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은혜의 신비   – 장재형 목사 (Olivet University)

1867년 스위스 바젤의 한 미술관,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한스 홀바인의 그림 <무덤 속 죽은 그리스도> 앞에서 숨을 멈춘 채 얼어붙었다. 낭만적 후광이나 신성한 아름다움은 철저히 배제되고, 찢긴 살과 참혹한 죽음의 흔적만이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묘사된 캔버스는 그에게 거대한 충격이었다. “이 그림을 보다가는 명성 높은 믿음마저 잃어버리겠소.” 그의 뇌리를 스친 이 전율은 역설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가장 깊은 심연, 곧 ‘낮아지심’의 실재를 건드린다. 장재형 목사는 바로 이 지점, 신이 인간의 가장 비참한 현실 속으로 추락하듯 내려오신 성육신의 신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의 강해는 성탄의 화려한 불빛 너머, 구유의 차가운 나무결과 십자가의 고통 속에 감춰진 묵직한 신학적 통찰을 직면하게 만든다.  

영광의 보좌를 비워낸 거룩한 사랑의 케노시스

빌립보서 2장에 기록된 이른바 ‘그리스도 찬가’는 초기 교회가 숨결처럼 불렀던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본문을 단순한 도덕적 모범이나 심리적 권면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권력 질서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거대한 기독론적 선언으로 읽어낸다. 신적 존재가 영광을 움켜쥐지 않고 자신을 철저히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는 ‘케노시스’의 역설은 결코 신성의 상실이나 무기력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타자를 향해 자신의 사랑을 무한히 확장하기 위해, 스스로 모든 특권을 내려놓는 능동적인 순종이다. 끝없이 위로만 올라가 영광을 당겨오려는 세상의 상승 구조 속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 자발적인 비워냄이야말로 세상을 근원적으로 구원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차가운 구유에서 피어오르는 생명의 연대

세상의 왕들은 화려한 궁전에서 태어나 군대의 호위를 받지만, 평화의 왕은 인구 조사의 행정 명령에 떠밀려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첫 숨을 쉬셨다.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 복도에 프라 안젤리코가 그려 넣은 ‘수태고지’의 고요하고 단정한 회랑처럼, 진정한 은혜는 번쩍이는 권능의 과시가 아니라 일상의 가장 비천하고 절제된 자리로 고요히 스며든다. 성육신은 먼 하늘에서 우리를 동정하는 관념적 위로가 아니라, 인간의 두려움과 외로움, 질병과 실패의 한복판으로 직접 들어오신 치열한 연대의 사건이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그림에서 가장 낮은 곳의 촛불 하나가 어둠을 가르며 생명을 비추듯, 하나님은 강함의 언어가 아닌 연약함을 통로로 삼아 우리 영혼의 닫힌 문을 두드리신다.  

상처 입은 세상을 꿰매는 십자가의 복음

이러한 성육신의 여정은 필연적으로 십자가라는 극단적 자기 비움의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 힘의 논리와 폭력으로 세상을 굴복시키는 제국의 지혜와 달리, 하나님의 지혜는 폭력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고난을 통해 혐오의 굴레를 무력화시킨다. 에베소서가 증언하는 만물을 화해하게 하시는 섭리 안에서, 복음은 개인의 심리적 위안을 넘어 우주적 회복과 공적 정의를 향한 소망으로 확장된다. 깊은 성경 묵상을 통해 길어 올린 이 진리는, 오늘날 경제적 착취와 생태 위기, 분열로 찢긴 세상 속에서 교회가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는지 명확히 일깨운다. 진정한 회개는 지난날의 감정적 후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정죄하던 날 선 칼을 거두어들이고 구조적 아픔에 동참하는 ‘자리 옮김’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삶의 가장자리로 내려가는 조용한 부름

그리스도의 지극히 깊은 낮아지심은 결국 하나님이 그를 우주의 만유 위에 가장 높이 들어 올리시는 승리의 서사로 완성된다. 그러나 그 승리는 세상이 환호하는 지배의 영광이 아니라, 약자를 한가운데 세우는 십자가의 참된 사랑이 만물의 영원한 기준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공적인 선언이다. 화려한 예배당에서 부르는 찬양이 허공에 흩어지는 소음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 낮아짐의 신비가 교회 공동체의 체질을 바꾸고 리더십의 방향을 철저히 아래로 향하게 만들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의 설교는 말씀이 서재의 창백한 사변에 갇히지 않고, 상처 입은 이웃의 문맥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살아 숨 쉬는 체온이 되기를 열렬히 촉구하고 있다.   만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를 때 싹을 틔우고 메마른 땅을 적신다. 우리의 신앙 역시 지식과 교만으로 쌓아 올린 바벨탑을 스스로 허물고 이웃의 곁으로, 눈물 흘리는 자의 가장 낮은 지대로 기꺼이 흘러가야만 비로소 생명의 빛을 발할 수 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차가운 무덤 속 짙은 어둠의 현실까지 기꺼이 내려오신 그 숭고한 십자가 아래 조용히 머무르며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당신이 오늘 안주하고자 하는 자리는 사람들의 화려한 시선이 쏟아지는 높은 곳인가, 아니면 길 잃은 영혼들이 당신의 작은 환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좁고 낮은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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