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식탁의 경계를 허무는 파격적인 환대
예수께서 이 비유를 들려주신 배경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날 선 ‘원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거룩함이란 죄인과의 격리를 의미했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죄인들과 함께 빵을 나누며 하나님 나라의 논리를 펼치셨습니다.
- 잃은 것을 향한 집념: 양, 드라크마, 그리고 아들로 이어지는 세 가지 비유는 잃어버린 존재를 기어코 찾아내고야 마는 하나님의 열정을 보여줍니다.
- 기쁨의 공유: 복음은 잃은 것을 되찾았을 때의 환희이며, 그 기쁨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종교적 결핍임을 시사합니다.
2. ‘소유’의 욕망이 낳은 관계의 단절
장재형 목사는 둘째 아들이 유산을 요구한 행위를 경제적 관념이 아닌 **’존재론적 분리’**로 해석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심에도 몫을 챙기려 한 것은, 아버지를 인격적 대상이 아닌 자산의 공급자로 전락시킨 사건입니다.
- 죄의 본질: 죄는 특정 악행의 목록 이전에, ‘내 것’을 챙기기 위해 관계를 끊어버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 자유의 오해: 사랑의 품을 벗어나는 것을 자유라 착각할 때 인간은 결핍의 밑바닥으로 추락합니다. 탕자가 겪은 쥐엄열매의 굶주림은 하나님 없는 자아 중심적 삶이 결국 노예 상태로 귀결됨을 상징합니다.
3. 심문 없는 수용: ‘교정’보다 앞선 ‘회복’
탕자의 회개는 단순한 후회를 넘어 “아버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존재의 자각입니다. 돌아온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에는 그 어떤 조건이나 유예 기간도 없었습니다.
- 과잉의 은혜: 제일 좋은 옷과 가락지, 신발은 아들의 지위를 즉각적으로 복권시킨다는 선언입니다.
- 먼저 달려가는 사랑: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히 정리정돈된 상태에서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멀리서부터 우리를 알아보고 먼저 달려와 안아주시는 분입니다.
4. 집 안의 탕자: 형이 앓고 있는 결핍
비유의 날카로움은 성실해 보였던 ‘첫째 아들’에게서 절정에 달합니다. 그는 몸은 집에 있었으나 마음은 아버지와 분리된 상태였습니다.
- 계산된 관계: 형에게 아버지는 사랑의 대상이 아닌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고용주였습니다. 그는 동생의 귀환을 시기하며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워 잔치를 거부합니다.
- 공동체의 위기: 장재형 목사는 현대 교회가 경계해야 할 지점이 바로 이 ‘형의 마음’이라고 지적합니다. 자원이 늘어날수록 “내 몫”을 따지는 순간, 교회는 기쁨을 잃은 고립된 종교인들의 집합소가 됩니다.
예술로 보는 복음: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렘브란트의 명화는 이 서사를 빛과 어둠으로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 포옹의 중력: 아버지의 손은 상처 입은 아들을 조용히 감싸 안으며, 인간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사랑을 시각화합니다.
- 어둠 속의 형: 잔치 밖에서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형의 모습은 우리 안에 숨겨진 ‘공로주의’를 투영합니다.
결론: 하나 됨을 향한 초대의 잔치
복음은 두 부류의 길 잃은 자를 모두 부릅니다. 노골적으로 방황하는 ‘밖의 탕자’와, 규범 뒤에 숨어 냉소하는 ‘안의 탕자’ 모두에게 아버지는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는 공동체의 핵심은 **’청지기 의식’**입니다. 모든 것이 내 몫이 아닌 ‘아버지의 것’임을 인정할 때, 교회는 비로소 배제와 공격성을 버리고 환대와 회복의 잔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