attitude that thinks first of the good of the community rather than insisting only on one’s own position, and that can express even painful truths in the language of love. Just as the dry bones in Ezekiel’s valley were joined together by the wind of the Spirit and the cords of love to become a vast army, we too must fill up one another’s deficiencies with love as we build up the body of Christ.

The Hope of Tomorrow Formed by Small Acts of Obedience Today
Today, the church is being called to take public responsibility for the world beyond its walls. Mature faith must be proven through a concrete life that empathizes with the pain of the local community and practices justice and mercy. Pastor David Jang emphasizes that such practice does not begin with grand slogans, but with “small steps” such as restoring family worship, encouraging colleagues, and blessing neighbors.

Even in an age when digital life has become ordinary, the unchanging core remains deep fellowship within a face-to-face community. While the convenience of online platforms can expand the reach of the gospel, we still need the balance of not losing the spirituality of gathering in person to break bread and pray together. The path presented by Pastor David Jang is by no means an unattainable ideal. With the help of the Holy Spirit, one gentle word we choose today and one honest decision we make can come together to transform the church’s tomorrow.

How far have we grown now as the body of Christ? We must quietly ask ourselves whether we may have wounded someone in the name of truth, or whether, under the excuse of love, we may have let go of the truth we ought to have held firmly. On this narrow yet glorious path of speaking the truth in love and building one another up, may the sincere response of each one of us re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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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장 강해: 사랑과 진리가 빚어내는 성숙한 신앙 공동체 – 장재형 목사 (Olivet University)

구소련의 문호 솔제니친은 “한 줄기 진리가 전 세계보다 무겁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문장이 시대의 어둠을 뚫고 인간 존재의 존엄을 일깨웠듯, 신앙의 세계에서도 진리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뼈대입니다. 하지만 그 뼈대 위에 ‘사랑’이라는 살이 입혀지지 않는다면, 진리는 자칫 차가운 칼날이 되어 서로를 상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장재형 목사는 에베소서 4장의 강해를 통해, 진리와 사랑이 어떻게 한 몸을 이루어 교회를 성숙하게 하는지에 대한 깊은 사유를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은사의 다양성이 빚어내는 연합의 교향곡

우리는 흔히 뛰어난 재능이나 눈에 띄는 직분만이 하나님의 일을 이끈다고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정의하며, 이 지점에서 은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근본적으로 교정합니다. 몸의 각 기관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듯, 교회 내의 모든 은사는 우열이 아닌 ‘역할’의 차이일 뿐입니다.

박수를 받는 자리와 이름 없이 섬기는 자리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연결될 때, 공동체는 비로소 건강한 생명력을 얻습니다. 경쟁이 아닌 협력의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예배와 행정, 선교와 돌봄은 하나의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흐릅니다. 장재형 목사는 리더십의 본질을 ‘누가 더 높은가’가 아니라 ‘모든 지체가 자신의 은사를 따라 기쁘게 섬기도록 돕는 것’에 둡니다.

앎과 삶이 일치되는 인격적 성숙의 여정

성숙이란 단순히 정보가 많아지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적 전통에서 ‘안다(야다)’는 표현은 대상과의 깊은 인격적 교제와 체험적 참여를 뜻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머릿속 데이터로 박제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참된 신학적 통찰은 성경 속의 진리가 성도의 일상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양식으로 번역될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지식 없는 믿음은 맹목적인 열광에 그치기 쉽고, 믿음 없는 지식은 공허한 논쟁만을 낳습니다. 교회는 교리적 체계라는 든든한 날개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뜨거운 날개로 함께 날아올라야 합니다. 배운 대로 살고, 산 대로 배우는 이 거룩한 선순환이 일어날 때, 어린아이와 같던 신앙은 거센 유행과 왜곡된 가르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용기

연합의 가장 깊은 비밀은 결국 사랑입니다. 사랑 없는 진리는 독선이 되기 쉽고, 진리 없는 사랑은 비겁한 타협으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이 권면하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는 말씀은 우리 신앙의 영원한 이정표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사랑을 단순한 감정적 유희가 아니라, 상대의 허물을 덮고 책임을 기꺼이 나누는 의지적 결단이자 습관으로 설명합니다.

갈등의 순간에 자기 주장만을 관철하기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며, 아픈 진실조차 사랑의 언어로 담아낼 수 있는 태도야말로 성숙의 가장 분명한 표지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성령의 바람과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큰 군대를 이루었듯, 우리 역시 서로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메우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야 합니다.

일상의 작은 순종이 만드는 내일의 희망

오늘날 교회는 담장 너머 세상을 향한 공적 책임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지역 사회의 아픔에 공감하고,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삶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실천이 거창한 구호가 아닌, 가정예배를 회복하고 동료를 격려하며 이웃을 축복하는 ‘작은 걸음’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합니다.

디지털이 일상이 된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핵심은 대면하는 공동체 속에서의 깊은 교제입니다. 온라인의 편리함으로 복음을 확장하되, 함께 떡을 떼며 기도하는 현장의 영성을 놓치지 않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장재형 목사가 제시하는 이 길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우리가 오늘 선택하는 온유한 말 한마디, 정직한 결정 하나가 모여 교회의 내일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어디까지 자라나 있습니까? 혹시 진리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혹은 사랑이라는 핑계로 마땅히 붙들어야 할 진리를 놓치지는 않았는지 조용히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서로를 세워가는 이 좁고도 영광스러운 길 위에, 우리 모두의 진심 어린 응답이 머물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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